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8년 12월 2008-12-04   1707

기획_민생도 살고 경제도 사는 경제위기 극복책이 나와야



민생도 살고 경제도 사는
경제위기 극복책이 나와야



김남근 변호사,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 droith@paran.com

겁에 질린 서민들에게 무엇이든 인내가 요구되었던 시절

단군 이래 최대의 환란(?)이라고까지 회자되었던 IMF 경제위기. 경제위기 극복책이라면 무엇이라도 다 용인되었던 1998년~2000년의 그 시절



대기업을 살리려면 노동의 유연화전략이 필요하다며 그 당시에는 듣기에도 생소하던 정리해고, 파견근로자 등 비정규직 제도가 도입되었다. 외화를 빌려주는 IMF의 요구라는 이유로 수십 년간 서민금융에서 고리대금의 폐해에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이자제한법이 폐지되었다. 부동산경기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며 전통적인 서민들의 내 집 마련 지원책이던 무주택자우선분양권제도, 분양가상한제, 소형아파트의무건설비율제 등이 모두 폐지되었고,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하여 지방 균형발전 재정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도입되었던 토지초과이득세가 폐지되고 개발이익환수제도는 범위와 세율을 축소하여 유명무실화되었다. 그러다가 중산층·서민들이 실업과 비정규직으로 소득이 급락하여 빈곤층화 되면 어떻게 하느냐, 서민들이 고리대금에 몰려 빚이 늘고 파산하면 어떻게 하느냐, 부동산투기가 재현되어 집값이 뛰면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제기에 대하여는 정부는 몰락하는 서민·중산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만들어지고 있다고만 대답했다.

그러나 전자의 경기활성화대책은 1998년, 1999년 사이 순식간에 모두 실시되었지만, 사회안전망의 대책으로 얘기되던 고용보험의 확대, 비정규직 보호제도, 최저임금 인상 등의 노동안전망 대책이나 파산한 서민들이 경제적으로 회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개인파산면책, 개인회생제도는 너무도 더디게 만들어지거나 결국 만들어지지 못했다. 중소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이미 대형상가 상인들이 대부분 망한 뒤에야 만들어졌지만, 곧 보호범위가 너무 좁아 유명무실화되었고 이자제한법은 노무현 정부 말년에야 부활됐다. 부동산투기 조장 정책으로 집값이 폭등하기 시작하자 2000년경부터 정부는 부동산투기전담반을 만들어 완장을 채우고 투기현장을 돌아다니게 했다. 하지만 없어진 분양가상한제, 무주택자우선분양권제는 노무현 정부의 말년인 2007년에야 겨우 부활했고, 토지초과이득세는 노무현 정부에서 종합부동산세로 부활했지만 정권 말기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 개발이익환수제도는 노무현 정권 말에 8·31대책, 3·30대책으로 겨우 부활했으나 제대로 실시도 되지 못하고 있다.

해방 이후 처음으로 민주정부가 들어섰다는 그 시절, 독재정권시절 만들었던 규제는 모두 악이고, 규제완화만이 살길이라는 민주정부의 정책슬로건에 감히 무어라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렵던 시절이었다. 일부 진보진영에서 각종 규제완화 정책에 대한 대항슬로건으로 “신자유주의 반대”를 외치고 있었지만, ‘신자유주의’라는 추상적 구호는 마치 길거리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흔들며 정부정책을 비판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정도였다. IMF 경제위기가 한참 진행되던 시절 변호사 개업을 하고 본격적으로 참여연대 활동을 시작하던 필자로서는 노동의 유연화전략, 부동산경기활성화정책이 우리사회에 어떤 뼈아픈 결과를 낳을지 깊이 체감하지 못했다. 그 당시 시민운동도 서민들의 민생대책에는 관심이 적었고 권력감시운동, 선거·정당제도 개선 등 정치적 민주화 의제나 대기업 경영민주화 등의 의제에 몰두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 일자리를 구하러 나선 한 일용직 노동자가 7일 새벽 경기 성남시 수정구 태평역 부근의 인력사무소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사진 : 한겨레>


