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8월 2015-08-03   1493

[특집] 제주평화의 섬 선포 10년과 해군기지 반대운동 3000일

 

제주평화의 섬 선포 10년과 
해군기지 반대운동 3000일

 

 

글. 홍기룡
제주평화인권센터 대표,

제주군사기지저지와평화의섬실현을위한범도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기대를 모았던 ‘세계평화의 섬’ 선포
한국 정부가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선포한지 10년이 지났다. 사실 제주도민들은 평화의 섬 선포 이전부터 향후 제주도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많은 기대를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90년대 초 냉전체제가 붕괴되면서 평화담론을 형성하기 시작할 쯤 주변 강대국 정상들이 제주를 방문하고 정상회담이 성사됐기 때문이기도 했다. 1991년 제주에서 한·소 정상회담이 이뤄져 고르바초프가 방문했고, 96년에는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방문했다. 같은 해에 일본 하시모토 총리가 제주를 방문 해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지기도 했다. 2004년에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 노무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중국 등 동북아 정상들의 제주도 방문과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면서 제주도가 국제정치적 차원에서 중요한 지역으로 부각되었다. 

이 시점에서 학계를 중심으로 민간 영역에서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지정하자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제주도가 국제평화기구를 유치하고, 각종 평화 관련 회담 개최와 평화포럼 등 다양한 논의의 장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됐다. 
또한,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만든다는 공약을 제시했고,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초석을 마련하게 되었다. 특히 99년부터 추진한 북한에 사랑의 감귤보내기 운동도 평화의 섬 만들기 추진전략의 한 방안으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이후 제주도민들의 한 북한에 감귤보내기운동은 남북한의 대화의 장을 여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2000년 북한 김용순 로동당 비서의 제주 방문에 이어 같은 해 제 1차, 3차 남북국방장관금회담 등이 이루어짐으로써 평화의 섬에 대한 기대가 확대 되었다. 

제주도는 이런 과정을 통해 중앙정부로부터 정식으로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받기 위한 절차를 추진해왔다. 제주도는 2004년에 ‘세계 평화의 섬 지정 계획안’을 정부에 제출했고, 2005년 1월 27일 정부는 제주도를 동북아 평화와 한반도 교류 거점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취지에서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했다.

 

참여사회201508(통권 225호)

 

실패한 구상 – 세계평화의 섬, 제주도 
그 동안 제주도정은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특별자치도 출범이후 평화협력과를 신설하고 평화정책 수립과 관련한 사업을 실시해왔다. 그러나 제주도의 평화의 섬 추진 사업이 주요사업에서 배재되고 전담 부서 구성원의 비전문성과 추진 의지의 실종으로 평화 관련 정책이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평화의 섬 실천사업을 범도민운동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제주세계 평화의 섬 범도민 실천협의회’를 구성하여 민간 주도의 평화실천 사업을 민간 법인체로 발전할 것을 계획하고 추진했지만 관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제주평화의 섬 완성을 위해 토론의 장으로 마련된 제주평화포럼이 10회째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중앙정부 주도의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고 명망가 중심으로 진행되어 도민의 참여가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제주평화포럼도 제주포럼으로 명칭이 바뀌고 그 내용 또한 당초 취지와는 맞지 않게 변질되어 버렸다.  
주요 사업으로 제시되었던 4.3문제의 해결과 제주 4.3 평화 공원 설립은 실질적으로는 「제주 4.3 특별법」에 따라 진행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최근 공익재단인 제주4.3평화재단 이사회가 재단을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으로 지정하는 안을 의결하면서 재단은 도청 산하기관으로 취급돼 독립성을 완전히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 국비를 지원받아 건립 및 운영되고 있는 제주국제평화센터는 외교통상부가 주도하고 있어 군비 축소 문제 등 평화운동과는 직접적인 관련을 갖지 않고 있다. 민간 차원의 평화실천 사업과 관련 갖기는 어렵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세계평화의 섬 추진사업은 미진할 뿐만 아니라 민간차원의 참여는 찾아보기 힘든 실패한 사업이 되고 있다.

