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12월 2019-11-28   1589

[여는글] 두 번째 화살

여는글

두 번째 화살

 

월간 참여사회 2019년 12월호(통권 271호)

 

얼마 전 지인에게 전해들은 사연은 지금도 내내 가슴에 박혀있다. 지인은 팔순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는데, 어머니가 밭에서 일을 하다가 그만 가시에 손이 찔렸다. 순간 어머니는 ‘아야’ 하며, 아픔을 드러냈다. 아들은 놀라서 어머니의 손을 살펴보았다. 손바닥에 조금 피가 날 뿐, 그리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다행이다 싶어 안심을 했는데 잠시 후 어머니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서럽게 울었다. 아들은 몹시 당황했다. 가시에 찔린 통증 때문에 그리 우는 것은 아닐 터인데…. 그저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가시에 찔린 게 그리 아프셨어요?” 아들이 조심스레 물었다. “가시에 찔린 순간 아팠지. 그런데 나도 모르게 아버지 생각이 나더구나. 가시에 잠시 찔려도 이렇게 아픈데, 아버지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에, 울음을 참을 수가 없구나.” 

 

노모의 아버지, 그러니까 지인의 외할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어떤 사연으로 북쪽 정권에 사로잡혀 모함을 받고 심한 고문을 당한 끝에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분단 70년 동안 노모는 그 아픈 기억을 거의 잊고 살았다. 그런데 우연히 가시에 찔린 통증이 과거의 기억을 불러낸 것이었다. 나는 지인의 이 얘기를 듣고 문득 ‘두 번째 화살’을 떠올렸다. 첫 번째 화살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고 두 번째 화살은 바로 현재의 기억의 재생인 셈이다. 

 

본디 두 번째 화살이란,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사용한 비유이다. “어리석은 범부나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떤 사태를 만나면 좋고 나쁜 생각을 일으킨다. 그러나 범부들은 그 감정에 포로가 되어 집착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감정을 갖더라도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은 두 번째 화살을 맞는다고 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 누구든 어떤 환경과 상황을 피할 도리는 없다. 다만 그것에 대한 판단, 해석, 감정, 태도에 따라 고통이 발생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뜻이다. 가령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지 않아 다시 소를 도둑맞았다고 한다면, 이런 사람은 두 번째 화살을 맞은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오늘날 ‘두 번째 화살’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들을 겨누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 무책임한 비난과 거짓 뉴스를 퍼뜨리는 경우, 피해 당사자는 억울하게도 두 번째 화살을 맞는다. 이렇게 2차 피해/가해자는 동시에 발생한다. 또 어떤 잘못을 저질러놓고 반성하지 못하고 은폐하는 자는 두 번째 화살을 불러들인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당당한 주체성을 세우지 못하고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면서 수시로 흔들리는 사람은 매 순간 두 번째 화살을 맞고 사는 셈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왜, 두 번째 화살에 노출되어 있는가? 그것은 어떤 사태, 그 사태에 대한 기억의 다양한 시선과 태도가 아닐까? 사건과 사태는 늘 일정한 기억을 남긴다. 그 기억은 때로는 우리들에게 다시 아픔을 환기시킨다. 앞에 말한 70년 전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재생이 그렇다.

 

그런데 때로는 역설적으로 ‘망각’이 두 번째 화살이 되어 우리들에게로 날아오는 경우가 있다. 느슨한 기억, 불편해하는 기억, 재생하지 않으려는 기억, 굴절된 기억, 과거 종결형으로 가두어 버린 기억들이 종국에는 두 번째 화살이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은 다양한 전략과 전술로 대중의 기억을 조정한다.

 

한 해가 저무는 즈음, 굵직하고 신경을 예민하게 자극했던 사건들 때문에 가려지고, 묻히고, 잊혀지는 ‘사건’들을 헤아려 본다. 국정원 프락치 사건, 양승태 사법농단 재판, 홍콩과 세계 시민연대, 예멘 난민과 이주민 혐오, 을지로와 재개발, 반려동물과 안락사 논란, 비핵화 노선과 핵잠수함 F-35 문제, 기후위기와 후쿠시마 원전, 세월호, 가습기 등 사회적 참사, 탄력근로제 확대 등이다.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다. 막막하고 아득하고 어지럽다. 누구나 이런 감정을 갖지 않을 수 없겠다. 그러나, 아차! 이런 감정에 사로잡혀 기억의 정신 줄을 바로 잡지 않으면, 이게 바로 ‘두 번째 화살’에 정통으로 맞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들의 기억의 줄이 느슨할수록, 두 번째 화살은 시위를 팽팽하게 당길 것이다. 

 

묻는다. 망각을 환영하는 자 누구이고 망각에 신음하는 자 누구인가? 그리고 기억을 두려워하는 자 누구인가?   

 


글. 법인스님 「월간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참여연대 전 공동대표

16세인 중학교 3학년 때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이라는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과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을 지냈으며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에서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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