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10월 2013-10-07   773

[정치] ‘민생’을 볼모로 한 대통령의 도박

‘민생’을 볼모로 한 대통령의 도박

 

 

정쟁의 최일선에 뛰어든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과 김한길 민주당 대표 간의 회담은 결국 여야 간의 파국을 선언하는 소위 맞짱 대결에 그치고 말았다. 사전에 의제 조율조차 없이 이루어진 회담이었던 만큼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회담이 끝난 뒤에도 서로 난타전을 주고받는 볼썽사나운 모습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그래도 두 사람 간 회담의 성과는 확실히 있었다. 지금까지 여야 대결의 근원지에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있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회담 직후 직접 야당을 상대로 “국민 심판” 운운하는 등 끝까지 속 좁은 행태를 보이며 정쟁의 최일선에 서 버렸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박 대통령은 야당을 향해 직격탄을 쏜 뒤 당분간 특유의 무시 전법으로 나갈 것이다. 개성공단 문제로 북한이 그랬듯이 야당이 먼저 굴복하고 국회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그동안 자신은 민생을 챙기는 모습을 연출하는 한편, 국정원을 동원해 또 다른 국면 전환용 사건을 찾을 것이다.

 

이렇듯 대통령이 직접 뛰어들어 야당과의 싸움을 주도하는 형국이니 청와대 눈치만 살피는 정부와 여당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당장 추석 연휴를 맞아 여당 지도부가 야당을 ‘적’과 내통하는 종북 세력으로 규정하는 홍보물을 배포하며 낡은 이념 대결을 부추기고 나섰다.

 

대통령과의 여야 회담을 계기로 대화와 협상을 기본으로 한 정치는 실종되어 버렸다. 김한길 대표의 노숙 투쟁은 장기화가 불가피하고, 여당 역시 발목이 묶여 정기국회 기간 동안 야당을 상대로 입씨름만 하는 사태가 예고되고 있다. 대통령과 야당의 고집 싸움 속에 여야가 그토록 말로만 떠들던 ‘민생’ 역시 실종될 위기에 놓였다.

 

참여사회 2013-10월호 이미지

 

잘못 꿴 첫 단추에서 비롯된 불행

 

문제가 이렇게 커진 데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크다. 이는 단순히 대통령이 국정 최고의 책임자라는 수사적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주지하듯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여야 대결의 연원을 추적해가면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태가 있다.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 거의 편집증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정원의 불법선거운동과 자신은 아무 관계도 없고, 따라서 자신이 사과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이 문제를 자꾸 언급하는 것은 국정원 사태를 자신의 정통성을 부정하기 위한 음모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 불복’이란 말을 야당보다 여당 쪽에서 더 공세적으로 사용하는 이유 또한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국정원의 불법과 박근혜 정부의 탄생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리 우겨도 국정원은 문재인 후보의 낙선, 즉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위해 불법선거운동을 했고, 박 대통령 본인이 직접 지시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결국 도움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박 대통령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박 대통령의 편집증적인 반응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자신의 부친이 사후에까지 정통성 문제로 시비를 겪어온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당사자가 아닌가. 바로 그런 이유들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의 불법선거운동을 덮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 NLL 대화록의 불법적인 공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의 설익은 공개를 감행했다. 급기야 취임 이후 자신의 지지율을 떠받치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해온 채동욱 검찰총장을 여야 회담 직전 야비하게 축출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처음 한 거짓말을 덮기 위해 계속 거짓말을 하는 것과 같은 모양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잘못 꿴 첫 단추에서 모든 불행이 시작됐다.

 

사실 국정원의 불법선거운동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 본인이 허심탄회하게 사과 한 마디 하면 끝날 일이었다. 그 한 마디를 않겠다고 버티며 온갖 공작정치를 자행하고, 민생을 볼모로 한 큰 도박에까지 나선 것이다.

 

5년 내내 국면 전환용 사건의 반복 우려

 

해마다 8.15 광복절이 되면 일본 총리의 사과 발언을 기대하는 것은 일본 총리들이 모두 전범의 당사자여서가 아니다. 이는 오로지 역사의식의 문제이다. 일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반성적 인식을 확인함으로써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는 사태를 막아보자는 뜻이다. 국정원 사태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동일한 잘못을 막자는 의미이다. 그래야 개혁도 제대로 이루어질 것이 아닌가. 박근혜 정부 5년 내내 국면 전환용 사건이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단순한 기우에 그치기를 바란다.

 

 

이용마 MBC 해직기자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관악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부지런함의 공존 불가를 절실히 깨닫고 있는 게으름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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