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8년 10월 2018-10-01   704

[떠나자] 프랑스 파리 – 파리에서의 한 달, 3평 숙소가 남긴 것

프랑스 파리

파리에서의 한 달,
3평 숙소가 남긴 것

 

젊은이들과 예술가들의 도시, 파리 19구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며 걷고 여유롭게 거리를 산책하고 우아하게 차를 마신다. 파리에 오니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파리지앵의 행동 패턴을 따라 하게 된다. 작년에는 파리에 머무는 시간이 일주일밖에 되지 않아서 사람들을 보고 다닐 여유가 없었다. 처음 파리에 가기 전 나는 남들 다 가는 쇼핑과 명품의 도시, 관광객이 넘쳐나는 이곳에서 한 달이나 머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냉소적이고 거만했던 나는 파리에서 일주일을 보낸 후 ‘내 영혼의 도시’라는 말을 외치며 파리 예찬을 펼치게 됐다. 
 

파리를 사랑하게 된 데는 우리가 머물렀던 19구의 매력도 한몫 했다. 파리는 20개의 구로 나뉘어 있는데 마치 달팽이처럼 중심지부터 외곽으로 원이 퍼지면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양으로 배치돼 있다. 19구는 파리 북동쪽에 위치하며 생마르탱 운하를 주변으로 멋진 산책로가 펼쳐지는 곳으로 뷔트 쇼몽과 빌레트 공원이 가까이 있다. 산책로를 따라 조깅을 하거나 혹은 사랑을 나누거나 공원에서 펼쳐지는 한여름의 공연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곳이다. 

 

19구가 젊은이들과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면, 다시 찾은 파리에서 우리가 한 달을 묵었던 16구는 에펠탑이 있는 서쪽 지역 7구와 더불어 부자들이 사는 동네다. 우리는 원래 19구에 방을 잡기 위해 에어비앤비 호스트 삼십여 명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방을 구할 수가 없었다. 파리 에어비앤비 호스트들에게는 뚜렷한 특징이 있는데, 깎아달라는 요청에 인색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5명 중 4명은 메시지에 답이 없다. 파리를 열렬히 사랑하는 일본인들이 파리의 무심함에 상처받고 돌아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처음 파리에 왔을 때는 우리도 마음 졸이며 애타게 답장을 기다렸지만 에어비앤비 경험 횟수가 늘고 이미 한번 파리지앵들을 겪어봐서인지 서른 명한테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담담했다. 그저 19구에 금액대가 맞는 숙소가 없어서 다른 지역으로 눈길을 돌려야 할 때 아쉬운 마음이 컸을 뿐이다.

 

월간 참여사회 2018년 10월호 (통권 259호)

파리 16구의 거리 풍경 ⓒ김은덕 

 

여행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

16구의 새로운 숙소는 집 전체를 렌트하게 되어 있었는데 집이라기보다는 3평 남짓한 공간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에어비앤비에 올라온 사진과 후기를 통해 집이 작을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이미 여러 호스트에게 거절당하고 지쳐 있던 상태라 할인까지 해 준 호스트의 메시지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숙소에서는 잠만 잘 거잖아. 파리에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밖에만 있을 건데 괜찮을 거야.’라는 생각이었다. 

 

숙소의 외관은 고풍스럽고 우아하고도 품위가 넘쳤다. 묵직한 현관문을 열고 고급 카펫이 깔린 계단에 들어섰지만 우리는 눈앞에 놓인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었다. 대신 엘리베이터 옆에 놓인 창고문 같은 작은 문으로 다녀야 했다. 이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는 부자 입주민들만을 위한 것이었고 우리는 그저 쪽방 여행객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숙소에 묵던 첫날, 고급스런 현관문 앞에서 호스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현관문을 오가는 주민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도 오늘부터 한 달 동안 이 빌라에 살아요. 만나서 반가워요.” 심지어 이런 우스꽝스러운 멘트도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왔다. 하지만 입구가 같을 뿐 우리가 머물었던 방은 건물 안의 하녀들이 사는 지하방이었다. 

 

“그래도 우리만 쪽방에 사는 건 아니잖아.” 

“응, 그렇지만 궁궐 안 사람들을 마주친 것보다 쪽방 사람들과 만나면 마음이 더 울적할 거 같아. 신세가 똑같은 거잖아.”

 

알고 보니 우리 말고도 비슷한 사정의 집이 4~5채가 더 있었다. 그들도 3평 안에 샤워부스와 부엌, 이층침대와 옷장으로 가득 찬 방에서 숨만 쉬고 살까? 종민이 아래쪽 침대에 눕고 나는 위에 누웠는데 첫날에는 가슴이 답답해서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좁은 방에서는 지내봤지만 좁은 집에서 자보는 건 처음이었고 천장이 가까워서 더 답답했다. 

  

“우리 한국에 돌아가도 이거 두 배 정도만 되는 집이면 살 수 있을 거 같아.”

“맞아. 처음엔 답답했는데 혼자 살면 여기도 충분하겠어.”

  

하루 이틀, 지내고 나니 여유가 생긴 걸까? 어느새 작은 집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졌다. 오히려 이렇게 작은 집에 살면 많이 소유할 필요도 없고, 불필요한 것들을 사지도 않을 것 같았다. 우리가 기내용 캐리어 하나씩만 끌고 2년을 여행하면서도 부족한 게 없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캐리어에는 마치 도라에몽 주머니처럼 미니 전기밥솥, 전기장판, 도마, 칼 등 필요한 물품들이 끝도 없이 들어간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내가 이렇게나 많은 짐을 이고 다녔던가 싶을 정도로 방 한가득 짐이 쌓여있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조금씩 짐을 처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이삿짐 1톤 트럭에 모든 짐이 들어가는 간소한 삶을 살게 되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삶의 방식도 바뀐 것이다. 이러한 변화야말로 파리의 3평 숙소가 우리에게 준 선물 아닐까.  

 


글. 김은덕, 백종민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좋은 친구이자 부부다.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며, 서울에서 소비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한 달에 한 도시》 유럽편, 남미편, 아시아편 《없어도 괜찮아》,《사랑한다면 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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