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0년 09월 2020-08-28   804

[떠나자] 붉노랑상사화 군락지에서 그리움을 노래하다

붉노랑상사화 군락지에서
그리움을 노래하다

 

월간참여사회 2020년 9월호 (통권 278호)

전북 부안 변산반도 붉노랑상사화 군락지 ⓒ정지인

 

8월이 깊어 9월이 시작될 무렵 변산 바닷가에 피어나는 붉노랑상사화를 본 적이 있으신지. 인적 없는 바닷가에 하늘과 바다를 친구 삼아 피어있는 상사화 군락지는 보는 사람마저 그리움의 상념에 빠져들게 하는 서정적인 곳이다.

 

붉노랑상사화 군락지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전북 부안 변산반도의 송포항. 변산해수욕장과 맞닿아 있는 작은 항구마을이다. 송포항 배수갑문 옆으로 난 산길을 오르면 만날 수 있다. 변산마실길 2코스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길 입구에는 친절하게 안내판이 세워져 있으며 작은 어촌마을이라 찾기 어렵지 않다. 군사시설로 해안 철책의 흔적이 남아있는 짧은 오솔길을 지나면 전망 좋은 바닷가 언덕이 눈 앞에 펼쳐진다. 가슴이 시원해지는 바다 풍경과 붉노랑상사화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상사화는 봄에 잎이 나왔다가 잎이 다 지고 나면, 초가을에 꽃대가 삐죽이 올라와 꽃을 피운다. 한 몸이면서도 잎과 꽃이 함께하지 못하는 습성 때문에 그리움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상사화가 핀 전망 좋은 언덕은 한적한 곳으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기 좋다. 사람도 거의 없다. 

 

그리움을 소환하는 붉노랑상사화

이번 여름, 이곳을 찾은 때는 8월 초였는데 꽃이 예년 보다 빨리 피어 기대하지 않았던 꽃구경을 했다. 붉노랑상사화의 모양은 수수하고 수더분하다. 주로 노란색을 띠는데, 직사광선이 강한 곳에서는 붉은색을 띤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9월 하순에 선운사나 불갑사를 붉게 물들이는 빨갛고 화려한 꽃무릇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상사화의 일종이지만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붉노랑상사화는 도드라지지 않으면서도 주변 산과 바다에 잘 어울린다. 그래서 편안하게 느껴진다.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 정희성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중에서 

 

정희성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그리움을 소환하는 상사화 덕분에 괜히 마음이 애잔해진다. 떠남과 헤어짐이 많았던 올해의 시간이 스쳐 지나간다. 신종 감염병으로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 긴 장마와 폭우로 소중한 생명을 잃고 삶의 터전을 날려버린 이재민들에게는 참 가혹했던 시간이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사고와 예측불허의 자연재해 앞에서 무력함을 확인하는 일들이 유독 많았던 2020년이 이제 가을의 문턱에 와 있다. 허망하고 애통하게 떠나간 이들을 생각하며 연민의 마음이 그리움 되어 다가온다.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내밀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을 들여다볼 때 따뜻함을 나눌 수 있다고 노래하는 시인의 마음에 공감하며, 상사화 언덕에 앉아 다른 슬픔과 그리움에 손을 내밀겠다고 마음먹어 본다. 

 

천년고찰 개암사부터 바다내음 가득 곰소항까지

붉노랑상사화 군락지는 송포항에서 출발해 왕복 1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는 코스다. 여유롭게 해변 길을 더 걷고 싶다면 송포항부터 성천항까지 이어지는 6km 남짓의 변산마실길 2코스를 완주하는 것도 괜찮다. 넓고 하얀 모래밭과 소나무숲이 좋은 고사포해변도 지나는 곱고 아름다운 길이다.

 

변산반도는 내륙과 해안 경관이 모두 빼어난 국립공원 지역이다. 다녀볼 곳이 넘쳐나지만 상사화 군락지 여행길에는 고즈넉한 천년고찰 개암사를 권한다. 조선 중기의 아름다운 팔작지붕 건물인 수려한 대웅보전과 울금바위의 풍광이 일품인 개암사는 가볼 만한 절집이다. 원효대사가 수행했다는 울금바위의 전설도, 곰소염전에서 생산된 천일염으로 만드는 전통적인 제작방식의 죽염도 개암사에서만 만날 수 있는 매력이다. 

 

무엇보다 인적 드문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가 갈 때마다 마음을 평화롭게 해서 좋다. 특히 늦여름 개암사 방문은 싱싱한 초록을 자랑하는 아담한 차밭과 붉은빛을 뽐내는 화사한 배롱나무꽃, 평화로운 전나무숲길이 여행의 풍성함을 더해준다. 

 

책을 수평으로 층층이 쌓아 올린 듯한 퇴적층 지질을 보여주는 채석강과 수직 방향의 주상절리 절벽이 발달한 적벽강 일대는 독특하고 신비로운 국가지질공원이다. 오랜 세월 용암의 분출과 바닷물의 침식으로 이뤄낸 자연의 신비 앞에서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멋진 해안 경관이다. 지명은 중국의 이태백이 놀던 채석강, 소동파가 노닐던 적벽강에 비견될만하다고 해서 따온 이름으로, 둘 다 강이 아니라 바다다. 물때에 따라 해안절벽과 퇴적층이 물에 잠길 수 있는 점은 참고해야 한다.

 

변산 여행의 마무리는 곰소항이 좋다. 쇠락한 곰소염전 옆으로 형성된 식당가에는 게장백반과 백합죽 등 지역 별미집들이 몰려있고, 젓갈 단지에서 쇼핑도 가능하고, 찐빵을 직접 만들어 내는 인기 있는 찻집도 있어 여행길에 쉬어가기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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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정지인 여행카페 운영자

희망과 용기를 주는 여행, 성장하는 여행, 모두에게 평등한 여행을 꿈꾸는 여행카페 운영자입니다. 여행으로 바꿔 가는 세상, 우리 모두의 행복한 일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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