심화되는 사회양극화


신빈곤층 330만, 신용불량자 400만, 비정규직 500만, 집값은 UN 권고기준의 4~5배, 가계빚 660조 원

이렇게 필연적으로 서민들에게 일자리·소득 감소, 부채의 증가, 자산의 상대적 감소 등의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경기활성화 대책은 거침없이 시행하면서, 그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사회안전망 강화정책은 민주정부란 타이틀을 내걸고 구호로만 외쳐지거나 한참 뒤늦게 만들어졌다. 그 결과 위 통계가 말해주듯 우리사회는 소득, 부채, 자산 모든 측면에서 양극화가 극심하게 되었다. 정부가 고용보험, 최저생계비와 최저임금인상, 파산·면책제도 활성화, 비정규직 양산방지 및 보호제도와 같은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근본적인 처방을 미루고 미봉책으로 제시한 것이 신용카드사용의 확산이다. 물론 신용카드는 거래를 투명하게 하여 조세정의를 실현하는 등의 정책목표도 있었다. 그러나 카드이용자의 소득수준을 감안하지 않고 규제완화라는 미명 아래 카드 사용한도액, 길거리에서 카드발급금지 등 각종 여신감독규정을 철폐하니 순식간에 1억 장이 넘는 카드가 남발되었고 실업, 비정규직화, 퇴직층의 대량 중소상업 창업으로 인한 부실화로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던 서민·중산층들은 카드돌려막기로 연명하다 결국 엄청난 규모의 가계부채를 떠앉고 파산상태에 도달하였다. 예를 들어, 미국식의 사회안전망처럼 실업자가 되는 경우 6개월에서 1년 정도 실업수당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고, 실업의 장기화로 파산지경에 이르게 되는 경우에는 법원에 파산·면책을 신청하여 경제회생의 기회를 마련하도록 배려하는 안전장치가 없다보니 경제위기가 극복되어 경제가 정상화되는 시점에서도 한번 몰락한 서민·중산층들은 다시 회생 가능한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빈곤과 저소득의 생활이 장기화·구조화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게 신빈곤층이 양산되고 구조화되면서 경제 전체적으로 내수소비의 위축으로 성장동력을 잃어갔다. 정부는 더욱더 부동산 투기, 토목공사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내수경기를 살리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아울러 내수가 어려우니 수출만이 살길이라며 대기업들이 법을 어기며 비정규직을 대규모로 고용하고 정규직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주고, 중소기업 납품단가 인하 등의 불공정거래행위를 하는 것도 눈감아주게 된다. 이렇게 비정규직과 중소기업은 더 어려워졌고 사회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정부의 최소한의 사회부조에 의존하던 전통적 빈곤층은 빈곤에 이미 적응해 있지만, 신빈곤층은 갑작스런 빈곤화에 적응하지 못해 자살, 가정파탄, 각종범죄 등 사회병리현상도 증가했다.


10년 만의 위기에 10년 전 극복책 제시

10년 만에 돌아온 또 다른 경제위기와 10년 전의 위기와 극복책으로부터 아무런 평가와 교훈도 없이 돌출적으로 튀어나오는 경제위기 극복책. 결국 10년 전의 재판



우리 정부의 경제위기대책은 건설업과 조선업, 은행과 대기업과 부자들이 망하는 것부터 먼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부자들이 투자를 활성화하면 일자리가 창출되고 언젠가는 그 혜택이 서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민들도 어쩔 수 없이 기대(?)를 할 수밖에 없는 정부의 노골적인 대기업·부자 감싸기, 감세·퍼주기 재정정책을 내놓는 것이다. 또한 10년 전의 부동산경기 활성화정책을 빼다 박은 부동산투기조장 정책들을 남발하고 있다. 10년 전 토지보유단계에서 일부 토지불로소득을 환수하려고 한 토지초과이득세가 폐지되었듯이 토지보유세인 종합부동산세를 사실상 폐지하려 하고, 미분양아파트를 구입하면 5년분 양도소득세를 면세해주고, 재건축규제완화 등 각종 부동산개발 사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함과 아울러 겨우 8년 만에 부활된 분양가상한제도도 다시 폐지의 대상에 올라와 있고 이미 소형아파트의무건설비율제 등은 폐지수순에 와 있는 듯하다. 반면에 정부정책의 중심에서 경제위기의 장기화로 인한 서민·중산층의 신빈곤층화에 대비한 사회안전망 확충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경제위기는 급속히 실물경제로 이어져 감원 등의 계획이 발표되고 채용계획이 사라지는 등 대규모 실업과 비정규직 확산이 예견됐다. 주택가격이 계속 하락할 경우 상당수의 가계파산이 예상된다. 대학에서는 대규모 휴학이 예상되고,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하도급행위 또한 예상된다. 하지만 고용보험 확충, 최저임금·최저생계비 인상, 파산·면책제도 활성화, 대기업의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납품단가연동제, 불공정하도급 보호대책, 등록금 소득연계형 후불제와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제시되는 서민·중산층의 몰락을 막고 경제회생을 돕는 정책은 찾아볼 수가 없다. 역사상 대표적인 경제위기 상황에서의 극복책으로 제시되는 뉴딜정책은 테네시강 댐건설 등 각종 공공토목공사를 통한 일자리창출만이 아니라 산별노동조합 강화, 최저임금 인상, 고용보험 확충, 의료보장제도 등 각종 사회보장제도,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정책이 핵심내용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오로지 토목공사 같은 건설경기 활성화에만 초점이 가는 모양이다. 일본이 1980년대 말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사회안전망 확충은 소홀히 하고 건설경기활성화에만 집착하다 1990년대의 장기불황의 파국을 자초했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10년 전으로부터의 교훈


