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03월 2019-03-01   1256

[떠나자] 스페인 마요르카 – 쇼팽이 사랑한 꿈의 섬

스페인 마요르카

쇼팽이 사랑한 꿈의 섬

 

 

여기가 독일인지? 스페인인지?

이베리아반도, 동쪽에 위치한 마요르카(Mallorca)는 제주도보다 두 배나 큰 섬이다. 지중해 가운데 위치해 풍부한 일조량을 자랑하며 독일, 영국, 북유럽 등 햇빛을 보기 힘든 나라 사람들에게 꿈의 휴양지이기도 하다. ‘유럽의 하와이’로 불리는 이 섬은 우리나라에서 신혼여행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우리는 신혼부부도 아니고, 휴양은 바르셀로나와 빌바오 바다에서 실컷 했다. 그런데도 이 섬에서의 ‘한 달 살기’를 선택한 이유는 출간 계약을 마친 사진집 때문이었다. 사랑에 빠진 이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색다른 장소가 필요했고 마요르카라면 낭만적인 사진을 건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겁도 없이 여름 최고 성수기에 우리를 이 섬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팔마 시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마요르카의 70~80%의 주민이 이곳, 팔마에 모여 살고 있다. 관광객이 밀어닥치는 여름이라 해도 팔마에만 있다 보면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잘 안 난다. 아침을 먹는 식당 테라스에서도, 미사를 드리는 동네 성당에서도 볼 수 없었던 여행객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는 바로 해변이다. 오로지 휴양을 목적으로 마요르카를 찾은 여행객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건 독일인이다. 해변을 오가는 버스와 해변 근처 슈퍼, 정류장, 식당 어디서나 독일어를 들을 수 있다. 

 

집을 사고파는 부동산 정보에도 독일어와 스페인어가 나란히 적혀 있다. 올여름 독일의 한 여행사의 조사에 따르면, ‘독일인이 자주 가는 휴양지’로 뽑힌 곳은 튀니지, 그리스의 크레타 섬, 스페인의 이비자와 까나리아 섬, 그리고 제일 높은 순위에 마요르카가 있다. 맛있는 음식과 적당한 물가, 무엇보다 연중 일조량이 풍부하고 바다가 아름다운 마요르카는 오래전부터 독일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팔마 시내를 벗어나면 이곳이 스페인 섬인지 독일 땅인지 헷갈릴 정도다. 

 

월간 참여사회 2019년 3월호 (통권 263호)

연중 일조량이 풍부하고 해변이 아름다운 마요르카는 ‘유럽의 하와이’로 불린다 ⓒ김은덕, 백종민

 

 

사랑을 숨기기에 적당한 장소

우리는 한 달 동안 우리의 발이 되어줄 든든한 교통카드를 들고 발데모사(Valldemossa)로 향했다. 팔마에서 20km 떨어진 발데모사는 1838년 쇼팽이 그의 연인 조르주 상드와 함께 이곳 수도원에서 지낸 것으로 유명해졌다. 우리는 휴양이나 신혼여행을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변가의 호텔 대신 팔마 시내에 숙소를 잡았고, 렌터카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마요르카에 배낭여행을 오는 한국인은 드문 편이지만 렌터카가 없어도 얼마든지 섬을 즐길 수 있다. 

 

마요르카는 대부분의 길이 쭉쭉 뻗어있지 못하고 구불구불 좁게 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발데모사로 가는 길도 비슷했다. 역에서 출발한 210번 버스가 올리브 나무가 펼쳐진 들판 사이를 30분 정도 달리더니 꼬불꼬불한 산길로 접어든다. 산언덕, 오밀조밀 모여 있는 집들을 향해 10여 분을 더 달린 후에야 버스는 우리를 발데모사 입구에 데려다 줬다. 

 

그곳에는 관광지답게 기념품 샵과 레스토랑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관광안내소 직원이 올드 시티가 아름답다며 꼭 가보란다. “이 마을 전체가 올드 시티 같은데 더 오래된 구역이 있다고?” 초록색 창문과 집집마다 정성 들여 키운 화분 그리고 문 앞에 붙어있는 이곳 태생의 성녀 산타 카탈리냐 토마스(Santa catalina thomas)의 행적을 그려놓은 타일 장식까지 화려하진 않지만 품위가 넘치는 생기가 오래된 역사지구를 감싸 안고 있었다. 흡사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소도시에 와 있는 것 같았다. 

 

골목 구석구석을 천천히 걸으며 사진을 찍고 쉬었다 가기를 반복하다 보니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아까 관광안내소에서 여기서 ‘가까운 바다’가 어디인지 종민과 이야기 나누는 걸 직원이 엿들었는데 그 발음이 발데모사의 전통 빵인 ‘꼬까스 데 빠타타(Cocas de patata)’로 들렸나 보다. 여하튼 직원 덕분에 이곳 전통 빵 이름도 알게 되고 출출해진 우리는 맛있는 빵 한 개씩을 사 먹었으니 얻어걸린 것 치고는 운이 좋다. 빵 위에 설탕가루를 뿌린 전통 빵은 소박하지만 고소하고 달지 않았다. 

 

한여름이라도 산 위에 만들어진 마을이라 선선한 바람이 분다. 눈이 쌓인 겨울의 발데모사 사진을 보노라니 왜 쇼팽이 이곳에서 병이 악화돼 죽었는지 알 것 같다. 그나저나 한 겨울에도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일이 없다는 마요르카 해변 지역을 놔두고 쇼팽은 왜 굳이 겨울에 눈마저 내리는 발데모사 산골짜기에 숙소를 잡았을까? 불륜이었던 당시 연인, 조르주 상드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섬 속 오지까지 들어와야 했던 걸까? 하긴 발데모사라면 사랑을 숨기기에 더없이 훌륭한 장소란 생각이 든다.   

 

월간 참여사회 2019년 3월호 (통권 263호)

발데모사는 1838년 쇼팽이 그의 연인 조르주 상드와 함께 이곳 수도원에서 지낸 것으로 유명하다 ⓒ김은덕, 백종민

 


글. 김은덕, 백종민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좋은 친구이자 부부다.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며, 서울에서 소비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한 달에 한 도시》 유럽편, 남미편, 아시아편《없어도 괜찮아》,《사랑한다면 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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