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1년 01-02월 2021-01-01   1217

[만남] 초심(初心)을 만나다 – 탁무권 회원

초심初心을 만나다

탁무권 회원

 

월간참여사회 2021년 1-2월호 (통권 282호)

Ⓒ박영록

 

탁무권 회원은 참여연대 창립회원으로, 1994년 당시부터 지금까지 꼬박 26년째 참여연대를 후원하고 있다. 같은 해 ‘노원문고’를 열어 지역의 대표서점이자 문화플랫폼으로 키워낸 그는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 노원교육복지재단 이사장, 학교법인 성공회대학교 이사 등을 역임하며 지역사회 발전과 사회공헌 활동에 이바지해온 인물이기도 하다.

 

처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는 “솔직히 예전만큼 참여연대에 관심을 갖고 있지 못하다”며 사양했다. 그런 그에게 재차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그에게서 초심을 되새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18일, 탁무권 회원을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더숲초소책방에서 만났다. 

 

1994년 당시 어떤 계기로 참여연대 창립회원이 되셨나요.

참여연대가 만들어질 때, 그전에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먼저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조희연 교육감이 찾아와 좀 더 원칙을 갖고 경실련과는 다른 방향에서 사회문제를 이야기하는 시민사회단체를 만들어보자” 면서 같이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어요. 조희연 교육감과는 《월간 사회평론》편집주간과 운영위원으로 인연이 있던 사이였죠. 그런데 제가 서점(노원문고)을 준비하고 있던 때여서 직접적인 참여는 어렵지만, 도울 일이 있다면 함께하겠다고 했고, 회비를 내는 창립 회원으로 이름을 올린 거죠. 

 

참여연대는 당시 ‘새로운 시민운동의 등장’으로 한국 사회의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참여연대가 시민단체로서 그동안 우리 사회에 필요한 역할을 잘 수행했다고 보시는지요. 

새로 생긴 시민단체가 뿌리를 내리고 한 사회의 담론을 형성하는 중심 역할을 해나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경실련과는 또 다른 시민사회단체로서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한국 사회에서 규모 있게 사회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는 단체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만족감이 컸죠. 비록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그런 단체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초기에는 적극적으로 참여연대의 활동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다가, 시간이 갈수록 무관심해졌고 어떤 계기로 실망하고 나서는 후원만 하고 참여연대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관심을 잘 갖지 않게 됐어요. 

 

참여연대에 실망하신 구체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2006년 말즈음, 노원문고 신규 분점 자리를 알아보러 다닐 때였어요. 지역 대표서점을 만드는 게 목표여서 일정 규모 이상의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는데, 동네 슈퍼마켓들이 매물로 많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러다가 한 슈퍼마켓 주인과 얘기를 나눠봤더니, ‘우후죽순 생겨나는 대형마트들 때문에 대책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대형마트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당시 손혁재 집행위원장에게 참여연대가 롯데마트,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 문제 관련해서 대책기구를 마련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어요. 그런데 손 위원장이 말하기를 ‘간사들이 아직 그 문제에 대해 잘 모르니 교육을 시켜달라’고 하더군요.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사이니까 편하게 부탁했는지 모르지만, 거기서 실망했던 것 같아요. 한국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던 참여연대가 이런 문제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로부터 3년 후,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본격적으로 대형유통점의 무분별한 골목상권 진출 반대 운동에 뛰어든다. 2009년 기업형 슈퍼마켓(SSM) 허가제 도입 운동을 시작으로,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저지 농성(2012), 대형마트·SSM 등 유통재벌 불공정행위 감시단 발족(2013), 상암동 DMC 롯데 복합쇼핑몰 강행반대(2015), 롯데 불매운동 및 재벌의 골목상권 파괴 규탄 운동(2012~2017)이 이어졌으며 2019년부터 현재 이마트 노브랜드 출점 저지와 유통대기업 독과점 규제를 위한 전국대책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참여연대가 앞으로 어떤 방향을 가지고 나아갔으면 하시나요. 

지금 한국 시민사회 전반에는 ‘자립’의 개념이 많이 부족해진 것 같아요. 단체가 자립을 하지 못하면 외부 프로젝트나 사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는 문제가 생기죠. 예나 지금이나 한국 시민사회는 매우 취약하다고 생각해요.

 

참여연대가 앞장서서 자립의 모델을 만들어주면 전체 한국 시민사회에 끼치는 파급효과가 클 거라고 봅니다. 또 당장의 이슈화되는 부분에만 관심 가질 것이 아니라, 10~20년 걸려서 쌓아 올려야 하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해요. 물론 힘들고 티가 잘 안 나는 일이지요. 그렇다고 그것만 하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투트랙을 해야죠.

 

월간참여사회 2021년 1-2월호 (통권 282호)

Ⓒ박영록

 

노원문고는 참여연대와 같은 해에 태어났어요. 현재 8개의 지점이 생길 정도로, 대표적인 지역 문화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는데, 오랫동안 유지해올 수 있었던 비결이나 원동력이 있다면요. 

처음 노원문고를 열었을 때 혼자 돈벌이를 한다는 마음의 빚이 있었어요. 그래서 서점을 열고 1년 후에는 무조건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하기로 결심하고, 실제 매달 300만 원씩 지역사회에 기부했어요. 그런데도 여전히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직원들은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거기서 번 돈을 다른 곳에 기부하면서 혼자 대리만족하는 것 같았죠. 

