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12월 2009-12-01   992

참여사회가 눈여겨본 일_2009 한국사회


죽여주는 2009년, 부활하는 2010년



김용민  한양대 겸임교수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이명박 대통령의 11월 TV토론회 직후이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래 이런 토론회는 모두 세 번 있었다. 지난 해 9월 9일(KBS 주관 ‘대통령과의 대화’), 올해 1월 30일(SBS ‘대통령과의 원탁대화’) 그리고 11월 28일(MBC 주관 ‘대통령과의 대화’)에 말이다. 촛불정국, 용산참사, 세종시 수정 및 4대강 강행 또한 도곡동 땅 의혹 재연 등 각각의 논란 직후에 개최된 토론회였다.




민주주의 ‘내 갈 길 가겠다’ 국민과의 대화 아닌 통보


따지고 보면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어 ‘대화’와 ‘토론’은 참으로 익숙지 않은 것들이다. ‘불도저’라는 별명을 자임했듯 자신은 “비켜라” 외에 더 한 말을 원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들 토론회의 취지는 ‘지금 논란, 이 정도로 끝내자. 더는 용인 안 한다. 그리고 나는 갈 길 가겠다’라는 의지의 고상한 ‘통첩’라 하겠다. 그래서 ‘국민과의 대화’를 보고도 “이거 ‘국민에 대한 통보’ 아니야?”라는 의문을 지우기 힘들게 만든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 시대를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대를 지나 미래로 향하는 길목에 도사린 예기치 못한 수렁이라고 규정한다. 민주주의, 서민 경제, 생태적 가치, 남북관계 개선, 지역균형발전은 숱한 사술邪術에 의해, 때론 공안을 앞세운 공포 조장으로 인해 강펀치를 맞았다. ‘민주주의의 역진은 없다’라는 기대는 보기 좋게 링 위에 쓰러져 카운트 다운되고 있는 상태이다. 쓰러져 누운 상태. 회생될 기미가 도저히 안 보인다. 이대로 KO패 될 것인가. 2009년 ‘죽여주는 MB’의 세상을 꼼꼼히 살펴보자.
 

시민주권 드러나는 ‘정치적 타살’

그 누가 ‘정치적 타살’을 부인하랴. 구속된 국세청 안원구 국장에 의해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기획된 것임이 드러나고 있다. 이것이 설마 박연차를 노린 것이었겠나. 박연차가 후원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표적이었다. 수사의 발단이 된 세무조사의 총책은 한상률 국세청장. 그는 두 주에 한 번씩 이명박 대통령을 알현해, 발견한 의혹을 건건이 ‘보고’했다고 한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은 “에누리 없다. 주저 말고 조사하라”는 식으로 ‘지시’했다고 하고(<조선일보> 보도). 따라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정권이 연출한 비극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옷깃만 스친 이들은 모조리 조사받았다고 한다. 정치적 고락을 같이 한 측근은 물론이요, 그의 단골 삼계탕집까지 예외가 없었다고 하니, 이거 말 다한 것 아닌가.

가뜩이나 촛불 탄압, 용산 외면 등으로 ‘민주주의의 쇠락’에 울분을 삭혔던 시민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누선에 강한 자극을 받았다. 500만의 조문 행렬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나도 똑같은 행동을 할 것 같다’며 떠나는 고인의 어깨를 도닥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 이 김대중 전 대통령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인한 노기에 지쳐 석 달도 안지나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서거한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생애 마지막 화두는 상통했다. ‘시민주권’ 그리고 ‘행동하는 양심’. 그러나 이 화두는 MB식의 ‘공안통치’ 앞에 짓눌려있다. 그래서 국민의 분노는 한 평도 안 되는 재보선 투표장에서 남 몰래 숨죽여 표출된다. 여당의 재보선 연전연패가 그 증거이다. 하지만 MB는 “나에겐 더 이상의 선거가 없다”고 일갈한다.


