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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06월
  • 2020.06.01
  • 494

오늘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이병종 · 정영미 가족회원

 

월간참여사회 2020년 6월호 (통권 276호)

 

코로나19 유행의 중심에 섰던 대구. 조금은 긴장하면서 대구로 향하는 KTX에 몸을 실었다. 동대구역 앞은 평온했고,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엔 사람이 많아 기다려야 했다. 대구도 이제 조금씩 코로나19의 상흔을 회복하고 있는 듯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중에서도 소상공인들은 더욱 고통받았을 것이다. 대구에서 2대째 이불 가게를 운영하며 2대째 참여연대를 후원하는 이병종 회원과 어머니 정영미 씨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한 지붕 세 회원, 각기 다른 사연 

아버지 이기록 회원은 1998년부터 2019년까지 20년 넘게 참여연대를 후원했고, 아들 이병종 회원은 아버지의 권유로 2018년 7월부터 후원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권유를 받았을 때 그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당연히 후원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에 이익을 환원하면 결국 다시 내게 돌아온다는 것이 아버지의 생각이었어요. 저도 그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고요. 장사를 하며 경험으로도 느낀 부분입니다.”

 

그는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참여연대를 잘 몰랐다고 한다. 이기록 회원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하기보다, 자식이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방목형’ 아버지였다고 그는 말한다. 실제로 후원을 권유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가 참여연대에 대해 따로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고등학교 때 책을 한 권 주시더라고요. 금융과 사회학에 관한 책이었어요. 책을 주시면서도 그냥 ‘이런 것도 있다’ 하시고는 끝이었어요. 그땐 아무 생각 없이 읽었고 내용을 다 이해하지도 못했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어, 뭔가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면서 정치나 사회참여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마치 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던 소가 어느 날 풀에 관심이 생긴 거예요. ‘이 풀은 성분이 뭐지?’ 했던 거죠. 그러다 나이를 먹고 ‘이 풀로 뭔가를 해봐야겠다’ 하고 눈을 뜨게 된 거죠.”

 

그가 참여연대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은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2011~2012)를 통해서였다. 일본 유학 시절에 지인이 권한 김어준의 책 『건투를 빈다』를 보게 되었고, 그의 방송을 즐겨듣게 되었다. 방송을 듣던 어느 날, 참여연대 간사라는 소개가 귀에 들어왔다. 갑자기 ‘어, 혹시 이거 아버지가 말하던 그 단체인가?’ 하고 알아보니 맞았다. 그제야 참여연대가 무엇을 하는 단체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인터뷰 도중에도 가게를 함께 운영하는 어머니 정영미 씨의 손길은 분주했다. 손님 응대도 하고, 물건을 꼼꼼히 살폈다. 어머니께 불쑥 왜 참여연대를 후원하기로 했는지 여쭸다. 

“참여연대가 생기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라디오 <손숙의 여성시대>에 당시 박원순 변호사가 나와서 ‘참여연대가 이런 일을 하고 있으니 후원해주면 고맙겠습니다’ 하시더라고요. ‘이런 좋은 일을 하는 곳이 있구나. 내가 직접 나서지는 못해도 작게나마 보탬이 되자’ 싶어 후원을 시작했어요. 우리 때는 사회가 마치 진흙탕 같았거든요. 이렇게 후원하다 보면 맑은 물줄기가 흘러나와 진흙탕 속에서 한 송이 연꽃을 피워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월간참여사회 2020년 6월호 (통권 276호)

대구에서 2대째 이불가게를 운영 중인 어머니 정영미 씨는 ‘맑은 물줄기가 흘러나와 진흙탕 속에서 한 송이 연꽃을 피워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참여연대 후원을 시작했다 

 

숨어있던 동지들을 만나다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 모두 더 나은 사회를 그리며 참여연대를 후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는 참여연대를 후원하고 있다는 말은커녕, 평소의 솔직한 생각조차 내비치기 어려웠다.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는 한 사람의 손님도 소중하다. 그러니 동의할 수 없는 말을 들어도 그저 ‘나는 모르쇠’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물론이고, 지금 대표로 있는 이병종 회원도 마찬가지다.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극좌파’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작년 3월에 대구에서 열린 참여연대 ‘지역회원 만남의 날’ 행사는 그에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정말 신기했어요. 참석한 분들을 보는데 마치 숨어있던 독립투사를 발견한 느낌이랄까요? 여태까지 서로 신분을 숨기고 살아왔는데 ‘너 광복군이었어? 나도야’ 이런 느낌인 거죠. 혼자인 줄만 알았는데 혼자가 아니구나. 대구에도 희망을 가지고 뭔가 해보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멀리서 후원하던 참여연대를 직접 만난 소감은 어땠을까. 

“연예인을 방송으로만 보다가 처음으로 팬미팅에 참석한 느낌이랄까요. 어머니는 참여연대를 시대의 등불이라고 생각하셨다면, 저는 경찰 조직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더 맑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톱니바퀴 같은 존재랄까요. 아주 작지만 이 톱니바퀴가 멈추면 큰일이 나는 거죠. 제 기대대로 참여연대가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걸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사실 너무 바쁠 땐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어렵잖아요. (행사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며 제가 어떤 단체를 후원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고요. 순간 가슴 속에서 불꽃이 일었습니다.”

 

4.15 총선, 대구의 변화를 느껴

서문시장 화재 때 가게가 타버리기도

겉으로 내색은 않아도 열정 많은 그에게 지난 21대 총선 결과는 어땠을까. 

