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11월 2011-11-04   12312

김용민이 만난 사람-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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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지마, 씨바!”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김용민 시사평론가  사진 김은진 작가

‘나는 꼼수다’ 덕분에 일상이 180도 달라졌다. 바빠졌다. 또 알아보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허투루 표현했다가는 사달 날 염려 또한 커졌다. 어쨌든 영향력 확대의 산물이니 ‘복’에 다름 아니다. 리더격인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를 알게 된 점은 내 일생에 행운일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그와 인터뷰이 대 인터뷰어로 만나야 한다. 시간을 내달라고 하니 이런 문자 답변이 왔다. “<닥치고 정치> 4,5,6장부터 닥치고 읽고 와.” 2010년 1월호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이후 가장 만만한 대담자인데 조건이 많다. 물론 그 덕에 “김용민, 유머와 시사와 프로듀싱을 동시에 이해해. 매우 드문 재능이지”라는 본문 중 과찬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대화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언급은 해야겠다. 요즘 물밀 듯 들어오는 ‘나는 꼼수다’와 연관된 사업제안, 강연 섭외, 집필 청탁 등에 대해 “총수에게 연락하라”며 김어준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점을 말이다. 왜 이러느냐. 김어준 총수에게 ‘OK’ 사인 받기란 마치 <참여사회> 다음 인터뷰 대상자로 이명박 대통령을 섭외하는 것만큼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거절의 몫을 그에게 전가한다는 뜻은 아니다. 여러 제안이 ‘나는 꼼수다’ 아우라에 걸 맞는 것인지 세심하게 따질 수 있는 안목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직관은 감히 범접하기 힘들다. 여기서 직관에 밑줄 그어라.

 

“논리가 모든 것의 정석이라면 왜…”

최근 김어준 총수와, 당대 최고의 비평가 진중권 전 중앙대 겸임교수 사이가 안 좋다. 사감(私感) 때문은 아니다. 진중권 전 교수는 “황우석·심형래 사건으로 스타일을 구긴 딴지의 총수가 여기서 명예회복의 좋은 기회를 봤다. 그는 새로운 미디어의 위력을 활용했고, 결과는 그들이 자화자찬하는 대로 과연 성공적이었다”고 김어준 총수를 비판했다. 곽노현 서울교육감 후보자 매수 의혹과 관련해 김어준 총수가 ‘진보 진영의 도덕적 순결주의 때문에 겁을 먹어 적에게 동지를 떠넘긴 이적행위를 했다’는 투(진중권 전 교수 표현)에 대한 반박이었다.

  두 사람과 이런저런 교분을 가진 터라 단정지어 언급하기 쉽지 않다만, 두 사람의 ‘다름’은 코드의 차이라고나 할까. 한 사람은 지극한 논리가이며, 다른 한 사람은 달달한 감성론자다. 따라서 둘의 주장은 어차피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없다. 김어준 총수는 왜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면서까지 직관에 의지할까?  이 한마디가 가장 강렬하다.

  “논리가 모든 것의 정석이라면 왜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는가.”

  그러면서 ‘감성이 논리를 이긴다’고 했다. 1997년 아들의 병역 면탈 시비가 거론되자 이회창 신한국당 대선 후보가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더 큰 역풍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래, 법관 출신이니 당연히 법적으로 문제 없게 했겠지’라는 냉소를 자아냈던 것이다(이회창 후보는 병역비리와 무관하다는 것이 훗날 법정의 결론이었다). 어쨌든 논리로써는 도저히 설명 불가능한 것이 정서인데, 이를 간과했던 것이다. 김어준 총수는 이 이야기를 보수가 아닌 진보 진영에게 던진다.

