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0년 11월 2020-11-01   950

[경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전세난의 원흉?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전세난의 원흉?

 

1989년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벌어진 일

전세난이 심각하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서울 시민의 89%가 임대차보호법 등 정부의 주택정책을 불신한다고 한다. 최근 전셋값 폭등 원인은 정부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때문이라는 응답자가 제일 많았다고 한다. 투기 억제책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법의 실효성이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이 여론조사는 언제 수행된 것일까? 1989년 주택임대차보호법(이하 ‘임대차보호법’) 개정 직후, 한국통계정보연구소의 서울 시민 1,200가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다. 소위 임대차3법이 통과된 2020년 얘기가 아니다. 1989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당시 임대차보호법 개정을 통해 세입자는 2년간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임대차 계약기간이 1년이면, 세입자는 계약 기간 1년만 채우면 된다. 그러나 세입자가 원하면 최소 2년간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2년 동안은 계약 기간과 상관없이 세입자의 ‘꽃놀이 패’를 인정해 준다는 의미다. 

 

여기서 법률 상식 하나. 2년 이내 이사할 가능성이 있는 세입자라면 계약을 1년만 하는 것도 좋다. 1년만 살고 이사를 가도 좋고, 1년만 계약했다 하더라도 2년간 주거권은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1989년 임대차보호법 통과 전후, 전세난이 심각해졌다. 집주인이 2년 치 보증금을 한 번에 받으려다가 세입자가 그야말로 길거리로 쫓겨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몇몇 세입자가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불행한 일이다. 조용히 명복을 빈다. 

 

월간참여사회 2020년 11월호 (통권 280호)

 

부동산 시장은 시그널로 반응한다

부작용은 있었지만, 나는 1989년 임대차보호법 개정이 필요했다고 본다. 세입자가 최소 2년 정도의 주거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는 법적 장치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한다면, 나는 당시 2년간 세입자 권리를 보장해 준 임대차보호법은 필요했지만, 지나치게 많은 부작용을 초래했다고 본다. 당시 개정법에는 기존 세입자에 대한 소급적용 규정이 없었다. 그래서 집주인들은 재빨리 전셋값을 충분히 올려 새로운 세입자와 계약을 하기를 원했다.  

 

결론은 명확했다. 아무리 좋은 의도의 정책이라도 부작용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 결론은 부작용이 있다는 이유로 변화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정책을 내놓을 때는 부작용을 최대로 줄일 있는 방안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가 크다.

 

30년이 지난 요즘, 또다시 비슷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 기존 2년간의 세입자의 권리를 4년까지 연장하는 임대차보호법이 지난 7월 국회에서 통과됐다. 2년간의 임차 권리도 주거안정에 부족하다는 의미다.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도 3년이다. 

 

그런데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전셋값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논리적으로는 전셋값 상승 책임이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에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 아마도 가장 큰 책임은 금리하락일 것이다. 금리가 낮아지면 집주인이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할 것은 당연하다. 물론 임대차보호법도 어느 정도의 책임은 있다. 89년과 달리 이번에는 기존 세입자에도 소급하여 법 적용을 하는 등 부작용을 줄이려는 장치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시장은 시그널을 바라보고 반응하기 마련이다. 전셋값 상승의 시그널을 주는 정책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는 어렵다.

 

‘전세 시장’이야말로 가장 반시장적 정책

부동산3법이 반시장적이라며 반대하는 사람들은 시장에 맞서 싸우지 말라고 한다. 시장과 싸우면 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들이 반대하는 근거는 전셋값 상승이다. 그러나 전세 시장 유지야말로 가장 대표적인 반시장적 정책이다. 전세 시장의 유지 정책은 무조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전월세 금리와 시장 금리의 차이는 상당하다. 이러한 금리 차는 아비트레이지arbitrage, 무위험 차익 거래를 통해 시장 원리로만 보면 바로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중장기적으로 전세 시장은 없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시장에 맞서 싸우지는 말아야 한다. 다만, 소프트랜딩soft landing, 연착륙 할 수 있는 장치는 만들어 놔야 한다. 시장 참여자가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은 주어야 한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소프트랜딩 정책이고 어디까지가 반 시장정책일까, 하는 것이다. 아무도 모른다. 이 세상에 주택 정책을 시장 원리에만 맡겨놓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임대차보호법이 전셋값 상승을 일으킨다는 비판 역시 전셋값 상승의 시그널을 시장에 주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기도 한다.

 

부동산 정책은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문제가 집약되어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어렵고 복잡한 영역이다. 시장과 싸우지는 않으면서 적절히 시장을 규제할 황금률을 찾는 것은 무척 힘들다. 부동산 정책에는 절대 악도 없고 절대 선도 없기 때문이다. 현실은 정책믹스가 유일한 대안이다. 정책믹스를 찾는 사회적 합의, 정치적 합의가 해결방안이다. 

 

한 언론사 사설을 보면 “최근 주택 전세가격 폭등은 살인적”이라면서 자유경제 하에서 정부의 임대료 안정 대책이 오히려 임대료 상승을 부채질한다고 한다. 규제가 생기면 집주인이 미리 임대료를 올려 세입자에 전가하게 된다고 한다. 이 사설의 시점은 언제일까? 89년 임대차보호법 통과 직후 얘기다.

 

❶  종부세법, 소득세법, 법인세법 개정안을 가리킨다


글.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원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활동가 출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회의원 정책보좌관 활동. 현재는 나라살림연구소에 기거 중. 조세제도, 예산체계, 그리고 재벌 기업지배구조에 관심이 많음.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 『최순실과 예산 도둑들』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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