서민·중산층의 경제회생과 민생에 초점을 맞추는 경제위기 극복책만이 장기적으로 우리경제를 살리는 진정한 위기극복책

서민·중산층에 대한 급조한 일회성 선심성정책이 아니라 서민·중산층의 몰락을 막고 서민·중산층의 경제회생을 통한 소비·소득창출 등의 견실한 내수 활성화 정책으로만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현재, 대다수 비정규직 등이 제외되어 수급율이 35%에 머물고 있고, 급여수준이 실업 전의 28% 수준에서만 보전되어 그 기능이 매우 취약한 고용보험을 적어도 50% 이상의 근로자에게 적용 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실업급여를 인상하고, 최저생계비와 최저임금 인상으로 비정규직, 중소기업 근로자로 전락(?)하더라도 기본적인 생계의 유지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 전통적인 사회안전망 확충 계획을 세워야 한다. 아울러 파산·면책 절차의 간소화, 개인회생의 변제기간 단축, 파산법원 확충 등 개인파산자 양산에 대비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공금융기관을 이용하지 못하여 고리대금이 판을 치는 대부업시장에 내몰려 파산으로 직행하고 있는 서민 금융이용자 보호를 위해 생계형 소액신용대출을 전담하는 국책은행을 설립하고, 금융기관이 소액신용대출과 중소기업대출 등 자금의 공정한 배분이라는 공적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지를 감독할 금융기관공정성강화를위한특별법 등 서민금융에 대한 감독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 경제위기를 중소기업에 전가하려는 대기업들의 불공정하도급 횡포로부터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하여 납품단가연동제를 조기에 도입하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중소기업보호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이미 건설업이 경제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세계 최고인 상태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일자리창출을 토목에서만 찾지 말고 고용창출 효과가 높은 교육·지식·의료 등의 서비스산업 분야나 내수를 담당하는 중소기업활성화를 통해 찾으려는 정책전환이 필요하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위기 극복책은 재정을 지식과 교육 등 인적자본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투자를 바탕으로 IT산업 등 새로운 산업을 일으켜 경제침체를 극복했다. 이미 지방대학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휴학하려는 대학생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등록금문제에 대해 지금과 같이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 대량 휴학이 불가피하다. 정부가 등록금을 대납하고 대학생이 졸업하여 일정한 소득(예를 들어 2,000만 원 이상)을 얻게 되었을 때 그 초과소득의 9% 정도를 세금으로 납부하는 대상을 학부모의 소득분위가 6분위 이하 범위로 축소하더라도 당장 내년부터 실시해야 한다. 대학생들이 휴학하여 거리로 나오는 것보다는 제때 졸업해 취업·창업을 하여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 경제위기 극복의 지름길이다. 그 효과도 의심되고 부동산거품 제거를 막는 부작용도 의심되는 건설회사에 9조 원을 퍼주는 재정정책을 쓰면서도 2조 원 정도의 예산(그 예산도 6~7년 후부터는 회수되는 것이어서 재정손실은 최소화되는 것이다)을 마련할 수 없어 이러한 소득연계형 등록금후불제를 실시하지 못한다는 것은 정부의 정책방향이 한참 빗나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2009년에는 경제위기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국민들의 위기의식에 편승하여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미명 아래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언론·인터넷·시민들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고, 경제위기 극복책으로 강요되는 임금동결이나 구조조정·감원 등에 반발하는 노동쟁의에 대한 탄압이 심화될 우려가 크다. 시민단체의 정부에 대한 견제·감시기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서민·중산층·중소기업 등의 민생문제에 대해서도 과거 10년 전의 경제위기 때와는 달리 더욱 날카로운 비판과 대안제시의 기능을 소홀히 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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