월간참여사회 2013년 10월 2013-10-07   1366

[여는글]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표에 부쳐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표에 부쳐

 

사법연수원 시절 한때 수료 후 검사직을 신청할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 계기는 연수원 후반기에 한 지방 검찰청에서의 검사 직무대리 경험에서 왔다. 매일 일정하게 배당되는 사건을 조사하여 결론을 내는 일이었는데, 구속 사건도 있었고 불구속 사건도 있었다. 사법연수원생 신분이라 그리 어려운 사건은 없었던 듯하다. 또 대개 경찰에서 미리 수사한 후 기소 여부 의견을 붙여 보낸 사건들이어서 책임도 크지 않았다.  

 

그 중에 십대 형제가 구속되어 송치된 사건이 있었다. 노숙하던 형제가 궁하다보니 근처의 금은방에 들어가 물건을 훔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형제들을 불러내어 조사해 보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물건을 훔친 측은 형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인 듯했다. 정황상 형제에게 알리바이도 있었다. 그래서 지도 검사를 어렵게 설득해 형제들을 석방하도록 했다. 석방 지휘서에 서명하고 형제들을 불러 짐짓 그 사실을 감춘 채 곧 재판에 회부할 듯이 으름장을 놓아 돌려보낸 뒤, 퇴근 무렵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가난한 형제들이 예상치 못한 석방에 어리둥절해 하며 그 눈 속에 구치소 문을 나서는 것을 그려보니 어쩐지 뿌듯했다. 그 해는 고소 고발 사건이 많았는데, 검사 직무 대리로서 당사자들을 불러 오랜 시간 쌍방을 적당히 구슬리거나 압박하여 화해를 성사시킨 경우도 꽤 있었다. 이 일들은 비록 수사는 아니지만 민사 분쟁이 쉽게 형사 사건화 되는 지방에서 검사가 해야 할 역할로서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검사로서 직무에 충실하면 나름 보람이 있겠구나 하는 감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검사의 본업은 여전히 수사임에 틀림없고, 그 때문에 검사에게는 타인을 고무 또는 격려하기보다는 그 흠이나 잘못을 밝혀야 하는 직업적 특성이 있다. 그런데 이는 나의 성격과 잘 맞지 않는 듯해서 결국 검사가 될 생각을 접게 되었다. 

 

변호사로 일한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지금, 솔직히 말하여 검사에 대한 상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어쩌다 보니 노동사건과 공안사건의 변론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변론 과정에서 검사가 과연 공익의 대변자인가 의문을 갖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때로 검사가 공권력을 빙자하여 시민에게 공연한 괴로움을 주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생각은 인권 침해 사건이 빈번하였던 이른바 유신 시기의 형사 재심 변론을 하면서 더해졌다. 술자리에서의 정부 비판 언사가 빌미가 되어, 또는 납북되었던 어부 등이 고문에 견디다 못해 허위 자백한 수사기관의 진술 조서들을 증거로 하여 반공법 위반 등으로 유죄 판결한 사건들의 기록을 보면, 피해자들의 고통에 찬 신음 소리가 장마다 배어 있는 듯하다. 검사가 이들 사건을 잘못 기소하지 않았더라면 이들이 받은 인권 침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날조 사건들의 재판이 뜻밖에 감동을 주는 일이 있다. 그 공감의 시작은 무죄를 선고하면서 덧붙이는 법관의 뉘우침으로부터 온다. 재판장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과의 말을 하는 순간, 숨죽이며 선고를 기다리던 법정의 피고인과 가족들은 “무죄다”라는 말에 안도하면서 동시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서울대에 유학 온 한 재일동포 피고인에 대한 재심 무죄 판결에서 재판장이 “광기와 잔인성이 국가적 위기, 민족의 생존과 발전, 이념에 편승하여 출현할 때 사법부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우리 모두 안의 작은 목소리를 대변하고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하며, 과거 1970년대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한 선배들의 잘못을 사죄하는 판결문을 읽은 일도 있었다. 그 때 법정에 있던 피고인과 그 가족뿐만이 아니라 변호사도 기자도 모두 눈물을 떨구었다. 

 

이런 날조 사건에서 고문을 가한 측은 물론 대개 경찰이나 정보기관이지 검사는 아니다. 그러나 법관의 영장 없이 장기간 불법 감금된 가운데 행해지는 공권력의 탈을 쓴 고문이 적어도 검사의 방조나 묵인 없이 어디 가능한 일인가. 그러기에 과거 검사를 흔히 ‘권력의 시녀’라 불렀던 것이다. 최근 10여 년 사이에 국가 기구를 통하여 진실이 규명된 과거 사건에서 검찰이 한 잘못은 보다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도 그 많은 검사들 중 누구 한 사람 일언반구 사과의 의사표시를 한 일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검사의 진정한 자긍심이 무엇인지 곰곰이 되새겨 보게 된다.   

 

국정원의 대통령 선거 개입 사건 기소 등으로 퇴진 압력을 받아 왔다고 하는 채동욱 검찰총장이 최근 전격적으로 사표를 제출하였다. 사법연수원 시절 그는 신기남 국회의원, 정종섭 서울법대 교수 등과 함께 ‘칼 포퍼 4인방’으로 불리기도 했었다. 논리적 반증反證의 철학자로 유명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을 쓴 칼 포퍼를 열심히 공부한 그가 검사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장막 속의 음험한 공작 정치’를 혐오한 칼 포퍼의 사상을 잊지 않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서울지검 1층 로비에는 <검사의 선서>를 쓴 액자가 걸려 있다. 그것은 이렇게 끝난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기울여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채동욱 총장이 권력이 아닌 시민의 검사로서 진정으로 이 선서에 부끄럽지 않게 직무를 해 왔다면, 그가 두려워할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채 총장 사표 제출 이후의 사태 추이를 우리 모두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석태 참여연대 공동대표, 변호사
주변을 구경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고, 현장에서 열심히 뛰는 참여연대 식구들에게 늘 감사함과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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