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0년 07-08월 2020-07-01   1120

[여는글] 주마간화 走馬看花

여는글

주마간화 走馬看花 

 

얼마 전 고등학교 학생에게 스마트폰에 있는 글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대략 원고지 20매 분량의 글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엄청난 속도로 글을 읽어 내려갔다. 마치 쏜살같은, 전광석화 같은 속도였다. 그래서 속독법을 익혔느냐고 물으니 그건 아니란다. 문장을 다 읽었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어떤 내용이냐고 물으니 대충 줄거리만을 이해하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과 의미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순간 ‘주마간화走馬看花’라는 말이 떠올랐다. 전력 질주하는 말을 타고 가면서 길가의 꽃을 본다는 뜻이다. 말을 타고 가는 이가 분명 꽃을 본 것은 사실이다. 아니 그저 꽃을 보았을 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더 적확히 말하자면 꽃을 보았으나 꽃을 보지 못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산중에 살다 보니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때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때로는 인터넷 쇼핑을 이용한다. 물건을 주문하는 데 20초가 채 걸리지 않는다. 온라인쇼핑몰이 시키는 대로 스마트폰을 움직인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아직은 낯설다. 매우 빠르기 때문에 편리하다는 생각이 들고 좋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솔바람 소리를 듣고 사는 나도 머지않아 몸을 움직이지 않는 거래와 빠른 주문 속도에 익숙해질 것이다. 주문의 속도와 함께 배송의 속도에 한 번 더 놀란다. 지금이야 물건이 도착하는 속도에 놀란다지만 이 또한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질 것이다. 편함, 익숙함, 무감각, 이것들은 개인의 삶과 사회적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변질시킬 것인가. 정밀한 점검이 필요하지 않을까?

 

빠른 속도가 우리 삶에 새겨놓은 흔적을 헤아려 본다. 먼저 늘 위험이 따른다. 속도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와 경쟁으로 측정된다. 하여 배달하는 사람들은 속도가 곧 자신이 몸담은 회사의 영업이익으로 직결된다. 그런데 빠른 속도는 여유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빠를수록 여유 시간이 줄어든다. 모순과 역설이다. 나는 ‘로켓배송’이니 ‘천리마 탁송’이니 하는 말들이 섬찟하다. 오늘 한 발을 빨리 뛰었는데, 내일은 두 발 더 빨리 뛰어야 겨우 뒤처지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빠른 속도는 더 이상 빠른 속도가 아니다. 오직 보통 속도와 빠른 속도의 경쟁만 있을 뿐이다. 보통 속도는 더 이상 정상 속도, 혹은 적정 속도가 되지 못한다. 계속 더 빠른 속도가 정상 속도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제자리에 머물기 위해서는 온 힘을 다해 뛰어야 한다. 만약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선 지금보다 최소한 두 배는 빨라야 한다.” 『겨울나라 엘리스』에 등장하는 여왕 레드 퀸의 말이다. 21세기 지금, ‘레드퀸의 법칙’은 매일 숨가쁘게 작동한다.

 

그래서 빠른 속도를 편리하고, 최상의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은, 어쩌면 ‘위험의 외주화’의 공범일지도 모른다. 쫓기고, 헐떡거리며 달리는 인간 천리마들과 로켓들의 고달픔으로 잠시 기분이 좋아지는 우리들의 생활이라니….

 

한편 빠른 속도에 길들여진 신체는 우리의 내면을 위협한다. 차분히 자신을 살피고 헤아려 보는 시간을 빼앗기 때문이다. 침착하고 사려 깊은 태도를 유지하는 대신 매사에 쉽게 판단하고, 성급하게 결정한다. 참을성 없고, 이웃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자신의 견해와 경험에 의존하여 세상을 바라본다. 점점 경박해지고 이웃에게는 상처를 주기 쉽다. 책을 읽어도 줄거리와 정보만 취할 뿐이다. 그 내용과 의미를 내면화하고 자기화하지 않는다.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취하게 된다. 그래서 깊고 그윽한 인격의 향기를 뿜어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아마도 ‘적정’이 답일 듯하다. ‘적정기술’이 있듯이 속도에도 나와 우리 삶이 헐떡거리지 않을 수 있는 ‘적정속도’가 필요하다. 적정한 속도를 유지하려면 성장과 독점이라는 미혹의 문명에 대한 큰 전환이 있어야 하겠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인의 말은 우리 삶의 전반에 적용되어야할 적정속도의 나침판이다. 주마간화, 빨리는 달리는 말 위에서 어찌 예쁘고 사랑스런 꽃이 보이겠는가. 느끼겠는가. 

 


글. 법인 스님 월간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전 참여연대 공동대표 

16세인 중학교 3학년 때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이라는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과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을 지냈으며,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에서 공부하고 있다.

 

>>[목차] 참여사회 2020년 7-8월호 (통권 2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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