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5년 08월 2015-08-03   1080

[특집] 전후 70년, 동아시아 평화와 한반도

특집 분쟁의 길, 공존의 길

참여사회201508(통권 225호)

 

전후 70년, 
동아시아 평화와 한반도

 

 

글. 이혜정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올해로 일제가 패망한지 70년이 된다. 그 사이 동아시아는 일본과 한국, 대만 등의 경제적 ‘기적’과 중국의 부상으로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평화는 굳건한 기반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경제협력이 정치, 안보적 협력에 미치지 못하는 ‘아시아 패러독스’의 극복을 외치고 있는 점이야말로 패러독스(paradox, 역설)가 아닐 수 없지만, 전후 70년 동아시아의 경제적 ‘기적’이 평화와 민주주의, 인권의 ‘비극’을 동반한 역사를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한다면 ‘박근혜 패러독스’를 반드시 탓할 일도 아닐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가져온 광복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투하와 더불어 식민지 조선이 해방되었다. 민족적 시각에서 광복의 기쁨은 원자폭탄에 대한, 지금 기준으로 말하자면 미국의 (일본인에 대한) ‘전쟁범죄’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인도적 공분을 차단한다. 일본은 전후 국제사회로의 복귀를 위해 미일동맹을 통해 미국에 대한 종속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일본의 대미 종속은 해방과 광복이 전쟁으로 비화한, 그리고 일제의 가장 큰 피해자이지만 한국전쟁 기간 열린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❶에 초대조차 받지 못한 한국의 입장에서는 부러운 것이다. 

 

맥아더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에서 핵무기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을 석기 시대로 되돌린 미국의 공습은 한국전쟁에서도 반복되었다. 평양에 서 있는 건물이 없음을 자랑스럽게 확인하는 공습의 주역 르메이 장군을 한국은 미국의 혈맹으로서 마땅히 찬양해야 하는가? 

 

한국전쟁의 비극은 일본 경제 재건을 위한 ‘신의 선물’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한미동맹의 실제 발효를 위해 그리고 미국의 원조를 얻기 위해, 이승만 정부는 1954년 11월 17일 한국의 군사적 주권을 포기하는 한미합의의사록에 서명해야만 했다. 그리고 열흘 후인 11월 29일 이승만 정부는 사사오입 개헌을 통과시켰다. 52년의 부산 정치 파동에 이어 안보의 비상사태를 배경으로 한 헌정질서의 파괴행위였다. 군사 쿠데타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한미동맹을 위해, 한국 경제 발전의 종자돈 마련을 위해 박정희 정권은 민족적 자존심을 타협하고 한일국교정상화와 베트남 파병을 추진했다. 베트남전쟁의 비극은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자 삼선 개헌과 유신체제의 명분이 되었다.

 

참여사회201508(통권 225호)

 

냉전 쇠퇴와 아시아의 새로운 질서
기적과 비극의 공존, 안보와 경제와 헌정질서의 ‘부적절한’ 혹은 현실적인 타협은 어쩌면 1945년 이후 동아시아 냉전의 정상적인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왜 그런가? 언제까지 그래야만 하나? 

 

동아시아 냉전은 1945년 이후 미소의 대립이 그 이전 태평양전쟁이 내포한 대동아전쟁, 중일전쟁, 중국의 내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러일전쟁 이후 식민지 조선의 독립투쟁 등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적 유제와 착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반도를 분단하고, 영국과 프랑스 제국주의의 복귀를 허용하고, 일제의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을 면책하면서, 미국은 대동아전쟁과 중일전쟁, 일제와 (러시아 및) 조선의 대립을 모두 승계했다. 중국의 내전은 1949년 대륙의 공산화로 귀결되었고, 이는 한국전쟁의 배경이었으며, 한국전쟁은 다시 미국이 대만을 군사적으로 보호하고 베트남전쟁에 개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1970년대 소련과의 데탕트(detente, 1970년대 미국과 구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서 진영 간의 긴장완화)와 중국과의 화해 그리고 일·중 수교를 통해 미국은 베트남전쟁의 수렁, 더 넓게는 대동아전쟁과 중일전쟁의 역사적 유제에서 벗어났다. 이 과정은 1960년대 후반부터 심화된 미국패권의 정치경제적 위기에 의해 추동되었고, 닉슨과 키신저에 의해 추진되었는데, 이들의 비밀주의는 결국 워터게이트라는 미국 헌정질서 최악의 위기로 귀결되었었다. 

