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9년 09월 2019-09-01   1835

[떠나자] 섬의 미래와 굴업도

섬의 미래와
굴업도

 

월간 참여사회 2019년 9월호 (통권 268호)

Ⓒ정지인

지난 7월 보령에 있는 ‘호도’라는 작은 섬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일행 중에 그리스에서 여행업에 종사하는 분이 있었다. 잠시 국내에 들어왔다가 합류한 여행이었다.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레 그리스와 한국의 섬 이야기로 모아졌다. 두 나라는 섬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래 성장 동력인 관광의 중요성에 목소리를 높이다가 관광자원으로서 섬의 활용방안에 대해 대화가 이어진다. 그리스는 주요수입원이 관광업이다. 전 세계 여행자들이 몰려드는 그리스에서 섬은 여행의 화룡점정이다. 쪽빛 바다에 코발트색 하늘을 배경으로 화이트와 블루 톤의 건물들이 옹기종기 몰려있는 풍경은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국의 작은 섬들이 지닌 잠재력 

그리스의 섬들을 수시로 드나드는 그이에게 오랜만에 들른 한국의 작은 섬은 어떻게 보였을지 궁금했다. 다소 낙후된 숙소 여건이나 여행지 관리에 대해 아쉬움과 함께 섬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항구나 마을길, 마을건물 등을 섬 특성에 맞춰 일관성 있게 관리를 해나가면 좋겠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작은 섬들은 이제 막 관광을 고려하기 시작한 단계라 지금부터 방향을 잘 잡으면 성과를 내지 않겠냐는 기대와 함께.  

 

사람과 자연의 조화가 끈끈하고, 아기자기한 자연을 간직한 우리나라 섬은 그 자체로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경쟁력은 멋지고 화려한 것만이 아니니까. 다만 섬의 특성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주민들이 협력해 개성 넘치는 마을 이미지를 조성해 나가면 길이 열릴 것이다. 물론 정부의 적절한 정책지원과 개입도 필수이다. 한국의 섬들이 난개발도 방치도 아닌 적절한 방향으로, 여행자에게는 기쁨을 주는 여행지로, 주민에게는 생활에 보탬이 되는 길로 나가길 기대한다. 

 

우리나라에는 3,300개 넘는 섬이 있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섬이 많은 나라다. 우리에게 섬은 미래의 자원이자 넘어야 할 과제이다. 섬의 미래를 떠올릴 때 여러 가지 측면을 숙고하게 되는 곳, 생태적 가치와 수려한 풍광으로 꼭 한번 권하고 싶은 섬이 있다. 굴업도다. 천혜의 해안경관이 잘 보존된 굴업도는 핵폐기물처리장이 될 뻔한 위기를 넘기고, 대기업의 개발계획과 얽혀 개발도, 보존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이 멈춰있는 섬이다. 인천 옹진군 소재 덕적도 인근에 위치하며 주민은 10여 명 남짓의 아주 작은 섬이다. 사람이 엎드려 일하는 모습이라고 해서 굴업도掘業島란 이름이 붙었다. 

 

모두의 굴업도를 위하여 

중생대 백악기에 화산폭발로 생성된 굴업도는 오랜 세월 파도와 바다 안개가 빚어낸 기암괴석이 남아있다. 굴업도 토끼섬의 ‘해식와海蝕窪’는 바다 안개와 파도가 기암괴석을 활 모양으로 깊게 파낸 독특한 형태를 보여준다. 생태적 보존가치가 커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려는 시도가 추진 중이다. 지형적 영향으로 모래가 계속 밀려와 독특한 해안사구가 만들어졌으며, 긴 모래톱이 굴업도를 두 개의 섬으로 나누고 있다. 작은 섬인데도 서쪽은 야생사슴이 살아가는 광활한 초지언덕이 발달하고, 동쪽은 산세가 험한 연평산, 덕물산이 솟아있어 풍광이 다양하다.  

굴업도는 1920년대 민어 파시波市가 형성되던 어업전진기지로 사람이 북적였으나 점차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고 인구가 급격히 줄었다. 사람이 거의 없는 외진 곳으로 전락해 1995년 핵폐기물처리장 부지로 지정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다행히 인근에 활성단층이 확인되면서 취소되었지만 이후 굴업도는 모 대기업에서 골프장과 대규모 레저단지 개발계획을 발표하면서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선다. 이에 반대하는 주민과 환경단체, 기업 간의 오랜 갈등 끝에 결국 골프장 건설은 백지화된다. 하지만 그 후에도 섬은 방치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주민들은 소유권을 잃고 집만 점유하며 제대로 수리도 못한 채 민박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는 사이 굴업도는 생태적 가치와 수려한 경관이 아름아름 알려지기 시작한다. 여행자들은 변변한 화장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낙후한 민박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도 굴업도의 고즈넉함과 독특한 생태, 자연경관에 매료되었다. 근래에는 백패킹 붐까지 더해 넘쳐나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온다.

 

굴업도의 앞길은 어떻게 될까. 독특한 해안경관을 잘 보존한 모두의 공간으로 남을지, 관광레저단지 개발로 소수의 고급스러운 휴양지로 남을지, 제3의 대안으로 나아갈지 궁금하다. 다만 그 과정에 굴업도에 살고 있는 10여 명의 주민들과 아름다운 소사나무숲, 모래언덕과 기암괴석, 느다시언덕의 사슴과 슈크렁, 왕은점표범나비와 애기뿔소똥구리가 삶의 자리를 지키기를 바란다.  

 

굴업도는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덕적도를 경유해 들어갈 수 있다. 직항노선이 없어 배를 갈아타야 하며, 주말 외엔 덕적-굴업 노선이 하루 한 번이라 1박 2일 이상은 머물러야 한다. 섬에는 변변한 가게나 식당이 없고 민박만 서너 군데 있어 민박집에 숙식을 예약하고 출발하는 게 안전하다.  

 

월간 참여사회 2019년 9월호 (통권 268호) 

월간 참여사회 2019년 9월호 (통권 268호)

Ⓒ정지인

 

벼과의 여러해살이풀


글. 정지인 여행카페 운영자

전직 참여연대 간사. 지금은 여행카페 운영자가 되었다. 매이지 않을 만큼 조금 일하고 적게 버는 대신 자유가 많은 삶을 지향한다. 지친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여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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