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0년 10월 2020-10-05   426

[떠나자] 부에노스아이레스 – 코로나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

부에노스아이레스

코로나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

 

월간참여사회 2020년 10월호 (통권 279호)

Ⓒ김은덕, 백종민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도시

친구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결혼했다는 소식을 나중에 들었다. 서운하지는 않았다. 청첩장을 받았다 해도 감히 지구 반대편까지 갈 수 없었을 테니까. 다만 그 멋진 도시에서 시작하는 신혼생활은 어떨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 봤다. ‘결혼식 때도 소고기를 구울까?’, ‘축가 대신 탱고 공연을 하려나?’, ‘아르헨티나에도 시집살이가 있을까?’ 등등.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세상에서 가장 물가가 저렴한 도시’ 하는 식의 ‘세상에서’ 시리즈가 있다면 낭만적인 도시 타이틀은 단연 지구 반대편에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차지일 것이다. 집에 지구본이 있다면 위치를 한 번 찾아봤으면 좋겠다. 이리저리 돌려가며 그 도시가 서울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확인했다면 그렇게 먼 곳에서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한 스토리가 얼마나 로맨틱한지 상상할 수 있을 테니까.

 

이를 확인해주는 그 친구의 일화가 하나 있다. 낯선 나라에 도착해서 가장 떨리는 순간은 아무래도 출입국관리소에서 마주하는 1분도 안 되는 시간일 거다. 굳은 얼굴로 여권과 내 얼굴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는 출입국사무소 직원의 손에 내 운명이 달렸으니까! 그가 ‘어떤 이유로 방문하느냐’고 외국어로 물어오면 등에 식은땀까지 줄줄 흐른다. 당시 스페인어가 서툴렀던 친구는 연인을 만나러 왔다고 말하는 대신, 사랑을 뜻하는 ‘아무르amor’라는 단어를 썼단다. 그랬더니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웃으며 ‘사랑을 찾아서 왔는데 무조건 통과지’라고 했다고.

 

엉뚱하고 비현실적인 이 일화를 통해 탱고의 고장,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의 DNA에 사랑이 새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탱고’라는 춤과 음악은 구애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전후 늘어난 이민자 사회에는 여성보다 남성이 많았는데, 이성에게 매력을 어필하려는 노력이 ‘탱고’라는 춤과 음악으로 발전했다고 하니, 감히 사랑의 도시라고 부를 만하다.  

 

봉쇄조치 속에 싹 튼 ‘테라스 사랑’

그저 농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SNS를 통해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 사이에서 ‘테라스 사랑’은 탱고의 21세기 버전이다. 코로나19가 유행처럼 번지자 아르헨티나 정부는 6개월째 온 도시에 락다운Lockdown, 봉쇄조치을 걸었다. 시민들은 집에 갇혔다. 반드시 필요한 경우, 예를 들어 식료품을 사러 가거나 급히 병원을 가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국경도 막혀서 락다운 이전에 출국했던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외국에서 때아닌 방랑 생활을 하고 있고, 여행 차 입국한 외국인들은 벌써 몇 개월째 아르헨티나에 발이 묶여 있는 상황이다. 친구 역시, 일 때문에 잠시 한국에 왔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아무르’를 두고 왔으니 애가 탈 텐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매일 화상 통화로 인사를 나누는 것뿐이라고 한다. 얼굴을 만질 수도, 함께 음식을 먹을 수도 없으니, 코로나19의 다양한 피해 사례 중 손에 꼽힐 만큼 안타까운 사연이다.  

 

이런 우울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코로나 블루’가 유행처럼 번질 것 같았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은 ‘아무르를 찾아서’라는 말처럼 이런 상황에서도 사랑할 방법을 찾았다. 건물 밖으로 나가지 못하니 바깥바람을 쐬러 테라스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동안 관심 없었던 윗집, 아랫집, 옆집은 물론 건너편 건물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사랑에 빠진다는, 영화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로맨스를 현실 세계에 소환시키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서 가능한 일인가 싶다. 

 

커피 한잔과 메디아 루나가 그리운 일상 

친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아침마다 카페테라스에 앉아 마시던 카페 꼰 레체café con leche❶와 메디아 루나medialuna❷ 한 조각이 간절하다고 했다. 나 역시 부에노스아이레스, 하면 카페에서 하루를 여유롭게 시작하는 풍경이 먼저 떠오른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평범함이 일상이라면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행위가 그들에게는 오늘도 평범한 하루가 무사히 시작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 같아 보였다. 

 

월간참여사회 2020년 10월호 (통권 279호)

Ⓒ김은덕, 백종민

 

국경을 닫은 나라는, 도시 안 카페의 테이블과 의자마저 모두 치웠다. 한국과 계절이 정반대인 그곳은 카페까지 문을 닫으니 더욱 황량해졌다고 한다. 그렇게 그들의 일상은 소거되었다. 아르헨티나는 얼마 전 약 반년 만에 임시로 문을 열었는데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은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두꺼운 외투를 걸쳐 입고 카페로 몰려나와 한겨울을 즐겼다고 한다. 

 

카페가 열렸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마치 나른한 봄기운처럼 느껴졌나 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지구 반대편 사람들은 카페에서 아침을 시작하던 평범한 일상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친구 역시 신혼부부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봄볕을 기다리고 있다. 

 

❶   카페라떼와 비슷한 음료로 스페인어로 ‘우유를 넣은 커피’라는 뜻  

❷   아르헨티나식 크루아상 


글·사진. 김은덕, 백종민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좋은 친구이자 함께 글 쓰며 사는 부부 작가이다.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며, 서울에서 소비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마흔 번의 한달살기 후 그 노하우를 담은 책 『여행 말고 한달살기』를 출간했다.

 

>> 2020년 10월호 목차보기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