미국의 (상대적) 쇠퇴가 1970년대 동아시아 냉전질서의 이완을 초래했다면, 지구적인 수준에서 냉전의 쇠퇴는 민주주의와 평화이익에 바탕을 둔 새롭고 정의로운 질서를 수립할 역사적 기회를 제공했다. 고르바초프의 대담한 군축 및 이후 소련의 해체에 따른 안보위협의 감소, 그리고 금융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로의 미국패권의 경제적 기반의 변화는, 필리핀과 한국의 민주화에서 보이듯이, 미국과 군부권위주의 정권의 유착을 완화했다. 

 

냉전 해체의 역사적 혼돈 상황, 달리 말하면, 기존의 안보기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불확실성의 역사적 진공 상태에서, 한국은 중국과 소련과 수교하는 한편 남북한 기본합의서, 비핵화 선언, 유엔 동시 가입 등을 진행하였다. 수세에 몰린 북한의 ‘경제적인’ 핵과 미사일 개발 시도가 제네바 합의와 페리 프로세스에 의해서 봉합되면서, 북미, 북일 교차 수교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기대가 높아졌고 남북한은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아시아 패러독스’에서 벗어나는 길
돌아보면, 거기까지였다. 9·11 테러와 그에 대한 미국 부시정부의 대테러전쟁으로 단극시대 미국패권의 안보기제가 새롭게, 더욱 예방적이고 공격적으로 재편되고, 국내적으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대한 보수의 공격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의 정치적 동력은 급속히 꺼져갔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서의 ‘고난’과 2008년 경제위기로 미국의 대테러전쟁은 해체되었지만, 핵과 경제발전 병진노선의 김정은 정권과 중국의 꿈으로 무장한 시진핑의 중국은 한미일 군사동맹의 새로운 목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안보의 논리는 다시, 아베정부의 집단적 자위권을 위한 안보법제화 논란에서 보이듯이, 헌정질서의 위기를 동반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아시아 패러독스’론이 전제하듯 중국과의 경제적 상호의존이 심화된 상태에서, 한미일은 모두 중국과의 대결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북한의 핵은 위협이고 미국의 핵은 안정적인가? 경제발전과 핵무장의 병진노선을 밝히고 있는 김정은 정권은 용서할 수 없지만, 재정 위기의 예방을 위해서 ‘경제적인’ 핵무기의 위협에 의존했던 아이젠하워의 뉴룩New Look전략은 신중한 것이고, 그에 따른 전략핵의 남한 배치는 한반도의 안정을 위한 것이었으며, 현재 북핵 위협에 대한 한미양국의 확장 핵 억지 전략 역시 현명한 것인가?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한반도에서 한국전쟁을 종식시키는, 북한의 일본과의 미수교가 증명하는, 일본제국주의의 유제를 끝내는 길을. 핵위협에서 벗어나는, 안보딜레마에서 벗어나는 진정한 평화의 길을. 국가의 ‘경제 영토’가 늘어나는 경제통합이 아니라, 소비자로서 노동자로서 기업가로서 개개의 동아시아인이 공생할 수 있는 경제통합의 길을. 민족적 자존과 인권, 시민의 권리가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동아시아 평화의 길을. 그 출발은 국가의 안보정책에 대한 시민의 부단한, 민주적, 평화적 개입일 것이다. 

 

아시아 패러독스Asia paradox란?

동아시아에서 경제 분야의 복합적 상호의존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과 반대로, 정치·안보 분야의 갈등이 증가하는 현상. 동아시아 지역은 전 세계 GDP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 경제의 중심이 대서양에서 아시아로 옮겨 오고 있다고 평가할 정도로 활발한 경제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조류와는 반대로 군비경쟁, 핵개발, 영토와 역사 갈등등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갈등들 또한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❶    1951년 9월 8일,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위해 일본과 연합국 48개국이 맺은 평화조약

    1999년 10월 작성된, 북한 비핵화에 대한 미국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의 윌리엄 페리 대북조정관의 포괄적 해결 방안을 담은 보고서

 


 

[특집] 공존의 길, 분쟁의 길 – 참여사회 2015.08(통권225호)

1_이혜정 전후 70년, 동아시아 평화와 한반도

2_이기호 전후시대의 극복? 일본 아베 정권과 아시아 시민의 서로 다른 해석

3_정현곤 분단체제 70년, 변화는 가능한가?

4_이태호 울란바토르 프로세스 – 한반도 평화와 핵문제 해결을 위한 민간 6자회담

5_홍기룡 제주평화의 섬 선포 10년과 해군기지 반대운동 3000일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