서민대책 친서민 대책, 거짓말 혹은 쇼

“나의 진심을 믿어 달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역설(逆說)적으로 ‘사기꾼’이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진심’임을 반어적으로 역설(力說)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민을 살리겠다”고 올해 가장 많이 떠든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서민 생활 개선에 대한 의지’임을 자인하는 것은 아닐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인해 궁지에 몰린 이명박 대통령, 6월말부터 ‘서민 대책’을 나이아가라의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수많은 것 중에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대책이 서민 상대 소액 대출 사업인 ‘미소금융’, ‘등록금을 취업한 다음 천천히 갚으라’는 취지의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 서민들의 주거 공간 확대를 위한 ‘보금자리 대책’이라 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이 정책도 결국은 각각 ‘뉴라이트 퍼주기’, ‘조삼모사식 대책’, ‘투기꾼 생계대책’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수많은 대책을 보고 또 따지면서도 공허함을 지울 길이 없다. 진정성을 도무지 느끼지 못하게 하는 한 가지 문제 때문이다. 이는 급식, 장애인 관련 예산의 삭감이 아니다. ‘용산참사’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무성의를 넘어선 기만적 작태이다. 망루 안 그 철거민들은 둘 중 하나였다. 타 죽거나, 붙잡혀 감옥에서 사는 것이다. 모두가 공존 공생하는 내용의 해법은 없었다. 그러다 사람이 죽었다. 사람이 죽었는데 계절이 네 번 바뀌도록 장례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현장에 찾아와 유족을 위로하며 해결 약속을 장담한 총리, 한 달 후에 ‘(용산 유족 방문은) 순진했던 행동’이라고 스스로 머리를 긁적였다. ‘쇼’의 진수였다. 철거민뿐이랴. 이명박 대통령 눈에는 ‘생존’을 갈구하며 싸우는 노동자, 서민들도 ‘없애야 할’ 존재에 그쳤다. (지난 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은 “집 없는 서민을 없애도록 하겠다”라고 했다. 그 말이 이 뜻이었나?) 이들의 아우성 그리고 신음은 시간이 갈수록 울림이 커진다. 돌아보건대, 이명박 대통령은 참 행복하겠다. 대통령이다보니 과거에 자기 돈 들여 용역 동원하던 것을 요즘엔 남의 돈(국민 세금)을 써서 합법적으로 경찰을 동원해 처리하지 않나.



4대강-환경정책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믿어라?


이명박 대통령은 올 어린이날에 “자신은 퇴임한 다음, 환경운동가가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를 누리겠다는 말에 대해 딴죽 걸 뜻은 없다만, 이는 “이완용이 총리대신 직에서 퇴임한 다음, 독립군에 합류할 것”이라는 비유가 가능할 만큼 허망하다. 지난 토론회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세종시’ 문제로 숙인 고개의 각도 폭만큼 ‘4대강’ 문제에 관한 목소리의 볼륨을 높였다. “꼭 필요하며 꼭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질 악화’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로봇 물고기’와 ‘대한민국 토건 실력’이란 방패막을 앞세워 “걱정하지 말라. 이건 무조건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바닥을 파고 보를 세우지만 ‘물의 둔탁함 따위는 없다’는 상식을 초월하는 말을, 국민은 아무 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어줘야 할 상황이다.


이명박대통령이 언급한 '로봇물고기'
4대강 문제와 관련한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큰 모순은 팔당에서 발견된다. 팔당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천혜의 농업 입지이다. 이 비옥한 땅을 일구는 분들, 수고스럽지만 유기농이라는 노고를 피하지 않았다. 명실 공히 ‘저탄소 녹색성장’의 표본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대통령되기 전 이곳을 들러 사진도 여러 방 찍을 만큼 애정을 뒀다. 그러나 이곳의 80%가 콘크리트로 뒤덮일 모양이다. 자전거 도로, 공연장 짓기 위해서 말이다. 또 주변엔 제방으로 두를 모양이다. 이런 ‘반환경적 작태’는 그런데, ‘친환경 사업’인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친환경 사업 하느라 유기농토를 갈아엎는다? 이런 모순이 어디에 있을까? 정부는 경찰의 호위 속에 이곳에서 측량 작업을 벌였단다. 이에 반발하는 농민들은 그러면 ‘친환경 사업에 반기를 드는 ‘반(反)환경 세력’이 되는 셈인가. 모순은 모순을 낳는 셈이다.