 

해군기지에 이어 공군기지까지
무엇보다도, 세계 평화의 섬 기획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결정적인 장애물은 강정마을에 건설되고 있는 해군기지 사업이다. 제주도정은 물론 정부당국자들은 군사기지 건설과 평화의 섬 추진이 양립 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들은 하와이와 오키나와와 마찬가지로 제주도에 군사기지가 들어서더라도 얼마든지 제주도가 민간복합형 관광도시로서 동북아시아 평화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평화의 섬 추진 계획을 지지하는 운동을 펴왔던 종교계와 시민사회, 학계는 제주가 평화의 섬으로 국제사회에 인정받기 위해서는 먼저 제주도가 비무장 지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적어도 제주도에 대규모 군사시설이 들어서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바탕으로 다양한 평화 정책의 성과가 쌓였을 때, 비로소 국제적으로 평화의 섬임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민군복합형 크루즈항을 내세운 해군기지 건설이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도정의 공약이 실현될 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설사 그것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그 결과 제주도는 ‘평화의 섬’을 ‘전쟁 전초기지’로 바꾸어 놓는 값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하와이와 오키나와를 거론하는 것은 군사기지로 인해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그곳 주민들에게 큰 모욕이다. 그곳에서 군사기지는 하나같이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닌 가장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고 심각한 환경파괴를 유발하고 있다. 군사기지 주변에 들어서게 마련인 향락시설들은 섬의 고유한 문화를 심각하게 파괴한다. 무엇보다도 태평양의 전초기지가 건설되는 과정 자체가 주민들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전쟁과 점령의 과정이었다. 하와이, 오키나와, 괌 등 태평양의 모든 전초기지들이 전쟁과 점령, 그리고 주민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압에 의하지 않고 들어선 예가 없다. 

최근 몇 년간 제주 남방 해역에서 미국의 핵 항공모함과 한국, 미국 그리고 일본의 이지스함이 참여하는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을 매년 실시하고 있다. 이는 제주해군기지가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군사전초기지로 사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군사기지는 공격을 불러오는 자석과도 같다. 뿐만 아니라 군사기지는 또 다른 군사기지를 불러온다. 만약 해군기지가 들어선다면, 곧 이어 제2 공항이 필요하다는 제주도의 약점을 파고들면서 공군기지도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제주도는 한국은 물론 동북아시아에서도 이름난 전쟁 전초 기지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참여사회201508(통권 225호)

제주해군기지 반대 강정마을 투쟁 3000일을 지지하고 강정평화대행진 참여를 요청하는 각계인사 기자회견

 

강정해군기지 반대운동이 잇고 있는 평화의 섬 비전
올해 해군기지가 완공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경우, 2000년부터 지속돼 왔던 15년간의 해군기지 저지싸움은 사실상 기지건설을 막는 데 실패한 셈이 된다. 그러나 군사기지가 완공된다 하더라도 군사기지 건설저지운동이 군사기지 폐지운동으로 바뀔 뿐 저항은 계속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해군기지 건설 이후에는 공군기지도 건설되어 제주도를 민군복합 관광단지가 아니라 복합군사기지로 전락시킬 것이기에 군사기지 반대운동은 멈추려야 멈출 수 없다. 

제주도정과 정부가 사실상 포기한 ‘평화의 섬’을 향한 비전은 이제 오로지 주민들의 평화운동을 통해서 유지되고 실천되고 있다. 해군기지 저지투쟁이 3000일 가까이 지속하고 있는 강정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의 반대운동은 강정마을을 지키고 제주도를 지키는 운동에 그치지 않고,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바꾸어 한반도와 동아시아가 자리 잡은 아시아·태평양에 참된 평화를 싹틔우기 위한 운동이다. 

 


 

[특집] 공존의 길, 분쟁의 길 – 참여사회 2015.08(통권225호)

1_이혜정 전후 70년, 동아시아 평화와 한반도

2_이기호 전후시대의 극복? 일본 아베 정권과 아시아 시민의 서로 다른 해석

3_정현곤 분단체제 70년, 변화는 가능한가?

4_이태호 울란바토르 프로세스 – 한반도 평화와 핵문제 해결을 위한 민간 6자회담

5_홍기룡 제주평화의 섬 선포 10년과 해군기지 반대운동 30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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