  “민주노동당이 17대 국회의원을 대거 배출하자 내린 결정 중 하나가 국회의원 세비를 걷어 일정 금액을 제한다는 거였어. 노동자 평균 월급만 받고 나머지는 당에 다시 내놓은 거야. 함께 투쟁해온 동지들 두고 자기만 출세한 것 같아 미안했던 게고. 하지만 말도 안 되는 거야. 그 세비로 어떻게든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해줘야지. 어떻게 하면 덜 미안할까, 어떻게 하면 공평할까를 생각할 게 아니라. 그런 도덕적 조직적 강박이 진보 정당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중 하나야. 스스로 고립되는 길을 고고한 선명성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합리화하는 사고 체계를 가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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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어준 총수의 오랜 ‘철학’ 중에 하나는 ‘선거에서 당선이란 정치인이 대중들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왔던 부채 의식, 그 빚을 한 번에 찾아가는 것’이다. 지역구도를 해체하기 위해 연쇄 낙선 등 고난을 피하지 않은 노무현에게 대통령 자리를 맡긴 민심의 선택을 이런 식으로 풀어냈다. 그런데 진보 정치가 논리에 치우쳐 대중의 정서와는 별개로 작동한다는 지적이다.

  “농담도 하고 술도 마시고 손도 잡고 그러다 점점 서로 매력을 느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건데. 그런데 진보는 이런 식이야. 처음 만난 상대에게 재무 계획서와 신혼방 설계도를 딱 꺼내놔. 그리고 입주할 주택의 입지 조건과 구입할 차량의 대출 조건 및 주변 교육 환경의 우수성에 대해 부동산과 금융, 교육 전문 용어를 섞어 진지하게 프리젠테이션하지.”

  그러나 공학에 범접하는 정치 영역을 감성이란 열쇠말로만 풀어낼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다른 각도에서 새로운 의문을 던져본다. 일부 진보진영은 김어준 총수의 ‘민족주의’ 코드를 비판한다. 실제 월드컵이 되면 그는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나와의 첫 조우도 실은 2006년 독일월드컵 특별 방송에서였다. ‘한국이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수십분간 설파한 그가 생각났다. (이런 그 정서를 황우석 박사 비판에 대한 반대 논리, 흔히들 말하는 ‘황빠’ 정서와 연결 지어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난생처음 연애에 빠져 정신없는 사람한테 너 그렇게 빠졌다간 헤어질 때 살인난다고 경고하는 수준의 오버야. 우리 편 이기는 게 좋은 건 좌우를 떠난 본능이야. 그 본능이 위험한 경계를 넘어설 때나 경고가 필요한 거지. 그런 집단 정서를 토양으로 민족주의가 발화한다고 말하는 게 논리적으로는 맞는 지적인데, 논리적으로만 맞아서 웃겨.”

  이런 열정을 민족주의라는 단어 자체에 스스로 포박하는 것, 즉 내면 깊숙한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원시적 감정을 무엇이라고 개념 규정을 해버리는 순간, 비인간적인 것이며 따라서 진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박원순 야권통합 후보의 완승으로 끝난 10.26 서울시장 재보선 결과를 보더라도 20~40대의 높은 투표 열기는 논리보다는 감성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는 게 맞다. 이명박 정부 내내 억눌러야 했던 분노를 일거에 표출했다는 설명이다. 지난 6.2지방선거에서 소수당 후보가 정당 민주주의에 반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바람에 끝내 불발됐던 야권 단일화가 이번엔 엄청난 추진력을 발산한 점, 이게 어찌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냐는 것이다.

 

감성으로 풀어낸 정치 – 마음껏 야유하고 조롱하라!

“안철수, 박경철 정도 되는 인물들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주기를 바라는 사회적 열망도 생각해보라고. 지금 정치인들은 이명박으로 인해 대중들이 느끼는 이 거대한 결핍의 정체를 전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이런것을 잘 이용하는 당이 한나라당 아닌가. 코너에 몰렸다 싶으면 꺼내드는 ‘색깔론’. 전후 반세기 지난 이 시점까지 단골 카드다. 약발이 받을 때에는 모든 논리는 실종된다. 말 그대로 악성이다. 그러나 자기 살기도 팍팍해 극단에 내몰린 서민 청년층에까지 무차별적으로 쏟아냈다. 돌아오는 것은 빈축 뿐. 김어준 총수는 공감을 전제한 감성을 강조한다. 그의 ‘어록’을 보면 대중의 정서를 배려한 것 같은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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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자기 고충을 털어 놓는 건 문제를 대신 해결해 달라는 게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동정하고 공감해 달라는, 일종의 투정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이야기로 화제를 틀어보겠다. 콘텐츠 부족이라는 고질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는 강력한 대권주자다. 이를 논리적으로 풀어낼 길은 없다. 감성에서 그 연유를 찾자면 아버지 어머니의 불운한 죽음, 그 부모가 일군 경제성장의 정치적 실과의 계승, 사사롭지 않음, 이 정도로 얼추 설명이 된다. 그러나 이번 재보선에서 수도권에서의 약한 경쟁력을 절감했다. 그런데 과연 2012년 12월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

