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8년 12월 2018-12-01   10326

[듣자] 고뇌를 넘어 환희로, 베토벤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

고뇌를 넘어 환희로,
베토벤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

 

실러의 송가, 베토벤의 음악으로 다시 태어나다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 <환희의 송가>는 이 위대한 예술가의 고뇌, 투쟁, 승리, 화해, 인류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4악장은 네 명의 독창과 4부 합창이 가세하여 실러의 <환희의 송가>❶를 노래한다.

 

“환희여, 신성하고 아름다운 빛이여, 엘리시움의 딸이여! 우리는 불에 취하여 너의 성스러운 땅을 내딛네. 너의 마술은 인습의 칼날이 갈라놓은 모든 것을 결합시키고, 네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는 곳에서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네!” 

 

1824년 5월 7일 케른트너토어 극장에서 열린 빈의 역사적 초연의 현장이 영화 <카핑 베토벤>에 담겨있다. 사보를 위해 고용된 젊은 여성 안나 홀츠가 베토벤에게 사인을 보내면 베토벤이 그에 맞춰 지휘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 설정은 물론 픽션이지만 초연 당시의 감동적인 분위기를 잘 살린 연출이었고, 전 4악장을 10여 분 비디오 클립으로 잘 요약했다. 실제로는 그날, 전체 지휘는 미하엘 우믈라우프가 맡았고 바이올리니스트 슈판치히가 악장 역할을 했다. 베토벤은 첫 박자를 줘서 템포를 지시한 뒤 상징적으로 지휘했으며,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은 우믈라우프만 보면서 연주하도록 미리 약속돼 있었다. 기나긴 연주가 끝났을 때 열렬한 환호가 터져 나왔는데, 박수 소리를 듣지 못한 베토벤이 가만히 서 있자 알토 카롤리네 웅어(Karoline Unger)가 베토벤을 돌려세웠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영화 <카핑 베토벤> 중 교향곡 9번 초연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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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러의 <환희의 송가>에 곡을 붙이겠다는 생각은 베토벤이 22살 때 이미 싹텄다. 이 주제를 위한 스케치는 <합창 환상곡>을 비롯해 여러 작품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 교향곡으로 결실을 맺기까지 무려 30년의 숙성기가 필요했다. 

 

이 곡은 이념과 지향을 넘어 사람들을 결합시키는 음악의 위대한 힘을 증명한다. 유럽연합은 1985년 <환희의 송가>를 공식 찬가, 즉 유럽가로 지정했다. 1989년 12월 25일, 독일의 베를린장벽이 무너졌을 때는 거장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서독, 동독, 영국, 미국, 소련 연합의 오케스트라가 혼신의 힘을 다해 이 곡을 연주했다. 가사는 ‘환희(Freude)’ 대신 ‘자유(Freiheit)’로 바꿨다. 실러의 시도 원래는 ‘자유의 송가’였는데, 당시 프로이센 검열 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 ‘환희의 송가’로 발표했다는 설이 있다. 

 

교향곡 9번 D단조 Op.125 <자유의 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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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악장 00:00 빠르게, 너무 지나치지 않게, 다소 장엄하게

2악장 22:50 아주 생기있게

3악장 36:30, 아주 느리게, 노래하듯이

4악장 57:15

 

 

고진감래, 고뇌 끝에 마침내 찾아온 환희를 노래하다 

1악장은 폭풍과 같았던 베토벤의 삶을 회고한다. 청각상실의 저주에도 굴하지 않고 인생을 정면으로 포옹한 베토벤의 위대한 모습이 드러난다. 태초의 혼돈에서 시작, 점점 더 격렬한 소용돌이가 몰아친다. 2악장은 팀파니가 맹활약하는 스케르초(scherzo, 해학곡)다. 여느 스케르초와 달리 고귀하며, 귀기(鬼氣)를 느끼게 한다. 3박자의 리듬은 어깨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매우 흥겹다. 중간 부분에서는 호른이 꿈꾸듯 노래하며 질주한다. 

 

3악장은 베토벤이 작곡한 모든 곡들 중 가장 아름답다. “고통에 가득 찼던 삶, 그래도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회상하는 것 같다. 현악기들이 노래하면 오보에, 플루트, 클라리넷, 파곳 등 목관악기들이 “그래, 그래야만 했어,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고 대답하듯 함께 노래한다. 호른이 꿈꾸듯 노래하는 대목은 54세의 베토벤이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간 것 같다. 모든 악기가 다 함께 함성을 지를 때 “나의 삶은 절망을 누르고 승리했다”고 선언하는 것 같다. 

 

4악장은 교향곡 역사상 처음으로 성악을 넣어서 인간의 자유와 평화, 형제애를 예찬한다. 천지개벽과 같은 팡파르에 이어 1, 2, 3악장의 주제가 차례로 등장한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니, 그 선율 말고 더 좋은 거”라고 말하는 듯 낮은 목소리로 <환희의 송가> 주제를 연주한다. 비올라가 이 선율을 받으면 점차 규모가 커지고 모든 악기가 가세한다. 팡파르가 한 번 더 울리면 바리톤이 등장한다. 

 

“오 친구들아, 이런 곡조들 말고 좀 더 즐거운 걸 노래하자꾸나. 환희! 환희를!” 이 대목의 가사는 베토벤이 직접 써넣었다. 이어지는 실러의 <환희의 송가>…. 환희는 점점 더 고조되고 콘트라파곳, 트롬본, 베이스드럼, 트라이앵클, 심벌즈 등 다양한 악기가 가세하여 엑스터시에 도달한 뒤 숨 가쁘게 마무리한다. 

 

나는 예술의전당에서 이 곡을 들으며 두 번 눈물을 흘렸다. 환희의 주제를 모든 악기가 연주할 때, 그리고 환희의 절정에서 마침내 곡이 끝났을 때. 시름으로 가득한 세상이 떠올랐고, 고뇌로 가득했던 베토벤의 삶이 뼈아프게 느껴졌다. 남과 북의 정상이 평화를 향해 함께 걸어 간 올해가 저물어 간다. 분단으로 신음해 온 이 땅에 마침내 통일의 함성이 울려 퍼질 때 이 곡도 연주될 것이다. 남과 북의 민중이 함께 얼싸안고 환희의 눈물을 흘리는 그 날을 상상하며 이 곡을 듣는다.  

 

 

❶ <환희의 송가>는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가 1785년에 지은 송가 형식의 시로, 단결의 이상과 모든 인류의 우애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베토벤이 이 시를 1824년에 완성한 교향곡 9번 4악장의 가사로 썼다. 

 


글.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저서 『클래식, 마음을 어루만지다』, 『클래식 400년의 산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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