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0년 07-08월 2020-07-01   1343

[특집] 호모콘스무스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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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물류센터발 코로나19 집단 감염에 수도권이 비상인 가운데, 쿠팡의 전염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쿠팡을 비롯해 국내 이커머스 시장이 떠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는 온라인 유통업 종사자, 노동자들을 어떻게 착취하는가. 소비자, 이커머스기업, 판매업자, 물류센터 및 택배 노동자 등 온라인 쇼핑의 주문부터 물건이 배송되기까지 전 과정에 관여하는 이해당사자들의 사정을 들여다본다 

 

 

 

 

특집_우리의 불안이 배송 중입니다

호모콘스무스를 위한 변명

 

글. 박초롱 자유기고가, 독립매거진 <딴짓> 대표 

 

 

 

월간참여사회 2020년 7-8월 합본호 (통권 277호)

 

훌륭한(?) 호모콘스무스의 조건

밤 11시, 잠자리에 들기 전 내일 일정을 되짚어본다. 내일은 이른 아침부터 업무 미팅이 있는 날이니 부지런히 일어나는 게 좋겠다. 아침 식사로 챙겨 먹을 만한 것이 마땅하지 않은데 어쩌나?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더듬어 켠다. 쿠팡이나 마켓컬리에서 치즈와 우유를 시킨다. 주문에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5분. 이제 편안하게 눈을 감는다. 내일 새벽이면 문 앞엔 이탈리아산 치즈와 락토프리 우유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나는 쿠팡의 로켓배송 회원이자 마켓컬리 유저고, 네이버온라인쇼핑의 충성 고객이다. 손가락 몇 번만 두드리면 문 앞에 내가 원하는 물건이 기다리는 사회에 적응한 호모콘스무스Homo Consumus, 소비하는 인간이다. 호모콘스무스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새로 나온 앱과 장단점을 파악하는 정보력? 체리피커처럼 쿠폰을 쏙쏙 빼먹는 요령? 

 

사실 자본주의 사회가 강요하는 훌륭한 호모콘스무스가 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외면하는 능력이다. 여섯 시간 안에 내 집 앞에 우유와 치즈를 놓기 위해 누군가 차가운 새벽 공기를 뚫고 내달려야 한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능력. 아니다, 내게 필요한 건 상상력의 결핍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온라인으로만 장을 보는 사회에서 내 집 앞 코코마트가 망하고, 코코마트의 두 부부가 쿠팡 공장에서 물건을 포장하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연명해야 하는 상상을 하지 않을 재주.

 

그것뿐일까? 훌륭한 호모콘스무스라면 응당 눈앞에 닥친 이익을 먼저 볼 줄 알아야 한다. 계란 한 판에 딸려 오는 어마어마한 완충재와 포장 비닐, 박스에 입이 벌어지다가도, 어쨌거나 누구보다 싱싱한 계란을 싸게 샀다는 만족감에 빙그레 미소 지을 수 있는 무던함이 필요하다. 30년 후 내가 버린 쓰레기가 지구를 덮을 거라는 경고가 만연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오늘 계란을 싸게 사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온라인쇼핑을 끊지 못하는 이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내가 매 순간순간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온라인 쇼핑을 자주 이용하지만, 이것이 미치는 파급력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불필요한 포장재로 환경오염이 심해지고, 필요 없는 물건을 더 많이 소비하게 되고, 지역 단위의 작은 사업체가 사라지는 대신 대기업 위주의 유통망이 공고해지겠지.

 

프리랜서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밀레니얼 세대의 일에 대한 고민을 담은 <딴짓 좀 하겠습니다> 에세이를 쓴 나로서는 그중에서도 이커머스 산업 확대로 인한 노동착취의 문제를 심각하게 느낀다. 이커머스 산업이 확대될수록 자신만의 작은 규모의 사업을 꾸릴 수 없는 이들은 노동 방식의 자유와 자아효능감을 빼앗기며 살아남아야 한다. 

