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05월 2019-05-01   1153

[통인뉴스] 소액주주, 대한항공 지배구조 개혁의 시작을 알리다

소액주주, 대한항공 지배구조 개혁의 시작을 알리다

조양호 회장 연임 반대 주주활동의 과정과 의미

 

글. 이지우 경제금융센터 간사

 

 

기자회견

지난 3월 27일 대한항공 본사 앞. 참여연대, 민변 등은 대한항공 주주총회에 앞서 조양호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진행 중이다 

 

2019년 3월 27일 오전 10시경, 대한항공 정기주주총회에서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이사가 당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 부결을 선언했다. 대한항공 측 발표에 따르면 조양호 회장의 이사연임에 대해 의결권을 가진 주식의 64.1%가 찬성, 35.9%가 반대였다. 이사연임을 위해 필요한 주주총회 참석 표의 3분의 2인 66.67%보다 대략 2.57%가 모자랐다. 그러나 미리 집계되지 않은 현장 표까지 포함되었다면 최종결과는 조금 바뀌었을 것이다. 참여연대, 민주화사회를위한변호사 모임 등의 시민단체가 140여 명의 소액주주들로부터 조양호 회장 연임 반대표 51만 5,907주, 즉 전체 주식의 0.54%를 위임받아 주주총회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주주들의 빛나는 ‘의결권’ 행사

소액주주들의 이 51만여 주는 언뜻 보기에 대한항공 전체 보통주식 9,484만여 주 중 매우 적은 비율로 보이지만, 그 의미는 절대 작다고 할 수 없다. 우선 광고 집행이나 소위 ‘큰 손’들의 결합 없이 그야말로 불특정 다수의 주주가 자발적으로 이뤄낸 성과이다. 또한 참여연대와 민변 등은 2주라는 짧은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기간 동안, 주주들이 직접 서명을 한 위임장의 ‘원본’만을 수령했다. 은행 계좌도 휴대폰으로 만들고, 청와대 국민청원도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할 수 있는 시대에 전국 각지와 멕시코·캐나다·홍콩 등 해외에서 손으로 꾹꾹 눌러쓰고 도장을 찍은 위임장들이 참여연대로 속속 도착했다.

 

본인 주식은 물론 동창들의 위임장까지 보내온 주주, 미성년 자녀의 위임을 위해 가족 모두의 신분증 사본을 보낸 주주도 있었으며, 위임장 출력이 어려운 주주에게는 위임장을 우편 발송한 뒤 다시 우편으로 받기도 했다. 주주총회 직전 참여연대의 위임 권유 사실을 안 지방 거주 주주의 위임장을 버스 특송으로 고속터미널에서 퀵서비스로 받은 적도 있으며, 캐나다 거주 주주가 오기誤記 수정을 위해 두 번씩이나 우편을 보내온 사례도 있었다. 이렇듯 ‘평범한’ 주주들이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신의 ‘의결권’을 행사하기 위해 애썼다.

 

이번에 조양호 회장 연임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140여 명 주주의 평균 위임 주식 수는 3,600여 주이지만, 그 안에는 2주, 120여 주 등 진정한 ‘소액’ 주주들의 주식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주식을 팔지 않았을 텐데’하며 자투리 주식이라도 위임하겠다는 주주들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담당 간사로서 만감이 교차했다. 개인 주주들이 도를 넘은 갑질과 횡령·배임 등 불·편법 행위가 드러난 이후에도 총수일가가 회사를 계속 경영하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행동했다는 것은, 기업이 재벌총수의 소유물인 것처럼 당연시되던 국민적 정서에 균열이 갔으며, 개인 주주들이 자신들의 주주권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자각’이 시작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월간 참여사회 2019년 5월호 (통권 265호)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연임 반대 의결권 대리 행사를 하기 위한 소액주주들의 위임장 원본이 전국 각지와 멕시코·캐나다·홍콩 등 해외에서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로 모였다

 

전자투표제, 주주들의 보편적 의결권 행사 시스템 되어야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2018년 5월 31일 국민연금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및 이행 계획 등에 대한 질의서’ 발송을 시작으로 청와대 청원, 논평·성명, 기자회견, 고발, 언론 기고, 토론회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에 대한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할 것을 촉구했다. 비록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에 대한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를 결의하지는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위임장 표 대결(Proxy Fight)’ 방식의 소액주주운동을 이어나갔다. 결국 국민연금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서의 치열한 논의 끝에 조양호 사내이사 연임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주주총회는 기업 경영을 독립적으로 감시·견제할 이사들을 선출하는 중요한 자리이지만, 지금까지 개인 주주들이 직접 주주권을 행사하는 사례는 극히 적었다. 다양한 생업에 종사하며, 국내외 거주 중인 개인 주주가 3월 중·하순, 수도권이라는 특정 기간·지역에 집중된 주주총회에 참석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전체 상장기업 중 전자투표시스템을 도입한 기업이 1,331개 사(전체의 60%)에 달하지만, 올해 전자투표제를 실제로 이용한 회사는 그중 25.45%인 564개 사에 불과하다. 현재 상법상 전자투표제가 의무사항이 아니니 일단 도입만 하고 이용은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또한, 올해 전자투표시스템으로 의결권을 행사한 주식이 전체 발행주식 수 대비 5.04%에 불과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전자투표제가 보편적 의결권 행사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더구나 삼성, 현대차 등 소위 10대 재벌 대기업 그룹의 전자투표제 도입 비율은 21.4%로 전체 평균보다도 훨씬 낮으며, 삼성·LG그룹의 경우 전자투표제 도입 상장회사가 전무한 현실이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이와 관련하여 지난 4월 11일, 10대 재벌 대기업에 전자투표제 도입 현황 및 향후 도입·이용 의향을 질의했으나, 올해 주주총회에서 7개 상장계열사가 모두 전자투표제를 도입·이용했다는 신세계그룹의 회신 외 다른 기업집단 측의 답변은 아직 받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전자투표제·서면투표제 의무화를 위한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여럿 상정되어 있으나 관련 논의는 사실상 멈춰있는 실정이다. 

 

대한항공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견제 없이 총수일가가 전근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회사의 가치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도 100%에 가까운 대기업 사외이사의 안건 찬성률➊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 기업의 이사들이 ‘거수기’ 역할을 벗어나 경영진 및 총수 일가에 대한 감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번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부결은 이사회 지배구조 개혁의 시작일 뿐이다. 참여연대는 독립적 구조로의 이사회 개편을 통한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나갈 것이다. 

 

 

<연합뉴스TV> “대기업 사외이사는 거수기…안건 찬성률 100% 육박” 2019. 3. 27.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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