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8년 09월 2018-09-01   402

[경제] 기재부는 왜 대통령 직속 특위의 권고안을 삭제했을까?

기재부는 왜
대통령 직속 특위의 권고안을 삭제했을까?

 

종부세 논란은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없애기 위한 성동격서?

한나라 장군 한신이 위왕 위표와 맞서 싸울 때 얘기다. 위표의 방어가 굳건하자 한신은 꾀를 냈다. 동쪽에서 시끄럽게 싸우는 척하다가 서쪽에서 조용히 기습하여 위표를 사로잡았다.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략의 유래다. 동쪽에서 시끄러웠던 것은 서쪽을 치기 위한 전략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대통령직속 조세개혁특별위원회가(이하 ‘특위’) 정부 세법개정 권고안을 발표했다. 특위는 종합부동산세와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강화할 것을 권고하였다. 기획재정부는 종부세에 대해선 시끄럽게 저항했다. 그래도 기재부가 만든 정부 세법개정안에는 특위의 권고안을 다소 후퇴시킨 종부세 강화 방안이 담겨있다. 그러나 기재부는 정부의 세법개정안에서 ‘금융소득 종합과세’ 강화방안을 깔끔하게 제거했다. 큰 논쟁조차 없이 조용한 작전이었지만 특위의 금융소득 종합과세 강화방안은 정부안에서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사실 부자들은 보유한 부동산가액이 증가하여 종부세 납부 대상자가 되는 것은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금융소득이 증가하여 금융소득 종합과세에 해당되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종부세보다 두려운 금융소득 종합과세는 무엇일까?

 

종합과세 없는 누진과세는 억울함만 누진하는 과세

우리나라 소득세법의 대원칙은 종합과세, 누진과세가 기본이다. 누진과세는 이해하기 쉽다. 적은 소득엔 적은 세율, 높은 세율엔 높은 세율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종합과세는 사실상 누진과세의 샴쌍둥이다. 나의 모든 소득을 소득의 종류와 상관없이 합산하는 것이 종합과세의 의미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근로소득이 2천만 원, 사업소득이 2천만 원, 기타소득이 2천만 원이면 나의 총 소득은 6천만 원이다. 6천만 원인 나는 근로소득만 3천만 원인 사람보다 높은 세율이 적용되는 것이 종합과세의 의미다. 종합과세를 하지 않고 누진과세를 한다면 근로소득만 3천만 원인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된다. 그래서 종합과세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 누진과세는 형평성을 위한 누진 과세가 아니라 억울함만 누진되는 과세가 된다.

 

모든 소득을 합산하여 과세하는 원칙은 누진과세를 적용하는 한 반드시 필요한 원칙이다. 그러나 여기에 예외가 있다. 바로 이자나 배당 같은 금융소득이다. 근로소득자는 보통 회사에서 세무신고를 대행해주고 나중에 연말정산으로 납세 실무를 종결한다. 자영업자 등 종합소득자는 복잡한 세금신고를 직접 하거나, 세무사 등을 통해 세무신고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종합과세의 원칙을 예외 없이 적용하고자 이자가 겨우 몇천 원, 몇만 원 발생한다고 종합하여 신고해야만 할까? 몇만 원의 소득을 신고하자고 기장대리를 세무사에게 맡겨야 할까? 그래서 모든 소득에 종합과세를 하는 것은 원칙이지만 이자와 배당 소득은 종합과세가 아니라 별도로 분리해서 과세하는 예외규정이 있다. 그래서 이자와 배당에 대한 세율은 다른 소득과 종합하지 않고 누진이 아닌 14%(지방세까지 15.4%) 단일세율을 적용한다.

 

그런데 예전에 워런 버핏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의 소득세율 보다 나의 비서 소득세율이 더 높은 것은 문제가 있다.” 금융소득에 누진과세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으면 이런 모순이 생긴다. 이자 배당소득을 종합하지 않고 분리과세 한다면 금융 부자들에 너무 큰 혜택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지난 김영삼 정부 때인 1996년에 금융소득 종합과세제도가 도입되었다. 4천만 원 이상의 금융소득은 종합과세 원칙대로 타 소득과 종합하여 누진 과세하자는 의미다. 그러다가 박근혜 정부 때에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금액은 2천만 원으로 강화되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직속 특위는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금액을 1천만 원으로 낮출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기재부가 발표한 정부의 세법개정안에는 이러한 특위의 권고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금융소득 종합과세 강화는 은퇴 연금 소득자에게 피해 주지 않아

금융소득 2천만 원 기준을 꼭 낮춰야 할 만큼 2천만 원이 그리 큰 금액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2천만 원 기준은 금융‘자산’이 아니라 금융‘소득’이다. 정기예금 이자율을 고려해보면 금융소득 2천만 원이 발생하려면 금융자산만 8억 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의 모든 자산을 예금이나 채권으로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예금이 8억 원이 있으면, 주식이나 연금보험 등 다른 자산도 보유하고 있기 마련이다.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는 포트폴리오 투자 원칙에 따르면 그렇다. 금융소득 종합과세에 해당하지 않는 다른 금융자산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우리나라 부자는 금융보다는 부동산 형태로 훨씬 더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결국, 이자, 배당이 발생하는 금융상품만 8억 원이 있다면 포트폴리오 투자 원칙에 따라 그 외의 금융자산과 부동산 자산은 40~50억 원에 이르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러한 자산가들이 누진과세의 원칙에 따르지 않고 14%세금을 낸다면 조세 형평성이 심각하게 무너진다.

 

기획재정부는 연금소득으로 생활하는 은퇴자 등의 부담이 급속하게 늘 수 있다고 반박하였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금융소득 종합과세는 말 그대로 종합과세지 중과세가 아니다. 즉, 다른 소득과 종합하여 누진한다는 의미는 합산할 다른 소득이 많지 않으면 세금 부담이 증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다른 소득이 없는 은퇴자는 금융소득 종합과세에 편입되어도 세부담은 전혀 증가하지 않는다. 물론, 다른 소득이 많으면 세부담은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세금 폭탄이 아니다. 동일한 다른 소득자와 같은 세금을 낼 뿐이다. 그동안 받았던 특혜가 없어지는 것이지 금융소득이 특별히 미워서 부과하는 중과세가 아니다. 왜 한번 생긴 특혜는 지속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글.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원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활동가 출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회의원 정책보좌관 활동. 현재는 나라살림연구소에 기거 중. 조세제도, 예산체계, 그리고 재벌 기업지배구조에 관심이 많음.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 『최순실과 예산 도둑들』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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