세종시 수정 약속 뒤집으며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이명박 대통령은 “세종시 건설을 원안대로 하면 나로서도 좋다”라며 자신의 ‘세종시 수정 입장’의 진정성을 여러 번 강조했다. 그러나 ‘세종시 수정으로 이명박이 좋은 점’은 꽤 있다. 세종시 건설에 들어갈 비용을 줄이면 가뜩이나 재정악화로 4대강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상을 해소할 수 있다. 행정부처 이전을 없던 일로 하면 MB의 지지기반인 수도권 부동산 부자들의 환심을 살 수 있다. 대표일 때 세종시 건설에 합의해 줬지만, 지금은 당권이 없어 운신의 폭이 좁은 박근혜 전 대표를 ‘약속 파기’의 한 책임 당사자로 몰아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 수 있다. 또한 이로써 ‘권력자가 마음먹으면 뭐든 한다’는 교훈을 입증하게 되면 자신의 정국 주도권은 더욱 강화될 수 있다.

세종시 건설은 충청도라는 특정지역의 사업으로 그 의미를 한정해서는 안 된다. 서울에 집중된 인구 및 경제력을 분산시켜 지역이 고루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부 차원의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이런 취지를 모를 리 없을 이명박 대통령은 그래서, ‘효율성 제로’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KTX로 인해 서울과 40분대로 좁혀진 교통망과, 전화는 물론 화상회의까지 가능한 최첨단 통신망을 떠올려 보자. 여전히 ‘효율성 제로’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세종시 수정 관철 의지를 재확인하며 “충청도에 대한 ‘보상’은 충분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가 했던 약속 가운데에는 “내가 대통령이 되면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안될 거라고 한다. 이건 모략이다. 저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다.”(20007. 11. 27)라는 것도 있었다. 혹시 이 약속을 나중에 “양심상 세종시에만 특혜 줄 수 없다”라며 뒤집는 것은 아닐까. 이 상상은 모략일까. 그러나 수시로 모략은 진실이 되고 있다.



언론 자유 ‘권력의 노예’ 전락한 언론·검찰


KBS는 ‘이명박의 사람’이 사장 자리에 올랐다. MBC의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는 뉴라이트가 구성원 다수를 점했다. SBS는 어떨까. MB의 시중,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SBS를 “쉬운 상대”라며 코웃음 쳤다. 방송 3사는 이렇게 함락돼 가고 있거나 함락됐다고 인식되는 양상이다. 이런 와중에 한나라당 친화적 언론 기업 집단도 방송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미디어법이 파행과 위법에 물든 채 통과됐다. 통과된 법에 따라 부여될 방송 채널을 얻고자 조중동은 더욱 노골적으로 ‘권력의 노예’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수익구조가 열악한 나머지 방송 신문도 ‘광고 수입’이라는 ‘밥줄’에 얽혀 ‘알아서’ 처신하고 있다. 언젠가 부터 ‘정권 비판적 기사’가 점점 축소되더니 이제는 ‘정권 친화적 기사’마저 노골적으로 고개를 들고 있다.

KBS 정연주 사장 및 신태섭 이사 해임. MB특보 출신 김인규과 구본홍, 각각 KBS와 YTN 사장에 취임. 신경민, 손석희, 김제동 등 친정부 성향이 아닌 진행자의 교체. MBC ‘PD수첩’ 제작진 기소 및 이메일 내용 공개. 시사 프로그램 대폭 축소 및 친기업 성향의 프로그램 전진 배치. YTN 노조원 해고 및 ‘돌발영상’ 제작자 교체.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구속. 정말 정신없는 지난 2년이다. 언로는 막혔다. MB에 대한 비판은 금기시 또는 자제됐다. 과거 정권 때에 기자실을 없애는 것을 ‘언론자유의 말살’이라 운운하며 엄살 피우던 우리네 언론인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혹시 죽었을까. 그렇다면 저항하다가 죽었을까 아니면 무방비 상태로 찍소리 못한 채 죽임 당했을까. 한편 권력자의 사주를 받아 붙잡고 가두고 욕 먹이는 ‘악역’을 마다않는 검찰. 검찰도 이 정권 들어 자신의 자존심을 죽여 버리고 말았다.



