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0년 09월 2020-08-28   1322

[특집] 영혼까지 끌어 모아, 월세 탈출!

영혼까지 끌어 모아, 월세 탈출!

글. 마민지 영화 <버블 패밀리> 감독, 동양대학교 강사 

 

 

프리랜서 7년 차, 30대 비혼 여성. 12년 동안 아홉 개의 월세방을 옮겨 다닌 이사의 고수이자, 적금은 깨더라도 주택청약 저축만은 최후의 보루로 여길 줄 아는 현명함의 소유자. 영화제 수상 상금으로 학자금 대출을 절반은 상환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부모의 경제적 지원은 기대하지 않는 일명 ‘흙.수.저’.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짜리 7평 원룸에 살고 있으며 옥탑이나 반지하가 아니라는 점, 수도권 출신이라는 태생적 조건이 더해지면 나는 부동산 시장의 ‘꼬리 칸’과 ‘3등석’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

 

몇 걸음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한쪽 벽에서 다른 벽에 닿을 수 있는 나의 집은 ‘집’이라기보다 그저 ‘방’에 불과했다. 나는 ‘방’이 아닌 곳에서 살기를 갈망했다.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해 살기 시작한 이후로 늘 냉장고 팬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설쳤고, 빨래를 하면 화장실에 갈 때마다 건조대를 피해 다녀야 했다. 유튜브를 보며 요가라도 한 번 하려면 건조대를 침대 위로, 싱크대 앞으로, 화장실 안으로 이동시켰다. 작고 소중한 자기만의 방은 나에게 자유를 허용했으나, 그 자유가 고작 이만한 크기라는 실체적 진실은 나의 자존을 비웃었다.   

 

대출은 가난을 타고 Singing in the debt 

연말이 되면 예술인들의 보릿고개가 시작된다. 여름철 개미처럼 모은 돈을 겨울철 월세와 난방비로 탕진하고 나면, 주택 청약 저축을 깰 것인가 말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냉장고가 터질 것처럼 소리를 내다가 불쾌한 전자음을 끝으로 잠잠해졌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미래의 나를 위해 두 가지 결심을 했다. 이번 계약이 종료되면 더 이상 월세는 사양한다. 그리고 ‘방’이 아닌 ‘집’에서 진정한 자유를 맞이하리라. 

 

‘버팀목’, ‘중기청’, 은행별 전세 대출 상품…. 낯선 대출 공부를 시작했다. 청년 주택 정보 카페도 가입했다. 은행도 지점별로 다르다는 이야기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상담을 받았다. 한 군데도 빠짐없이 재직 증명을 요구했고, 4대 보험 없는 개인사업자 프리랜서는 대출이 불가능하다거나, 가능은 하나 쥐꼬리 만큼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나의 재무제표는 초라했다. 대출에 성공했다는 운 좋은 프리랜서의 후기도 가끔 발견할 수 있었지만, 내가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은 3천만 원 남짓이었다.

 

빠르게 마음을 정리하고,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SH서울주택도시공사 홈페이지를 매의 눈으로 지켜보았다. ‘흙수저’인 내가 희망을 걸 수 있는 것은 ‘LH청년전세임대주택’ 뿐이었다. 최대 1억 2천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가난을 증빙하기 위해 온갖 서류를 준비하는 일은 이미 익숙한 터. 접수를 완료하고 발표가 언제 나오는지 문의하길 몇 차례, 수개월의 기다림 끝에 ‘존버’는 승리한다. 문자가 날아왔다. 나는 월평균 소득 80% 이하 가구로서 4순위에 해당하여 마침내 대출 승인을 받았다.

 

월간참여사회 2020년 9월호 (통권 278호)

 

