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0년 11월 2020-11-01   729

[여는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法

여는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法 

 

고불 맹사성은 조선 시대 초기의 이름난 재상이다. 스무 살에 파주 군수가 된 그가 어느 날 이름 없는 스님을 찾아가 공직자로서 귀감이 될 만한 말씀을 청했다. 

 

“그저 착한 일을 많이 하시면 됩니다.”

“그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인데 그걸 좌우명이라고 말씀하십니까?”

 

거만한 태도로 일어서려는 맹사성에게 스님은 차나 한잔 하고 가라고 한다. 마지못해 앉아 있는 맹사성에게 스님은 찻잔이 넘치도록 차를 따랐다. 맹사성이 크게 소리쳤다.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칩니다.” 그러자 스님이 말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치는 것은 알면서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모르십니까?” 이 한마디에 그는 부끄러워한다. 차를 마시고 급히 나가다가 그만 문틀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은 빙그레 웃으면 말한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 아마도 맹사성은 그때 두려움과 부끄러움과 겸손을 온몸으로 깨달았을 것이다.

 

맹사성의 청빈하고 고결한 삶을 말해 주는 일화가 있다. 비 오는 어느 날 맹사성의 집을 방문한 당대의 높은 권력가는 크게 놀란다. 정승을 지낸 그의 집이 너무도 작고 초라한 것이다. 방 안으로 들어간 권력가는 또 한 번 놀란다. 여기저기 빗물 새는 곳에 물그릇들이 놓여 있었다. 권력가는 그만 가슴이 막혀 말한다. “대감께서 어찌 이처럼 비가 새는 초라한 집에서….” 맹사성이 답한다. “허허, 그런 말 마시오. 이런 집조차 갖지 못한 백성이 얼마나 많은지 아오?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면 나라의 벼슬아치로서 부끄럽소. 나야 그에 비하면 호강 아니오?” 

 

부끄러움과 두려움, 그리고 겸손함은 청빈한 삶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공직자에게 성찰과 처신은 중요한 것이다. 우맹의관優孟衣冠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의 재상 손숙오의 친구였던 음악가 우맹이 손숙오가 죽은 뒤, 그의 인품을 닮고자 그의 복장을 하고 1년간 지냈다는 일화에서 유래한다. 

 

손숙오는 세 번이나 재상에 임명되고 세 번이나 정치적 모략에 의해 파직당했다. 《장자》에 보면 견오라는 자가 손숙오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께서는 세 번이나 재상에 임명됐지만 한 번도 영광스러워하는 것을 보지 못했고, 세 번이나 해직되어 고향에 돌아왔지만 한 번도 괴로워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견오의 물음에 손숙오는 이렇게 답했다.

 

“내게 무슨 초인적인 힘이 있겠는가? 나는 그저 재상에 임명된 일을 피할 수 없는 책임으로 생각했고, 자리에서 쫓겨난 것은 막을 수 없는 일로 생각했을 뿐이다. 나는 그 일이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일이 풀리는 대로 내버려 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태연자약 할 수 있다. 내게 무슨 초인적인 능력이 있을까? 나는 그저 이른바 영광이나 괴로움이 대체 누구 것인지 분간할 수 없을 뿐이다. 그것이 내 것인가, 아니면 재상 것인가? 만약 재상 것이라면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내가 영광스러워하거나 괴로워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만약 내 것이라면 재상과는 아무 관계가 없지 않은가? 재상과 관련이 없는 이상 내가 그 자리를 맡느냐 맡지 않느냐를 가지고 영광스러워하거나 괴로워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바람을 쐬면서 유람할 시간도 부족한데 무엇 때문에 귀천을 생각하고, 또 그것 때문에 슬프고 기뻐해야 한단 말인가?” 

 

손숙오는 재상의 자리에 있었을 때 재산을 축적하지 않아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또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자손에게 관직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후손들은 가난하게 살았다. 이에 우맹은 이렇게 노래했다.

 

탐관오리는 해서는 안 되는 데도 하고, 청백리는 할 만한 데도 안 하는구나 / 탐관오리가 되면 안 되는 것은 추하고 비천해서인데 / 그래도 하려는 까닭은 자손의 배를 불릴 수 있기 때문이지 / 청백리가 되려는 것은 고상하고 깨끗해서인데 / 그래도 하지 않으려는 것은 자손이 배를 곯기 때문이라네 / 그대여, 초나라 재상 손숙오를 보지 못했는가?

 

오늘날,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이 더 많이 먹으려고 한다. 많이 배우고 평생을 안전하게 살 만한 재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직위를 교묘히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 금생에는 맹사성이나 손숙오의 인품으로 전환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러니 법으로라도 비겁하고 못된 짓을 못 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제정하려고 혹은 안 하려고 버티는 법 이름이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참 얼굴 뜨거운 법이다. 하늘을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가. 

 

▶ <특집> ‘이해충돌의 이해’로 이어집니다 


글. 법인 스님 월간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전 참여연대 공동대표 

전생에 지은 복이 있었는지 소년 시절 출가수행자가 되었다. 지금은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에서 일과 공부를 함께 하고 있다. 실상사 작은학교 인문학 교사로 교학상장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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