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10월 2017-10-01   811

[떠나자] 지칠 때까지 먹어야 스페인 여행이지

[스페인]

지칠 때까지 먹어야 스페인 여행이지

 

글. 김은덕, 백종민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좋은 친구이자 부부다. 2년 동안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고 온 뒤, 서울에서 소비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한 달에 한 도시』 유럽편, 남미편, 아시아편 『없어도 괜찮아』가 있고, 현재 <채널예스>에서 ‘남녀, 여행사정’이라는 제목으로 부부의 같으면서도 다른 여행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요리는 무엇일까요? 넓적한 팬에 쌀과 해산물 혹은 고기를 넣고 끓이는 빠에야(Paella)? 도토리를 먹고 자란 흑돼지의 뒷다리를 염장한 하몽(Jamon)을 떠올리는 이도 있을 테죠. 스페인에 다녀갔다면 감자튀김 위에 매콤한 소스를 뿌려 먹는 빠타타 브라바스(Patatas bravas)나 생새우를 마늘과 함께 올리브유로 익혀 먹는 감바스 알 아히요(Gambas al ajillo)의 맛과 향이 먼저 떠오를까요? 

 

여름에 세비야를 비롯해 남부 스페인에 머물렀다면 토마토 수프를 차갑게 해서 마시는 가스파초(Gazpacho)나 살모레호(Salmorejo)의 시원한 맛이 생각나는 분도 있을 거예요. 뜨거운 태양 아래서 먹는 음식이라면 돈키호테의 고장, 라만차 요리 삐스또Pisto를 빼놓으면 안 되죠. 음식 타령을 늘어놓고 있자면 어떤 분은 “무슨 소리야. 그런 음식은 여행자들이나 먹는 거고 진짜 스페인을 봤다면 숯불에 구운 고기 아사도(Asado)야!”라고 하거나 “우리가 된장찌개 먹듯이 이들도 흔하게 먹지만 각자의 레시피를 가지고 있는 또르띠야(Tortilla)가 진짜 스페인 음식이지.”라고 하는 분도 계시겠네요.

 

그래도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많이 마주하는 음식은 아마도 바르(Bar)에서 먹는 타파스(Tapas)나 핀쵸가 아닐까 해요. ‘바(Bar)’를 스페인어로 읽으면 ‘바르’가 돼요. 표기법은 같으나 영어와 스페인어의 발음 사이에서 생기는 차이지요. 스페인 어디에서나 바르를 찾을 수 있는데 골목을 걷다 보면 곳곳에 바르가 숨어 있어요. 스페인은 수호성인 산티아고(야고보)가 지키고 골목은 바르가 지키는 것이 아닌가 싶어지는 풍경이에요. 골목마다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스페인 사람들의 삶 가운데 바르가 있게 된 것인지, 바르가 많아서 스페인 사람들 인생에 한 부분이 된 것인지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언제든 들어가 커피 한 잔 할 수 있고, 시원한 맥주 한 모금 마실 수 있는 공간임은 분명해요.

 

바르

 

스페인 사람들은 바르가 없으면 못 사는 것처럼 보여요. 아침에 눈을 떠 커피와 보카디요(Bocadillo)로 아침 식사를 하거나 수다 상대를 찾기 위해 바르에 가요. 주말에는 꽤 근사한 식사를 내놓는 레스토랑으로 변신하니 친구들과 주말 약속 장소도 바르로 해요. 그야말로 스페인 사람들은 아침 점심 저녁,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바르에서 지내요. 화장실도 이용할 겸 바르에 들리면 어김없이 선반 위에 올려져 있는 음식이 바로 타파스지요. 

 

타파스는 요리라고 하기 보단 스페인 남부에서 시작된 음식인데, 그 기원이 참 다양해요.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남미에서 넘어온 갖가지 재료로 요리된 음식을 한 입씩 맛보려고 조금씩 덜어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잔 속으로 들어가는 파리를 막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라는 설도 있어요. 안달루시아에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파리가 정말 많거든요. 길을 걷는 중에도 파리가 한꺼번에 열 마리씩 몸에 달라붙는 정도니까요. 파리 때문에 빵 위에 조리된 음식을 조금씩 올려놓고 뚜껑을 덮었다는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지는군요.

 

남부에서 빵 위에 올려놓고 먹는 타파스를 스페인 북쪽에서는 핀쵸(Pincio)라고 불러요. 핀쵸는 번역하자면 ‘꼬챙이’ 혹은 ‘꼬치구이’ 쯤 되는데요. 말 그대로 이쑤시개로 꿰어 올려둔 음식을 모두 핀쵸라고 부르지요. 꼬챙이가 없이 빵 조각 위에 올린 타파스도 북쪽에서는 핀쵸라고 해요. 타파스든 핀쵸든 여행자에게는 이것저것 많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반가운 방법이죠. 자리에 앉아 여러 접시를 시켜놓지 않고, 바에 살짝 기대어 서서 한두 개 맛보고 동네를 둘러보다가 또 배가 고파지면 다른 바르에 들어가 한두 개 먹으며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으니까요.

 

핀쵸

 

그런 간단한 음식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곳이 스페인 북부, 바스크의 산세바스티안입니다. 프랑스 타이어 회사인 미슐렝(미쉐린은 영어 발음)이 타이어 닳도록 여행 많이 다니라고 맛집 가이드북을 만든 것이 ‘미슐렝 가이드’인데요. 맛으로의 음식을 넘어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에 오른 요리를 손님에게 내놓는 가게만이 그 가이드북의 별을 받을 수 있죠. 산세바스티안 구심지에 위치한 핀쵸바 거리에 가면 그 받기 힘들다는 미슐렝의 별을 단 식당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요. 간단히 먹고 돌아설 수 있는 음식이라 여겼던 핀쵸를 이용해 분자 요리의 성지가 된 곳이 바로 산세바스티안입니다.

 

물론 별을 받은 식당은 예약 없이 들어가기 힘들지만 시가지 안의 핀쵸바들 중에는 줄 서서 들어갈 수 있는 식당도 많아요. 물론 그들이 내놓는 요리도 훌륭합니다. 맛뿐 아니라 눈까지 즐거운 요리를 만날 수 있어요. 하지만 제 입은 빌바오에서 맛 본 핀쵸들에 더 친숙하더군요. 뭐랄까. 산세바스티안의 핀쵸가 저녁 파티에 나가기 위해 잔뜩 멋을 부린 느낌이라면 빌바오 도심에서 맛 본 핀쵸들은 친구를 만나러 가볍게 차려 입은 맛으로 다가왔기 때문이겠죠. 

 

‘먹고 또 먹고 지칠 때까지 먹어야 제대로 된 스페인 여행이 아니겠냐’고 자문해 보지만 이렇게 먹다 보니 스페인에 와서 축 쳐진 제 뱃살에게 미안해지는 건 어찌할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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