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10월 2019-10-01   1530

[통인뉴스] ‘미스터 소수의견’에게 듣는다

‘미스터 소수의견’에게 듣는다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 특강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이 되기까지> 

 

글. 김태일 사법감시센터 간사

 

 

사법감시센터는 판결비평 선집 『현재의 판결, 판결의 현재』 출간을 기념하여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 특강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이 되기까지>를 개최했습니다. 이번 강연에서는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 등 헌법재판소 주요 결정의 뒷이야기와 민주사회에서 소수의견이 중요한 이유,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해 역설했습니다. 

 

진보정당은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원,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공안정국 조성을 원했던 박근혜 정권은 치밀한 준비 끝에 2013년 말 결국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청구했습니다. 김이수 전 재판관은 승산이 높지 않았던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진보정당의 가치를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했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 진보정당의 역사를 보면 특히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 굉장히 위축된 활동을 해왔고, 당시 진보정당을 어떻게든 소중한 자원으로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정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비록 날아가는 새의 좌우 날개처럼 균형을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논쟁의 틀이 기울어진 접시처럼 치우치지 않도록 견제할 수 있는 진보정당은 우리 사회의 자산이다. 따라서 진보정당이 민주화의 발전에 이바지하며 진정한 사회통합과 안정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할 방법은 없는지 고뇌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의 다양성 가치와 관용의 정신을 생각하면 정당해산은 절제돼야 한다는 당연한 의견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반대의견은 단 한 명이었고, 통합진보당은 결국 강제해산 되었습니다. 이후 민주주의는 더욱 후퇴했고, 김이수 재판관에게는 보수진영의 맹렬한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불과 2년 뒤 2016년 12월 9일, 이번에는 정당해산 장본인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접수됩니다. 

 

월간 참여사회 2019년 10월호 (통권 269 호)

지난 8월 29일,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 특강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이 되기까지>가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렸다. 이날 사회를 맡은 이국운 한동대 교수(왼쪽)와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오른쪽)의 모습 

 

탄핵사유 아니지만 세월호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권력이 법과 제도를 악용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과정이 통합진보당의 해산이었다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은 국민이 국회를 압박하고 제도를 활용하여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탄핵 표결 당시 새누리당도 상당수가 찬성했습니다. 234명 의원이 탄핵에 찬성했는데, 비율로 보면 거의 80퍼센트입니다. 탄핵 찬성 여론조사 비율과 거의 맞아떨어졌습니다. 그 국회의 숫자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탄핵은 인용되었지만, 그 사유에는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습니다. 특히 세월호 참사가 탄핵 사유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이수 전 재판관은 보충의견으로라도 세월호에 대해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이 그날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것은 틀림없다고 보았습니다. 위기관리상황실에 갔다면 상황을 파악했을 테고, 강하게 지시했다면 구조에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의식적 포기로 보아 ‘중대한’ 사유로 판단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다수의견은 아예 사유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보았으나, 저와 이진성 재판관은 적어도 질책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월호의 아픔이 있었기에 끈질기게 그 부분을 파고들었고, 그 결과 보충의견 형태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남겨진 ‘보충의견’은 단순히 박근혜 전 대통령 한 사람을 꾸짖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당부이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국민 다수의 지지로 당선된 대통령들이 그 직책을 수행할 것이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국가위기 상황에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하여도 무방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우리의 유산으로 남겨져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불성실 때문에 수많은 국민의 생명이 상실되고 안전이 위협받아 이 나라의 앞날과 국민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므로 우리는 피청구인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을 지적하는 것이다. 

– 대통령(박근혜) 탄핵 결정문 김이수·이진성 보충의견 중에서

 

오늘의 소수의견이 내일의 다수의견으로

김이수 전 재판관이 들려준 마지막 사건은 양심적 병역거부 판결이었습니다. 그에게 이 사건은 각별했고,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많은 전략적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헌법재판소의 가장 오래된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부터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 이것만은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기에는 당시 한 표가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조항과 병역의 종류를 규정한 조항을 동시에 심사하게 되면서 서기석 재판관이 병역종류 조항을 헌법불합치라고 의견을 정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병역종류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여섯 명이 충족되었습니다.”

 

김이수 전 재판관은 이번 헌재의 결정으로 도입될 예정인 대체복무제와 병역제도에 대해서도 조언했습니다. 

 

“대체복무제를 잘 도입하면, 현역복무의 질도 함께 개선됩니다. 대체복무의 환경과 현역복무의 환경의 질을 두고 서로 경쟁을 통해 개선될 수 있습니다. 대만이 그랬습니다. 그렇게 진행되다가 대만이나 독일은 결국 모병제로 전환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모병제라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언젠가는 그 길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정당 해산반대 소수의견, 세월호의 책임을 명시한 보충의견, 대체복무제 도입을 이끈 다수의견까지 이번 강연에 언급된 이 사례들은 그 자체로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또한 각각의 의견에는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염려와 당부가 담겨 있었습니다.

 

“내가 만약 박근혜 탄핵에 반대하는 소수의견을 냈다면 이 자리에 없었을 것입니다.” 강연을 시작하며 김이수 전 재판관이 했던 말입니다. ‘소수’라는 것만으로는 미래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당장의 현실을 넘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그 안에 담을 때야 비로소 오늘의 소수의견이 내일의 다수의견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 ‘미스터 소수의견’ 김이수 전 재판관이 우리에게 전해준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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