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2년 02월 2012-02-06   2708

아주 특별한 만남-최원희 회원

진보의 음색을 플루트에 싣고

최원희 회원

 

이경휴 수필가, 「참여사회」 시민기자

 

‘벌써’가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게다. 새해맞이로 떠들썩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이다. 봄의 서막을 알리는 입춘도 문턱에 섰지만 여전히 칼바람이다. 칼날 무뎌질 날을 기다리며 언뜻언뜻 스치는 눈발 속에 길을 나섰다. 서울의 동쪽 끝에서 장장 서쪽 끝,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까지. 한때는 물빛 아름답다는 ‘수색’이라는 지명으로 소설에 등장하던 곳이었는데, 지하철에서 내리는 순간 아날로그 시대의 낭만은 산산이 부서졌다. 출구는 숨은그림찾기를 연상케 했고, 규격화된 공간은 차가워 긴장되었다. 두리번두리번 하며 용케 지상으로 올라오니 새로운 공룡의 시대가 도래한 듯 마천루 천지였다. 어리벙벙한 가운데 약속 시간이 거의 다 되어 마음이 조급했다. 인터뷰가 가능한 시간은 점심 시간뿐이었다.

  허겁지겁 도착한 L기업 사옥에 심호흡을 크게 하고 들어섰다. 헌칠한 용모에 부드러운 미소의 한 청년이 다가왔다. 데이터베이스 엔지니어 최원희(33세) 회원이다. 자신의 시간에 맞춰 예까지 온 것에 대해 연신 미안해하며 방문 절차를 친절히 도와주었다. ‘신상 털기’ 수준의 개인정보 기록 후 사옥 방문 허가를 받은 뒤에야 세심한 그가 챙긴 다과와 함께 볕살 좋은 휴게실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구석진 테이블 쪽에 자리를 잡자 구름을 막 빠져나온 햇살이 통유리를 여지없이 뚫고 들어왔다. 드디어 평화로운 공간으로 들어섰건만 예정된 시간이 제법 축나서 불안했다. 그가 분위기 파악을 단박에 한 모양이었다.

  “점심시간이 좀 지나도 괜찮으니 너무 서두르지 마셔요.”

 
  감로수 한 사발을 마신 기분이었다.

 

바로크음악과 진보주의

“바로크음악은 경쟁에서 도태되는 것은 열등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보수 철학의 희생양입니다. 다양성이 상실되고 있는 현실에서 저평가된 바로크음악을 연주한다는 것 자체가 진보적인 거죠.”

 
  지난 여름 카페통인에서 있었던 작은 음악회 ‘바로크음악과 진보주의’에 대한 그의 해설이다. 확신에 찬 유려한 논변에 바로크음악 바로 알기부터 해야 할 것 같아 ‘쫄았’지만 그는 이미 강의를 각오하고 나온 듯했다. 찻잔을 옆으로 밀어두며 펼친 노트에는 준비해온 내용이 가득했다. 곧 바로크음악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이 시대와 음악과 진보주의의 접점을 짚는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먼저 그가 중심이 되어있는 ‘프로제토 코렐리’ 그룹 소개를 부탁했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아르칸젤로 코렐리(1653-1713)의 작품을 중심으로 바로크음악을 연주하는 비영리 프로젝트 그룹입니다. 코렐리는 바흐, 헨델 등 바로크음악 전성기 음악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작곡가로 ‘코렐리 스타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지요. 우리는 시장만능주의에 의해 부당하게 잊혀 가는 바로크음악을 연주함으로써 바로크 음악이 결코 진부하거나 열등하지 않다는 걸 알리고자 합니다. 바이올린, 비올라, 바로크 첼로, 플루트, 건반악기, 리코더 등을 연주하는데, 저는 플루트 주자입니다. 어릴 때부터 취미 삼아 즐겨 연주하던 악기라 제 몸의 일부로 느낄 때가 많아요.”

 
  금속으로 만든 플루트가 아닌 목관악기 특유의 음색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음성이었다.

“바로크음악, 실은 이렇습니다”

 
바로크음악 속에서 어떻게 진보주의를 읽어야 하나 궁금했다. 사전적 해설에 따르면 진보주의는 ‘사회적 모순을 변혁하고자 하는 전진적인 사상을 말하며 보수주의에 반한다.’ 이는 절대적 개념이 아니며 시대적·역사적 배경에 따라 상대적이다. 때문에 바로크시대의 역사적 배경부터 이해해야 될 성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17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혁신적인 젊은 음악가들이 르네상스 정신에 자극받아 새로운 양식의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이를 간단히 말해 바로크음악이라고 하죠. 이들은 명쾌한 균형미와 안정감 대신 격정적이고 약동감을 주는, 거대하면서도 다채로운 장식이 가해진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바로크’의 어원이 포르투갈어로 ‘찌그러진 보석, 불규칙하게 생긴 진주’를 뜻하는 바로코(barroco)일 정도이니, 그 시대로서는 얼마나 진보적인 음악입니까?”

  강의는 계속되었다.

  “한 예로 바로크음악은 더 세분화된 음고를 가졌답니다. 오늘날에는 ‘솔 샵’과 ‘라 플랫’을 같은 음으로 연주하지만 바로크음악은 분명히 구분하여 연주했죠. 주법도 오늘날 재즈 연주자들처럼 자유롭고 즉흥적이어서 같은 악보를 두고도 연주자마다 다채로운 표현이 가능했죠. 그런데 현대로 올수록 연주자보다는 작곡자의 권위가 더 커지면서 틀에 갇힌 연주를 하게 되었어요.”

  단순히 그 때문에 바로크음악은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것일까?

