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09월 2019-09-01   2028

[특집] 한국의 바이오산업과 신약의 환상

특집_질병사회

한국의 바이오산업과
신약의 환상

글. 정형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

 

 

월간 참여사회 2019년 9월호 (통권 268호)

 

가짜약 ‘인보사’는 어떻게 국내에 유통될 수 있었나 

지난 3월 한국 바이오산업의 기대주로 불렸던 ‘인보사’가 가짜약임이 밝혀졌다. 인보사는 퇴행관절염 치료제로 유전자조작 연골세포를 넣어 한국 최초의 유전자 치료제로 허가받았던 약이다. 이 약은 무려 하나에 가격이 700만 원대의 고가 치료제였지만, 1년 남짓 기간에 무려 3,700여명이 투여를 받았다. 한국 제약바이오협회장은 가짜임이 밝혀지는 순간에도 인보사가 ‘120년 한국 제약사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런 한국바이오의 성공작으로 불렸던 약제가 가짜로 밝혀지는 과정은 국내검증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우선 미국 식품의약품안전국의 세포성분 검사요청에 의해 가짜임이 밝혀졌다. 미국은 시판된 약품도 아니고 임상시험 중인 약품에 검증절차를 요구했으나, 한국은 시판을 하면서도 17년간 단 한 차례도 검증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 오로지 제품 개발사인 코오롱이 제공한 자료만 보고 허가를 내줬다. 

 

다음으로 미국발 가짜입증과정이 한국에서는 이상한 방향으로 왜곡이 되었다. 기존 허가사항과 다른 세포가 포함된 것만 가지고도 당장 허가취소 대상이 되었어야 했지만, 한국 식약처는 2개월을 허송세월하다가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극에 달해서야 허가취소를 결정했다. 거기다 알고 보니 이 가짜약의 허가취소를 미룬 이유가 식약처가 통과시키려는 법안에 영향을 줄 것 때문이란 의혹도 제기되었다. 그 법안은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에 관한 법률안」(이하 ‘첨생법’)으로 인보사 같은 유전자치료제, 줄기세포치료제 등의 허가를 간소화하기 위한 규제완화법안이다.

 

그런데 이 법안의 통과를 위해 이의경 식약처장은 국회에 출석해 인보사사태가 이 법안으로 재발하지 않겠냐는 해당의원 질의에 “지금 경제도 어려운데 이런 산업을 발전시키는 측면도 다소 안전성에 대한 우려는 좀 있지만” 통과를 요청하는 발언을 했다. 다름 아닌 약품안전을 책임지는 정부의 수장이 경제가 어려우니 규제완화 법안을 통과시켜달라는 기괴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후 국정감사에서 이의경 식약처장은 당시 이 약의 경제성평가를 코오롱으로부터 발주 받아 비용대비 효과가 있다는 보고서를 작성한 인물로 밝혀졌다. 700만 원짜리 고가 치료제가 2~3만원의 표준치료보다 얼마나 현격한 효과가 있는지 너무나 궁금한데, 인보사는 아직까지 표준치료와 비교한 논문조차 없는 약물이다. 거기다 2017년 허가과정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2개월 만에 허가보류에서 허가로 중앙약사심의위원회의 결정이 뒤집히는 과정에 각종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상황이 이 지경이다 보니 시민사회단체들은 대책위를 만들고, 현 식약처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식약처의 재발방지대책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의혹은 검찰조사 중이다.

 

한국 바이오산업 거품의 실체 

그런데 이런 가짜약이 인보사뿐일까? 아니나 다를까, 첨생법이 경제 발전을 위한다는 미명 하에 국회를 통과한 그 시점에 신라젠이 개발해 임상3상 시험 중이던 항암바이러스 치료제 ‘펙사벡’도 임상시험이 중단되었다. 이번에도 미국 식품의약품안전국에서 쓸모없는 연구라며 중단을 명령한 것이었다. 신라젠도 코오롱과 비슷하게 미국에서 제대로 시판된 약품은 하나도 없었다. 코오롱은 ‘인보사’, 신라젠은 ‘펙사벡’이라는 바이오의약품 하나에 ‘몰빵’하는 제약회사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임상시험 단계에서부터 시가총액이 3조 원을 넘을 정도로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첫 번째는 가짜회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바이오기업들은 그 동안 연구개발비를 비용이 아닌 무형자산으로 간주해 자산을 부풀려왔다. 예를 들면 삼성바이오가 에버랜드에 있는 동식물을 2조 원대 생물학적 자산으로 간주하는 방식의 자산 부풀기가 이들 기업에서는 만연해 있었다. 때문에 제대로 된 실적이 없어도 자산은 팽창했다. 금융감독원도 이것이 심각한 바이오거품을 일으킨다는 문제가 제기되자 2018년이 돼서야 뒤늦게 대응했다.