  “박근혜에 대한 대중의 애착은 집단 무의식의 감성적 퇴행이라고 말할 수 있어. 특히 최근엔 이명박으로 인해 불안해진 대중의 정서가, 뭔가 붙들 곳을 찾다가 박근혜가 상징하는 ‘과거’와 만나 안정을 느껴버리는 양상이지. 하지만 그게 이미지에 불과해. 물론 그녀가 타고난 애티튜드의 힘이나 그녀를 둘러싼 이미지의 힘을 과소평가 하겠다는 게 아니야. 그 힘으로 여기까지 온 거니까. 대단한 대중적 파워지. 하지만 그 이미지가 무슨 실체적 실력이라고 생각하는 건 웃긴 일이라고. 박정희는 종교의 영역에 들어갔어. 신화가 됐다고.”

  박정희 체제는 잔인한 독재 시스템이었지만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었던 기회의 공간이었다. 그 시대를 희구하는 정서가 대세를 이룰 수 있을까. 그래서 최초의 부녀 대통령 탄생 기록을 역사에 남길까. 김어준 총수는 단언컨대 아니라고 한다.

  “만약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민과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버지의 독재로 죄 없이 죽어간 사람들에게 진심의 사과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야. 하지만 박근혜는 명백한 사법 살인으로 판명된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조차 사과하지 않아. 증거가 없단 식으로 변명했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의 관점에서도 낙제다.”

  원래 직관은 위험부담이 있다. 그 직관이 설령 대중과의 호흡을 통해 이뤄진 것이라도. 실제 보수진영은 수시로 이를 ‘포퓰리즘’이라고 매도한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 반대 촛불시위를 예로 들며 말이다. 그러나 이로부터 10.26 재보선 넥타이 하이힐부대의 투표 열기까지 ‘우려할 여지’란 한나라당이 야당 되는 것 정도이겠다. 편견을 버릴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어준 총수는 집단지성의 힘을 믿고 있다. ‘나는 꼼수다’ 역시 그 인식의 토대 위에 출발한 것이다.

  “‘쫄지 말라’는 말이야, 곤봉으로 물대포로 나아가 밥줄 끊기로 겁박해도 괘념치 말자는 거거든.”

  ‘공안폭력에 기절했던 대중을 웃음으로 깨웠다’는 어떤 댓글처럼 ‘나는 꼼수다’가 현 정권 내내 숨죽었던 집단지성을 깨운 게 맞다면 더 없이 반가울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부터 강인해야 한다.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꼼수다’가 상승할 무렵이던 8월 중순경, 멤버의 일원인 정봉주 전 의원이 BBK 관련 최종심 일정 통보를 받았다. 1,2심 공히 1년 징역형. 3심에서 이를 인용하면 정봉주 전 의원은 감옥에 가야 한다. 비감했던 나와는 달리 김어준 총수는 ‘감옥가면 사식 넣어줄 게’ 이러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우울하면 대중이 같이 슬퍼할 것 같지? 아니야. 공포에 전다고. 절대 권력자에게 대들면 당한다는 공식만 확인해주는 셈이고”라고 말했다. 무릎을 쳤다.

  김어준 총수의 한마디다.

  “내년 총선, 대선, 벌써부터 ‘안 될 것’이라고 생각 말라고. ‘권력’이라는 집의 주인이 보수고, 진보가 거기 전월세로 들어가는 게 아니야. 패배주의 버리라고. 그리고 마음껏 야유하고 조롱하라고.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상대라도 자신을 희화하고 풍자하는 이들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쫄지마! 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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