부활 예고된 반환점, 지방선거 ‘표로 심판하자’


‘바닥까지 가야’ 상승세를 전망할 수 있다. 경제 지표가 그렇다. 많은 이들은 2009년을 더 추락하기 힘든, 이 나라 민주주의의 바닥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2010년 전망을 ‘희망적’으로 본다. ‘상승할 일’만 남았다며 말이다. 근거는 다양하다. 이명박 정부의 ‘반환점’이 예고돼 있다는 점이다. 이뿐 아니다. 반환점 ‘턴’ 기념 빅 이벤트가 있다. ‘지방선거’이다.

앞서 소개한대로 이명박 대통령은 “나에겐 더 이상의 선거가 없다”라고 했지만,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한나라당원에게는 수많은 선거가 남아있다는 점이다. 거듭되는 중간선거의 패배 결과를 무시하며 ‘My way’를 택한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왕따’의 길만 남을 뿐이다. 친박은 물론 친이 조차 ‘이명박 대통령과 묶여 정치적 순장을 당할 수 없다’며 갈 길을 따로 택할 것이란 이야기이다.

지금 젊은층의 ‘투표로 복수하자’는 결기는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바닥으로 치닫는 민주주의를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이 정치 무관심층에까지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나라당 지지성향의 표로 주류를 이뤘던 ‘적극 투표층’에 심대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낮은 투표율로 상징되는 재보선에서 야당 성향의 표가 늘상 다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한나라당의 향후 지방선거, 총선, 대선 전망을 어둡게 하는 단서이다.

‘투표 심판층의 확대’의 원인 제공자는 누구일까. 집회와 시위, 인터넷 의견 개진 등 다양한 ‘정권 불만 표출 수단’을 완전히 억눌러 결국 투표에 의한 심판에 집중하게끔 만든 현 권력이다. 게다가 서민 지원 축소, 전세대란, 전무한 학자금 대책, 물가 폭등, 농가 부채 폭증, 노골적인 지방 홀대 등 서민들의 ‘심판거리’를 현란하게 양산한 당사자 역시 현 권력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든다. “나를 때려줘”라는 이들이 이 세상에 이명박 정부와 마조히스트 말고 또 있을까’라는.


“MB 주변의 하루살이들, 긴장하시라”

2009년. 사법부를 권력의 추종기관으로 만들려 했던 한 대법관의 비행이 발견됐다. 언론은 확실히 장악됐다. ‘정치의 실종’은 이젠 새롭지도 않다. 시민단체는 거듭되는 탄압 속에 빈사 상태에 이르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국민 뿐. 그래서일까. 현 정권은 이 국민에게 ‘권력에게 저항하지 말라’며 끊임없이 무력감을 부추기고 있다. ‘저항하려면 하라. 그 비용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라는 교훈을 남기며, 질 게 뻔 한 재판전도 불사하며 비판세력을 압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무력감의 내면화’를 걱정한 탓일까. “싸울 방법을 모르거든 담벼락을 향해 욕하기라도 하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 말을 유언처럼 남기고 떠났다.

시민이 문제의식을 가질 때, 그리고 실천력을 가질 때, 그러니까 권력을 무서워하지 않을 때, 민주주의는 건강해진다. 민주주의의 건강함은 시대에 희망이 있음을 말한다. 국민은 쫄지 않았다. 2010년, 그래서 희망이 있다. ‘이명박’에게 양심은 물론, 운명까지 담보로 헌사한 하루살이들, 긴장 좀 해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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