 

두 번째는 정부와 언론이 나서서 아직 효과가 입증되지도 않은 약품의 기대가치에 수많은 사람들이 투자하도록 부추겼다. 정부는 바이오헬스가 차세대 동력이라면서 이들 기업에 연구개발비를 계속 지원했다. 정부지원을 받은 기업들은 이를 크게 광고했다. 언론은 경제지를 중심으로 이들 기업이 큰돈을 벌어들일 것이란 장밋빛 환상을 부풀렸다. 당연히 이런 지원은 투자시장에서 이들 기업의 가치를 팽창시키는데 크게 일조했다. 몇몇 언론사는 사실상 바이오기업의 청부기사를 제공하는 몰염치도 보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국의 바이오기업은 사실상 실제 가치에 비해서 너무 과대평가되었다. 주식시장에서는 가장 등락이 큰 품목이고 일종의 ‘도박주’가 되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바이오헬스산업이 여타 제조업과 산업보다 경제성장율에 더 큰 기여를 할 거라며 규제완화책만 주구장창 떠들었다. 설사 ‘인보사’가 가짜약이 아니었다고 해도 바이오산업이 제조업이나 여타 산업을 대체할 차세대 먹거리는 아니다.

 

월간 참여사회 2019년 9월호 (통권 268호)

지난 6월 26일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인보사 사태 해결과 의약품 안전성 확보를 위한 시민대책위’ 출범 기자회견

 

바이오헬스, 돈벌이 아닌 공적통제의 대상이 되어야 

보건의료 산업은 우선 그 산업의 성격상 국내적으로는 가계 가처분소득을 감소시키고, 타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성격을 가진다. 예를 들어서 고가치료제나 비급여 의료기술이 많아지면 개인이 부담할 의료비 부담이 늘거나 공적보험인 건강보험이 부담해야할 재정 부담이 증가한다. 700만 원짜리 인보사를 노인들이 모두 투여 받는 상황을 생각해보시라. 공적체계든, 민간체계든 이는 국민들이 건강문제 이외에 지출할 여력을 떨어뜨릴 뿐 더러,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을 깎는 효과다. 문제는 대부분 산업들은 악영향을 상호견제로 제어하지만, 바이오산업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바이오산업은 건강증진을 위해 노력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다. 그 이면에 막대한 이익과 투기는 부차적으로 다뤄진다. 여기에 건강은 어느 수준까지라는 제한선이 없고, ‘필요’이면서도 ‘권리’이다. 의학적 수요는 한없이 증대시킬 수 있다. 이를 이용해서 바이오산업은 우리 사회에서 균형 잡힌 위치를 차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무한증식할 수 있다. 물론 이는 미국과 유럽의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특허권과 타국을 임상시험기지로 활용해 거둔 막대한 초가이익을 추종하겠다는 의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후발주자로써 한국바이오기업들도 화이자, GSK, 얀센, 로쉬 같은 다국적 제약회사가 되고 싶어 한다. 

 

일본, 독일 등 후발주자들은 대체로 수출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바이오제약제품에 집중한다면 한국은 외국에서는 효과를 입증 받지 못해 국내용에만 머무르는 기형적 구조까지 보여준다. 이는 무엇보다 정부가 국내바이오업체의 요청과 바이오거품으로 발생하는 국민총생산 증가에 집착해 계속 규제완화를 추진했기 때문이다. 바이오기업이 요청하는 블록버스터 제약제품 개발과 ‘의약주권’은 규제완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거꾸로 지난 20여 년간 바이오헬스에 대한 무분별한 규제완화야 말로 국내에서 허가받은 줄기세포 치료제 중 단 하나도 해외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코미디가 연출되고 있다. 이제 인보사 사태를 기점으로 정부는 첨생법 같은 규제완화책을 거둬들이고, 제대로 된 바이오약품의 허가 및 규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첨생법도 외국인을 대상으로하는 의료관광상품에 초점을 맞춘 2014년 일본 아베정부의 「재생의료법」을 복제한 것이다. 차이점은 「재생의료법」 이 일본 내국인이 아니라 외국인 의료관광을 노린 반면, 한국의 법안은 국내용이라는 점이다. 일본의 경제공격이 심해지는 시점에 한국 바이오가 가진 협소함과 불투명성, 이를 관리하는 정부와 규제기관의 방만함 그리고 이를 다루는 청부언론의 문제는 꼭 일소되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다면 인보사 사태를 능가할 큰 사고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이오헬스는 돈벌이가 아니라 공적통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중앙선데이> “규제에 묶인 환자 빅데이터, 신약 개발 발목 잡는다” 2019.3.30 인터뷰 기사 참조



 

 

특집. 질병사회 2019년 9월호 월간참여사회 

1. 질병은 언제부터 질병이 되었나? 황상익

2. 질병은 병균이 만들고 차별은 사회가 만든다 조한진희

3. 질병장사 : 건강과 질병의 상품화에 대하여  변혜진

4. 한국의 바이오산업과 신약의 환상  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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