 

그러다 우연히 독일의 ‘파버카스텔’이라는 회사를 알게 됐는데, 연필 하나로 260년을 이어온 세계적인 기업이에요. 그 회사의 직원복지가 대단하거든요. 100년 전부터 직장어린이집 같은 걸 만들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2008년, 직원들 앞에서 ‘파버카스텔처럼 100년 가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어요. 그러고 나니까 뒤로는 직원들이 단순히 직원이 아니라, 파트너로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그 뒤로는 노원문고 안에서 기부활동과 수익활동을 구분하지 않고 직원들도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기회를 열어주게 됐어요. 내가 바깥에서 하는 활동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고요. 물론 여전히 한계는 있지만 노원문고가 같은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재단 운영 등 다양한 나눔 활동을 펼쳐오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제가 노원교육복지재단 이사장을 하며 느낀 것이, 복지가 여전히 최소생계를 보전해주는 ‘사회복지’ 단계에만 머물러 있다는 거예요. 없는 집에 장판 깔아주고, 독거노인에게 도시락 갖다주고 기초생활수급자를 도와주는 식이죠. 근데 그건 아주 기본적인 최소한의 정책이거든요. 사회복지뿐 아니라 교육복지, 문화복지 등 자립의 토대가 되는 다양한 복지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노원문고를 예술영화관, 갤러리, 공연장, 카페와 베이커리까지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재산의 일부를 출연해서 ‘교육과 미래’라는 교육복지재단도 설립하게 됐어요. 

 

실제로 노원 인구가 55만인데 그전까지 제대로 된 갤러리 하나가 없었죠. 사람들이 문화를 향유할 공간을 만들고 그게 성공사례가 되면 뜻을 가진 이들이 모여서 힘을 보탤 것이라 생각했어요. 세상에 돈 있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이 돈을 마땅히 의미 있게 쓸 데가 잘 없거든요. 저는 돈을 버는 일과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 제 안에서 이원화되거나 분리되지 않고 저라는 존재 자체로 사회적 의미가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좀 편하게(?) 사셔도 좋을 텐데, 사회를 위한 활동을 계속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글쎄요. 사람마다 타고난 스타일이 있는가 봐요. 20대인가, 새벽에 서대문 골목을 걷다가 길가에 쓰려져 있는 오토바이를 발견한 적이 있어요. 그 옆에 머리에 피가 나서 사람이 쓰러져 있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겠더라고요. 제가 업고 갈 수는 없어서 택시를 강제로 세워서 적십자병원에 싣고 갔죠. 나중에 모친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그러다가 덤터기라도 쓰면 어쩌려고 그런 일에 함부로 나섰냐고 해요. 근데, 그냥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내가 대단히 뛰어나서 그런 건 전혀 아니고요. 살면서 다른 사람 돕겠다고 나섰다가 뒤통수도 많이 맞아봤는데(웃음) 후회하면서 나중에 또 하게 돼요. 어찌 보면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고 워낙 피폐하다 보니까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이 조금 더 특별해 보이는 거겠죠. 

 

앞으로 계획하고 계신 일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한국 사회 양극화가 매우 심한데, 서점도 온라인, 혹은 대형서점 중심으로 점점 양극화되는 것 같아요. 이 양극화를 막는 데 기여할 생각으로 현재 22개 서점들이 모여 회생절차에 들어간 도매상 ‘송인서적’을 인수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동네 지역 서점들이 갖는 사회적 의미가 매우 큰데, 중간 도매상이 사라지면 서점이 책을 원활히 공급받기 어렵죠. 동네 서점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할까요. 물론 인수까지는 아직 건너야 할 허들이 남아 있어서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내가 속한 분야와 업종 안에서라도 양극화를 좀 막아내고 사회적 의미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지역은행을 설립해보려고요. 지역은행이야말로 지역 사회 자립의 근간이거든요. 새마을금고나 신협도 처음엔 지역은행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다 변질해버려서 제대로 운영되는 곳을 찾기 어렵죠. 그래서 이탈리아나 스페인의 협동조합은행처럼 지역경제 선순환에 기여하는 지역은행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런데 막상 지역은행을 진행하다보니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느껴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체력의 한계랄까, 그런 걸 느끼긴 합니다만(웃음). 

 

탁무권 회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난 세월, 그가 얼마나 치열한 삶의 궤적을 그려왔는지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아는 대로 실천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그가 걸어온 걸음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게 느꼈다. 그가 이상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온 만큼, 참여연대에도 그만큼의 바람과 기대를 가졌던 것은 아닐까. 나이가 들어 이젠 지친다고 하소연했지만, 그가 부디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움직이는 만큼, 우리 사회는 조금씩 더 나아질 것 같아서. 

 

❶  1994년 9월 10일, ‘참여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약칭 참여연대)의 창립 회원은 304명으로, 탁무권 회원은 그중 1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글. 금민지 시민객원기자 

다큐멘터리, 상담, 명상, 자연 치유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고 공부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해 주한독일문화원 온라인매거진에서 도서관 이용자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사는 길을 찾아 글이나 강의, 다른 어떤 형식으로든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꿈이다.

사진. 박영록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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