“불만이 없는 건 아니지만, 큰 그림에선 만족합니다. 대구에서 진보 세력이 한 곳에서도 승리하지 못한 것은 물론 아쉽죠. 저는 평소에 서문시장을 자주 드나드는데요. 그곳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번에도 진보세력이 이기긴 어렵겠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어요. 이전에는 10~20%에 그쳤던 진보세력 지지율이 30~35%로 뛰어있더라고요. 저는 이게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느꼈어요. 이렇게 서서히 변화하다 보면 제 자식이 성인이 될 때쯤엔 대구도 많이 달라져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옆에서 정영미 씨도 한 마디 덧붙였다. “대구 사람들의 박통(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향수는 어쩔 수 없어요. 그 시대의 혜택을 누려온 세대거든요. 우리 6,70대가 밥을 굶지는 않았어도 마음대로 먹지 못했고, 우리는 학교 다닐 때 고무신을 신었는데 세 살 아래 동생은 고무신을 모를 정도로 격변하는 시대를 살아왔으니까요.”

 

최근 코로나19 상황은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였지만 대구의, 그것도 소상공인들에게는 더욱 엄혹했을 터다. 조심스럽게 그동안 가게 사정은 어땠는지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저도 당황스러웠던 게 오히려 전보다 원단 주문이 늘어났어요. 서울에서 면 마스크 제작을 위해 원단을 대량으로 주문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서문시장은 많이 어려웠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주 고객층이 50대 이상이라 다들 겁이 나서 시장에 나오기를 꺼렸죠. 평소엔 사람과 차와 물건이 뒤섞이는 아주 복잡한 곳인데, 코로나19 이후에는 한산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웠어요. 서문시장에는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분들도 많아서 지금도 생활고를 겪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사실 이병종 회원 가족은 이전에 지금보다 더 큰 일을 겪었다. 이병종 회원이 고등학생이던 2006년, 서문시장에 큰 화재가 났고, 가게가 몽땅 타버린 것이다. 그 이후로 지금의 위치(OK혼수백화점)로 가게를 옮겼다. 정영미 씨는 그때를 돌아보면 힘들어할 겨를도 없었다고 회상한다.

“건물에 불이 나면 아무 대책이 없어요. 보상금이라곤 적십자에서 100만 원 나온 게 전부였죠. 그때 아예 이곳으로 가게를 옮겼어요. 그 시절엔 모두가 힘들었으니 크게 연연하진 않았어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일단 살고 봐야죠.”

 

그렇게 어려운 시기에 (참여연대) 후원 중단을 고민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정영미 씨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건 아니죠. 내가 얼마를 벌든 이 나라에서 번 돈이잖아요. 많이는 못 해도 할 수 있는 만큼은 사회에 환원하며 살아야죠.”

 

월간참여사회 2020년 6월호 (통권 276호)

이병종 회원의 이불가게가 들어선 상가 입구에 붙은 안내문. 코로나19로 대구는 특별재난구역으로 지정됐다 

 

참여연대가 기본소득에 더 관심 기울였으면

다행히 이번에 정부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이 서문시장에 힘을 주었다고 했다.

“오늘도 굉장히 바빴어요. 서문시장 지하에 재봉하는 이모님들이 많은데 간만에 활기가 넘치더라고요. 서로 ‘너도 그거 받았냐’ 묻기도 하고요. 평소에 정부를 안 좋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이건 별개라고 말씀하셔서 놀랐어요. ‘이거 다 세금이야, 나중에 발목 잡혀’ 하다가도 ‘일단 경제를 살려야지. 돈이 돌아가니 살 거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체감이 잘 되는 정책이고 저희도 이 돈으로 오랜만에 맛있는 거 먹으려고 합니다.”

 

그는 기본소득은 아니지만 긴급재난지원금 정책이 실제로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참여연대에서도 이에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공수처 설치나 검찰개혁도 중요하지만 참여연대에서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많이 다뤄줬으면 좋겠어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국민 모두가 기본소득을 경험했잖아요. 10년은 지나야 기본소득이 실현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 시기가 앞당겨질 수도 있겠다 싶어요. 이미 ‘고용 없는 성장’ 시대로 들어섰잖아요. 참여연대에서 기본소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리도 많이 만들고 국민에게 기본소득정책을 알려나갔으면 합니다.”

 

참여연대에서 지역 회원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할지 물어보았다. 그는 기존 회원 모임 이외에 2040 젊은 세대를 위한 회원모임도 열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20대부터 40대까지, 젊은 세대들끼리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라도 모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30대인데요. 저희 또래 중에 정치참여에 관심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공부해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이런 친구들을 참여연대에서 공략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대구 시민들에게 전하고픈 말을 들어보았다. 

“많은 분들이 ‘역시 대구는 안 된다’며 무력감을 느끼시더라고요. 하지만 김부겸 씨처럼 흐름을 바꾸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러니 긍정적으로 생각했으면 합니다. 70대인 거래처 사장님이 해주신 얘기가 있어요. ‘대구가 옛날부터 이랬던 건 아니야. 대구는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곳이고, 2.28 민주운동이 일어난 곳이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해. 시간은 걸리겠지만 대구도 바뀔 수 있어’. 그러니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수의 심장’ 대구는 불과 몇십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앞으로 대구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때까지 이병종 회원은 묵묵히 자리를 지킬 것이다. 언제든 ‘저 참여연대 회원입니다’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리며.  

 

❶  참여연대 내부 기록상, 아버지 이기록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으나, 아버지 이기록 씨와 어머니 정영미 씨가 함께 후원한 것으로 확인됨   

 


글. 금민지 시민객원기자 

다큐멘터리, 상담, 명상, 자연 치유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고 공부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해 주한독일문화원 온라인매거진에서 도서관 이용자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사는 길을 찾아 글이나 강의, 다른 어떤 형식으로든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꿈이다.

녹취. 조연우 자원활동가 

사진.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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