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글] 시민이 믿음을 세워야 정치가 바로 선다

여는글

시민이 믿음을 세워야 정치가 바로 선다 

 

 

주유천하周遊天下 ❶라는 말을 알고 있을 것이다. 공자는 55세에 길을 떠나 68세까지 무려 14년 동안 당시 중국의 여러 나라를 찾았다. 일선에서 은퇴하여 여유와 관조로 노년의 삶을 누릴 나이에 길을 떠난 것이다. 인과 예가 조화롭고 완성되는 이상적인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그는 열심히 유세를 펼쳤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당대 현실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당신의 말은 옳지만 우린 지금 부국강병이 우선입니다.”라는 요지 앞에 공자가 설 자리는 없었다. 

 

공자는 매번 좌절하면서도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기 위해 위정자의 실천과 태도에 대해 끊임없이 발언했다. 공자학단에서 정치가와 외교가로 이름을 날린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의 핵심 항목을 물었다. “식량을 넉넉하게 마련해야 하고, 병기가 충분해야 하고, 그리고 백성이 군주를 믿게 하는 것”이라고 공자는 답했다. 식량은 오늘날의 언어로 말하자면 민생이나 경제에 해당할 것이고, 병기는 국방력 강화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무리 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심사는 다를 게 없다. 공자가 말한 정치의 핵심 중 세 번째, 군주가 백성들의 믿음을 얻어야 한다는 것 또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할 것이다. 대통령과 정당의 지지율 조사와 그에 따른 반응과 대책은 정치에서 ‘믿음’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지도의 오르내림은 곧 믿음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선생님, 이 셋 중에서 부득이 포기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부터 포기해야 할까요?” 공자는 병기를 먼저 버려야 한다고 답한다. 오늘날도 대체로 수긍할 것이다. 병기와 식량 중에서 식량을 포기할 순 없으니 말이다. 그럼 이제 식량과 믿음이 남았다. 이 둘 앞에서 백성들에게 물어볼까? 당신은 무엇을 포기하는 게 좋겠느냐고.

 

여기서 사람들의 선택은 각기 다를 것이다. 식량을 포기하면 생존이 불가능하니 경제 정책이 우선이라고 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식량은 유형이고 믿음은 무형이기 때문에 당장의 삶을 생각한다면 그런 선택을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분명하게 말한다. 식량을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우리는 식량과 믿음 중에서 믿음을 선택한 공자의 속뜻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공자는 제자 자장이 인의 내용을 물었을 때도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손함, 너그러움, 믿음, 영민함, 은혜의 다섯 항목에서 믿음을 으뜸의 덕목으로 삼았다. 믿음이 무엇이길래 정치가는 유형이 아닌 무형의 믿음을 세워야 한다고 했을까? 왜냐면 정치는 ‘관계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약속을 잘 지켰을 때 세워진다. 자신들의 유리함과 불리함을 우선에 두고 약속을 바꾸고 폐기할 때 믿음은 세워지지 않는다. 나아가 주장과 정책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무형의 믿음이 정책의 기반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오늘날 믿음은 두 갈래의 축을 세워야 한다. 하나는 정치가들이 세워야 할 믿음이다. 그들이 시민의 믿음을 얻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정직한 마음의 바탕 위에 약속을 잘 지키는 일이다. 흔히 말하는 당리당략에 붙잡혀 계산하고 왜곡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시민의 몫이다. 시민 스스로가 믿음을 버리지 않는 일이다. 

 

정의와 상생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시민의 믿음은 곧 끊임없는 자기 ‘다짐’이다.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물러나지 않겠다는 다짐, 정직하지 못한 권력을 감시하는 일에 소홀하지 않겠다는 다짐, 편견과 편향에 몰두하는 언론의 거짓을 가려내겠다는 다짐 등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옳고 의로운 길을 가면서 장애물을 만나더라도 당당하게 걸어야 한다는 다짐이다. 이렇게 거듭 다짐하고 다짐할 때 시민이 세운 믿음은 굳건해진다. 나쁜 권력자는 시민이 한눈팔면 내심 쾌재를 부른다.

 

2021년, 코로나19는 여전히 시민의 삶을 힘들게 한다. 촛불이 밝히고자 하는 길은 더디고 답답하고 실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촛불 없이 어둠을 밝히는 다른 길이 있는가? 길을 가다 걸림돌을 만났을 때 주저앉고 돌아가면 다른 길이 보이는가? 시민이 다짐하고 다짐하면서 믿음을 세워야 하는 길 밖의 다른 길이 존재하는가? 새해다. 참여하고 연대하는 시민은, 다짐을 새롭게 하면서 믿음을 새로이 세우는 새해를 맞는다. 하여 21세기의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 ❷을 새로이 정의한다. 

 

“시민이 믿음을 세워야 정치가 바로 선다” 

 

 

❶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며 구경함

❷  백성이 믿어주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다 


글. 법인 스님 월간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전 참여연대 공동대표 

16세인 중학교 3학년 때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이라는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과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을 지냈으며,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에서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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