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11월 2000-11-01   859

시민운동 문턱이 너무 높아요

개그우먼 박경림

언젠가 아는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전날 저녁에 텔레비전에서 본 탤런트가 안에 있더란다. 그는 반가워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그런데 그쪽에선 물끄러미 쳐다보다 어물쩡하며 인사 하더란다. 자기는 그 배우의 얼굴을 잘 알고 있지만 배우에게 자기는 낯선 사람인 것이다.

박경림 씨를 봤을 때 그 얘기가 떠올랐다. 박경림 씨가 웃고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웃음이 나오고 친근함이 느껴졌다. 컬컬한 목소리도 그대로고, 툭툭 내뱉는 재치와 와일드한 제스처도 다를 바 없었다. TV 브라운관에서 본 것과 실제로 그를 봤을 때 다른 점은? 별로 없었다. 새삼스럽게 느낀 점이라면 ‘참 성실한 사람이구나’라는 것이다. 그를 처음 본 것은 ‘D-cats와 함께 하는 끼 1% 사랑나누기 캠페인’에서였다. 그는 분주히 움직였다. D-cats는 동덕여대 방송연예학과 학생들이 만든 동아리 이름이다. 그리고, 이 동아리의 회장이 박경림 씨다. 참여연대 ‘아름다운 재단’의 홍보대사인 이들은 10월 11일, 자신들의 타고난 끼를 무기로 이웃을 돕겠다는 약정식과 함께 롯데백화점 지하 1층 롯데리아 앞에서 캠페인을 벌였다. 그 자리에 참석한 D-cats 회원들은 누구 하나 의례적인 행사쯤으로 적당히 생색내고 시간 때우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이 진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틀 후, 동덕여대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수업 마치고, 약속된 장소로 급히 뛰어오는 모습은 여느 학생과 다를 바 없었다. 그날은 일부 산간지방에서 얼음이 얼지도 모른다는 기상청 예보가 있던 날이었다. 꽤 쌀쌀한 날씨였다.

“기사 한 줄 나려고 한 건 아니다”

“우아, 잠이 얼마나 오던지… 교수님과 일대 일 수업방식이라 졸지도 못했어요.”

전날 바쁜 스케줄로 잠을 자지 못한 모양이다.

“이웃에게 무언가를 나눌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이런 얘기를 들었어요. 그렇구나, 고개가 끄덕여지더라고요.”

‘아름다운 재단’의 홍보대사가 된 이유이다. 이 세상 누구든지 타인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남을 돕겠다는 건 마음의 문제이지, 돈의 문제는 아니다. 이것이 남을 돕겠다고 나선 이유이고, 유일한 신념이다.

“우리는 학생이잖아요? 기부할 많은 돈은 없어요. 그래서 우린 가지고 있는 끼와 재능으로 남을 도와야겠다는 거죠.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이면 뭐든지 열심히 할 겁니다.”

단순히 생색내려고 한 게 아니라며,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장이 허락되지 않았음을 탓했다. 10월 11일 있었던 캠페인도 “솔직히 언론사 좋은 일만 시켜줬다”며 아쉬워했다. 시민들의 동참이 실제로 많지 않았고, 카메라 든 기자들만 잔뜩 모여 “연예인들이 이런 일 하네”라며 홍보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닌가 싶어 아쉬움도 남는다고 했다. 애초 그가 의도했던 것에는 못 미치는 미약한 것이었다며 앞으로는 준비를 더욱 철저히 해 어려운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겠다고 덧붙였다.

이 얘기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그는 ‘대충대충’ 살고 싶어하지 않았다.

“요즘 학생들요? 저는 대학생 하면 농촌활동 가고, 사회문제에 대해서 바꾸라고 시위도 하고, 대학 축제에도 참여하고, 뭐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요. 학기초에 등록금 투쟁하잖아요? 좀 하다가 그만둬요. 등록금은 올라가요. 일년이 지나고 또 싸움을 해요. 달라지는 건 없어요. 예전의 선배들은 아니다, 싶으면 싸우지 않았어요? 아휴, 젊은 사람들이 도대체가 도전의식이 없는 것 같아요. 그게 우리 세대의 문제인 거 같아요.”

얼마 전 학교에서 대동제가 있었다. 그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축제기간 3일동안 학교에 왔다. 그리고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충분히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는 그 기간을 학교 안 와도 되는 시간쯤으로 알고 있는 친구들이 많아 답답하다고 토로한다.

“축제 때 학교가 텅텅 빈다니까요.”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여전히 친근하다.

“어, 박경림도 하네”

“방송은 사람을 비굴하게 만들 때도 있어요. 그래서 첫째, 하기 싫은 일은 절대 안 한다. 둘째, 최대한 노력해도 방법이 없을 때, 피할 수 없을 때는 즐기자.”

이것이 방송 일을 하면서 그가 지키고자 하는 원칙이다. 지금은 방송 일을 하고 있지만 “방송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그러나 연예인은 그의 오랜 꿈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소풍 가서 전교생 앞에서 사회를 보거나 남들 앞에 서는 것이 마냥 좋았다. 그 때부터 토크쇼를 진행하는 게 꿈이었다. 우연히, 평소 하던 대로 남들 웃기고, 사람들 앞에서 떠든 것이 계기가 되어 방송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운명인가? 아니다. 필연이다. 꿈을 꾸는 자만이 성취할 수 있다.

“저는 방송이 생활이에요. 일상생활에서 하는 대로 방송국에서 행동해요. 나이든 분들이 저를 보면 ‘쟤는 말을 막 하네’, 그럴 수도 있죠. 그렇지만 저는 예의나 배려 같은 거 중요시해요. 아무 생각 없이 떠드는 건 아니에요.”

그는 새로운 세대의 반항이 이유 없는 반항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타당성과 논리를 갖춰야 한다”며 “어느 세대든 젊을 때는 문제의식을 표출하다가 기성세대가 되면 똑같아지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시민단체의 활동을 보며 그가 느낀 점은 무엇일까? 아니나 다를까, 도전하는 젊은이로서 일침을 가했다.

“시민운동, 문턱이 너무 높아요. 마음만 있으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운동, 이런 생각이 들면 좋겠어요. 시민운동이라고 하니까 저는 되게 어려운 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참여하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았어요. 요번에 사람들이 그랬을 것 같아요. 어, 박경림도 하네, 아무나 할 수 있네!”

박경림 씨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어라, 박경림도 하네!

윤정은(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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