 

그럼에도 내가 이커머스를 끊지 않는 데는 도덕적 책무를 이기는 피로 때문이다. 나는 외면하고 싶어진다. 내가 새벽에 우유를 받기 위해 누가 어떻게 노동 착취를 당하고 있는지, 깨지지 않는 유리컵을 배송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 완충재가 생산되는지 알고 싶지 않아진다. 그건 내게 도덕적 책무를 맡기는 것이 비단 이커머스뿐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거리를 지나면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 스티커를 붙여달라는 후원 단체들이 내 앞길을 막고, 쇼핑몰에 들어갈 때면 몇 년 전 보았던 글로벌 기업의 아동노동착취 이슈가 떠오른다. 가격이 싼 고기에 손을 내밀었다가도 공장식으로 도축되는 동물들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대한 기억이 나를 멈칫거리게 한다. 

 

모든 소비에 도덕적 책임이 따른다. 물 한 병, 달걀 한 개, 우유 한 팩에도 누군가의 부당한 땀이, 어쩌면 억울한 피가 있을 수 있다. 소비에 온갖 정성을 들인다. ‘십 원 한 장 허투루 쓰지 않았어!’라는 고리타분한 문장은 감수성을 제안하는 시대에서는 ‘절약의 정신’으로 읽히는 게 아니라 ‘감수성의 정신’으로 읽힌다. 그럴 때면 루시드폴의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의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살아가는 게 나를 죄인으로 만드네.” 지갑을 꺼내 돈을 내미는 행위가 단순히 일대일의 관계에서 끝나지 않는 시대에서는, 우리 모두가 죄인이다. 하여 나는 조금 더 죄를 적게 짓고 살기 위해서 친환경 완충재를 쓰는 쇼핑몰을 이용하고, 텀블러를 들고 다닌다. 동물복지유정란을 사고 <빅이슈>를 구독하고 몽골의 아동을 후원한다. 그러면서 이런 작은 노력들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회의한다. 

 

좋은 소비? 돌을 굴리는 일 자체에서 의미를 찾자! 

이커머스의 구조적 문제를 소비자가 모두 알고 ‘바른 소비’를 고집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소비자에게만 그런 책임을 떠맡기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렇다면 지갑을 여는 고객은 기업이 노동의 원칙을 지키기를, 똑똑한 시민단체가 무언가 목소리를 내기를, 정치인이 무언가를 바꿔주기를 기다려야만 할까? 누구라도 그게 답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설사 ‘좋은 소비’자 중세시대 면죄부 마케팅을 닮았다고 할지라도, 나의 불매운동이 0.0000001%의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라도, 나의 플라스틱 줄이기가 30년 후의 고작 한 평의 땅을 확보하는 게 그친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행동을 계속하겠다. ‘너도 나쁜 놈, 나도 나쁜 놈’ 따위로 문제를 퉁쳐서 도매급으로 치워버리지 않고, 엉킨 실타래를 풀 듯 하나씩 들여다보겠다. 그건 그런 행동이 적어도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호모콘스무스’라는 불명예에서 나를 지켜주는 디그니티dignity이기 때문이고, 올바른 시민사회를 만드는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복잡한 시대에서 소비의 모든 흐름을 파악하는 건 개인이 짊어지기 어려운 책무이기에, 나는 그저 나의 감시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한다. 이 시대에서 맥락을 읽는 바른 소비를 하는 이들은 유토피아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진 종교인보다는, 내일 또 돌이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돌을 굴리는 시시포스를 닮았다. 그들이 돌을 굴리는 건 내일 돌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돌을 굴리는 일 자체에서 의미를 찾기 때문이다. 김선우의 시, <깨끗한 식사>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문제는 내가 떨림을 잃어간다는 것인데, 일테면 만 년 전의 내 할아버지가 알락꼬리암사슴의 목을 돌도끼로 내려치기 전, 두렵고 고마운 마음으로 올리던 기도가 지금 내게 없고 내 할머니들이 돌칼로 어린 죽순 밑둥을 끊어내는 순간, 고맙고 미안해하던 마음의 떨림이 없고 사뭇 괴로운 포즈만 남았다는 것

 

 

특집 우리의 불안이 배송 중입니다

1. 호모콘스무스를 위한 변명 박초롱

2. 비대면 소비 속 위태로운 노동 이광석

3. 이커머스 시장의 과당경쟁과 불공정거래행위 서치원

4. 다치고 병드는 물류센터 노동자들 이상윤

5. 택배노동자의 근무환경 개선 과제 박종식

 

>>[목차] 참여사회 2020년 7-8월호 (통권 2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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