매물을 찾아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North by Northwest 

기쁨도 잠시, 전세 매물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다. 대출 상품이 늘어나면서 월세 수요자들이 전세 시장으로 몰리고 있는 까닭이었다. 게다가 최대 대출 금액을 기준으로 전세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었다. 전세 8천만 원 오피스텔은 ‘중기청’ 대출을 기준으로 1억에 20만 원, 전세 1억 2천만 원 다세대 투룸은 ‘버팀목’과 ‘LH전세’ 대출 기준으로 1억 5천만 원에 15만 원 반전세 매물로 변신했다. 1억 2천만 원 예산으로는 원룸 신세를 면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영혼까지 끌어 모아 예산을 늘려야 했다. 이자를 30만 원씩 내면서 월세까지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통장을 탈탈 털어 예산을 1억 4천으로 늘렸다. 잔고는 0으로 수렴했지만, 나는 간절히 투룸에 살고 싶었다. 빨래 건조대를 놓아도 동선을 방해받지 않는 생활을 하고 싶었다. 반려묘의 화장실 냄새를 침대에서 맡지 않아도 되고, 화장실에 창문이 있어 환기가 되는 집을 원했다. 그렇게 북으로, 다시 북서로 지역을 넓혀 나갔다. 서울의 끝자락에 닿아서야 볼 수 있는 매물 수가 늘어났다. 

 

‘영끌’ 매매는커녕 ‘빚투’ 전세로의 탈출도 꿈같은 소리인데, 2030세대가 아파트 막차에 오르고 있다는 뉴스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차마 나에게 알리지 못하고 집을 산 친구들이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결혼한 친구 중에서도 자가를 보유한 경우가 없었다. 신혼부부 가운데서도 양가의 도움을 받고 ‘쌍끌이 대출’을 감행할 수 있는 ‘금수저’만이 아파트 막차에 오를 수 있다며, 격분한 회사원 친구들의 대화가 오갔다.  

 

매물을 보는 중에 매물이 나가고, ‘LH전세’는 까다롭다며 계약을 파기 당하는 등 사건 사고가 반복됐다. 월세로 살아야 하나, 투룸을 포기할까, 내가 세상 물정 모르고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걸까…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한 달 동안의 사투 끝에 나는 지하철역에서 15분 떨어진, 언덕 중턱에 위치한 투룸 다세대 주택을 만났다. 이곳은 ‘방’이 아닌 ‘집’이었다. 벽지를 뜯고 보니 한쪽 벽은 누수로 인해 곰팡이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계약 뒤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월간참여사회 2020년 9월호 (통권 278호)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30대 비혼 친구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전세로 독립한 운 좋은 케이스다. 회사에 다니는 수도권 출신들은 대부분 캥거루족으로 부모님과 살고 있고, 비수도권 출신은 월세살이를 면하지 못했다. 적금을 탈탈 털고 영혼을 끌어 모아 대출을 받으면 출퇴근 왕복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고시원 크기의 원룸 전세는 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애초에 부모님이 보증금을 보태줄 형편이 아닌 이상 원가족과 살며 목돈을 더 모으거나, 고시원보다는 큰 방에서 살기 위해 월세살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주 금요일, 모바일 임대료 고지서가 날아왔다. 청구액은 196,660원. 기존에 내던 것보다 10만 원 가량 줄어든 금액이었다. 코로나 상황으로 일시적 할인이 적용된 것인지 의아했다. 오랜만에 청년 주택 정보 카페에 들어가 보니, 기존 이자율 3%가 2%로 낮아졌다는 소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드디어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이자놀이가 끝난 것 같다는 댓글을 보니 비죽비죽 웃음이 나왔다.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나도 숨통이 트였다. 당장 이번 달부터 10만 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학자금 대출을 빨리 갚을까? 적금을 하나 더 들어볼까? 이제 요가 정도는 할 수 있는 거실에 앉아 탐욕스럽게 계획을 세워나가기 시작했다. 

 

❶  청년전용 버팀목 전세자금대출

❷  중소기업 취업청년 전세보증금 대출

➌  금리와 신청 순위는 2019년 기준으로 작성되었으며, 2020년 현재 신청 순위 조건이 대폭 변동되었고, 금리는 1~2%대로 인하 적용되었다.

➍  ‘빚내서 투자’의 줄임말

❺  부부 2인이 모두 대출을 받는다는 뜻

 

 

 

[특집] 부동산은 있고 주거는 없다

1. 정치는 왜 부동산 문제를 풀지 못했나? 김명수

2. 누가, 왜 욕망을 왜곡하는가 채영길

3. 이제는 대책이 아니라 체제를 구상할 때 최경호

4. [에세이] 영혼까지 끌어 모아, 월세 탈출! 마민지

5. [생활정보] 바뀐 주택임대차보호법 Q&A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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