  “바로크음악이 보수주의의 희생양이었다는 말은 연주자가 작곡자의 기호에 맞게 연주해야만 했고, 이로 인해 연주자의 개성과 다양성을 상실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악기 개량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어요. 악기도 시장만능주의에 의해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로 바뀌는 바람에 바로크시대의 음악과 원전 연주자들이 설 자리가 사라져버린 겁니다. 결코 경쟁에서 도태한 것이 아닌데 불공정하게 잊힌 음악이 되어버린 게 안타깝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죠. 팔리는 음악을 하기 위해 학생, 교수, 연주자가 모두 시장의 눈치를 보는 있는 거죠.”

  강의의 끝은 우울 모드다. 시장의 진화에 따른 역사는 이런 것이란 말인가. 그럼 예술가들의 삶이란 가난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아야 하는 걸까.

 
  “버트란트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란 책에 예술가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구절이 있습니다. ‘예술가는 비굴할 것이냐, 비참할 것이냐를 선택해야 한다.’ 사회적 시스템 미비로 비참하거나 비굴한 음악가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초대권을 남발하고 따라서 공연 관람 문화는 엉망이 되고요. 프로제토 코렐리는 무료 대관 장소에서 공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서 원전에 충실하게 연주합니다. 사실상 구성원 대부분이 연주 외의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밑빠진 독에 물붓기’와 ‘시스템 바꾸기’

마음 같아선 이 기회에 바로크음악 바로 알기를 넘어 감상법까지 배우고픈 욕심이 났다. 하지만 본분을 벗어날 수는 없지 않는가. 이젠 참여연대 회원 이야기로 유턴했다. 회원 가입 시기와 동기부터 물었다.

  “일명 ‘가스통 회원’입니다. 천안함 사태 때 가입했어요. 동기는…….”

  선뜻 말을 잇지 못했다. 지레 짐작으로 ‘가스통 회원’들의 모범 답안인 ‘정부 발표 불신’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예상을 빗나갔다. 정답은 엘리트주의적 자의식을 한 방에 날린 책 한 권이었다. 최원희 씨는 그맘때 장 지글러가 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었다.

 
  “사회 문제에 관심은 많은 편이었지만 세상사에 냉소적이었어요. 뭐 내가 이런다고 세상이 바뀌나,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투표 밖에 더 있어, 그래도 세상은 안 변해, 하며 팔짱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았는데, 이 책이 망치로 내 머리를 땅 때리더라고요. 정신이 번쩍 들었죠.”

  그 때의 느낌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걸 보니 충격이 엄청 컸던 모양이다. 책을 인용하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는 울부짖으면서 말했어요. ‘우리가 제3국에 기부하는 일은 위험할 수도 있다. 그것이 테러리스트에게 갈 수도 있고, 군부를 살찌울 수도 있다. 그럼 그런 이유를 대면서 기부를 하지 않는 당신은 무엇을 하는가? 기부하는 행위는 어찌 보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지만 당장 굶어 죽는 아이들을 그냥 둘 수는 없지 않는가. 한 쪽에서는 계속 물을 붓고 또 한 쪽에서는 시스템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더 충격적인 지점은 저를 두고 하는 말이 있었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가 싶어 순간 긴장했다.

  “책을 읽기 전에 저는 기부하는 사람조차 비웃었어요. 그런데 작가는 저 같은 사람을 제일 나쁜 사람이라고 지적하더라고요. 기부하는 사람을 비웃음으로써 자신이 기부하지 않는 행위를 정당화, 합리화하는 아주 고약한 사람이라고. 얼굴이 화끈했어요. 과연 나는 무엇을 했는가. 정말 부끄러웠어요. 당장 유니세프에 난생 처음으로 기부했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그 즈음 천안함 사태가 터졌어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참여연대 회원 가입을 했어요. 그런 노력은 저 대신 참여연대가 해주고 있잖아요.”

  회원 가입 동기를 이보다 명쾌하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 참으로 따뜻한 변화에 뭉클했고, 동시에 카프카의 글귀가 비수처럼 가슴을 찔렀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의 미래에 주먹으로 일격을 가해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여야 하네.’ 책 속의 지식으로 책 밖에 꽃을 피운 그의 심전心田에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 분명 많아지리라.

 
  훈훈한 마음으로 참여연대에 대한 자유 발언을 부탁했다. “잘 하고 있잖아요. 구조적인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제일 많이 노력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성과도 많이 있었고. 그러니 아쉬운 점은 없어요. 사법 감시나 의정 감시 활동에 관심이 있어요. 전공을 살려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정보를 공개해서 사람들의 올바른 판단을 돕는 일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예를 들면 한 국회의원을 평가할 때 좋다, 나쁘다로 할 게 아니라 그 의원이 어떤 법안에 찬성했고, 반대했는가의 데이터를 보여주는 거죠. 기술은 가치중립적이지만 데이터는 명확하거든요.”

  어쩌랴, 이렇게 훌륭한 회원을 자칫 잃을 수도 있으니. 인터뷰 전, 그는 호주로 이민 떠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노후를 생각하면 우리의 현실은 너무 암담해요. 이번에 나가는 건 이민이라기보다는 지친 머리도 좀 식힐 겸 탐색하는 수준의 나들이예요. 가족은 모두 여기 있어요.”

 
  다행이다. 그럼 ‘프로제토 코렐리’는 어떻게 하지?

 
  “프로제토 코렐리 멜번이 시작됩니다. 그 곳에서 새로운 구성원들과 활동할 거고, 여긴 여기대로 진행할 건데 구심점이 될 후계자를 키우려고 물색 중예요. 2월 18일 카페통인에서의 연주를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국내 일정은 모두 접습니다.”

  후계자라는 말에 마주보며 크게 웃었다. 어디로 가든 그의 플루트 연주는 진보주의적일 것이고 그 여운이 참여연대의 배경 음악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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