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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5월
  • 2019.05.01
  • 656

칠레 발디비아

칠레를 반으로 접으면 나타나는 그곳

지진

1960년 칠레 대지진에도 살아남은 발디비아 숙소 Ⓒ김은덕, 백종민 

 

엄마의 품처럼 마음이 따뜻해지는 도시

한 달에 한 도시 살기를 시도한 남미의 첫 번째 도시는 칠레 발디비아였다. 칠레의 전통문화가 가장 잘 살아있는 곳으로 세상에서 가장 긴 나라, 칠레를 반으로 접었을 때 가운데에 위치한 도시다. 언젠가 여행을 많이 다녀본 지인이 발디비아로 신혼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신혼여행은 가장 가고 싶은 곳으로 선택하잖아. 발디비아는 도대체 어떤 곳일까?’

 

막상 와보니 발디비아는 특별할 것이 없는 도시다. 여행자가 할 일도 별로 없다. 하지만 엄마의 품처럼 머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곳에는 동네 전체를 흐르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강이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강변을 따라 느릿느릿 걸어본다. 그러다 강가에 누워 햇볕을 쬐어본다. 축복받은 자연,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부럽다. 차분하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이, 도시와 자연의 경계에 서 있는 이 도시가 좋다.

 

한국에서 사 먹던 체리, 포도 등의 원산지가 칠레였다는 사실이 기억난다. 발디비아에서 우리가 머물던 12월은 ‘숲속의 버터’ 아보카도가 제철이었다. 스시 롤에 씨알만큼 들어가는 재료인 아보카도는 멕시코와 남미가 원산지이다. 아보카도 1kg 가격은 1,400페소, 우리 돈으로 2,800원 정도. 샐러드에 삶은 계란 대신 넣어 먹거나 으깨서 빵에 바른다. 영양가가 풍부한 과일이지만 많이 먹으면 하루 종일 얼굴에 기름이 흐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다. 여기서는 씨 없고 당도 높은 포도도 맘껏 먹을 수 있다. 세계적인 와인 생산지로도 유명한 칠레는 지리적인 여건 상 병충해가 없고 당도가 높은 포도를 생산해 내는데 껍질이 얇고 과육이 단단한 것이 특징이다.

 

타지에서 보낸 조금 특별한 크리스마스 이브 

독일 이민자들이 모여 만든 발디비아는 세계사 시간에 배운 ‘칠레 대지진’의 진원지로 유명하다. 지금도 가끔씩 지진이 일어나곤 하는데 우리가 머무른 패트리샤 아줌마네 집만큼은 지진 걱정에서 예외였다. 1960년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다른 집들이 모두 무너졌을 때도 그녀의 집만큼은 살아남았을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무려 70년 동안 말이다.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발디비아의 숙소는 20곳이 채 안 되었다. 그중 저렴한 비용으로 한 달을 머물 곳을 찾아야 하니 선택의 폭이 더욱 좁아졌다. 패트리샤 아줌마의 집은 센트로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걸리는데 우리가 도착한 날은 마침 성탄절 전날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우리 가족이랑 저녁 먹지 않을래?”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비싼 물가와 사람들의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남미 여행지 중에서도 칠레는 비교적 인기가 없는 나라다. 그러나 유명 관광지가 아닌 칠레 현지인의 마을에 와서일까? 스페인 세비야가 ‘도시’, 터키 이스탄불이 ‘사람’으로 기억되는 곳이었다면, 발디비아는 ‘도시’와 ‘사람’ 둘 다 매력이 있었다. 

 

집에는 패트리샤와 그녀의 남편 호르끼, 아들 잉글라스가 함께 살고 있다. 영어라고는 ‘굿모닝’과 ‘땡큐’밖에 모르는 이 집 식구들과 스페인어라고는 ‘올라(Hola, 안녕하세요)’와 ‘그라시아스(Gracias, 감사합니다)’밖에 모르는 게스트가 만났다. 아줌마는 노트북을, 우리는 태블릿을 들고 다니며 번역 애플리케이션으로 겨우 생존 대화만 이어갔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잉글라스가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 단어만이라도 읊어주면 좋으련만 이 녀석, 공부를 ‘더럽게’ 안 하는가 보다. 친구들은 다가와서 못하는 영어라도 재잘거리는데 ‘예스’와 ‘노’라는 말도 명확하게 하지 못하고 번역기를 돌리기 일쑤다. 보다 못한 우리가 오늘부터 함께 영어 공부 좀 하자며 잉글라스를 의자에 앉혀 놓았다. 녀석, 웃으면서 그러겠다고는 하는데 머리에 잔뜩 힘을 주고는 결국 우리를 피해 여자 친구랑 놀러 나간다. 어째 우리가 스페인어를 배우는 게 빠를 거 같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마음은 통해요 

패트리샤 아줌마를 도와 크리스마스 음식을 만들고 그녀의 일가친척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벌써 밤 10시였다. 아줌마의 기도와 함께 소박하게 차려진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조용히 식사를 마쳤다. “펠리스 나비다!(Feliz Navidad, 메리크리스마스)” 

12시가 되자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패트리샤의 가족들은 우리를 꼭 안아준다. 그리고는 고작 이틀을 머문 우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발디비아에서 만든 전통 공예품과 맥주를 건네주었다.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르며 번역기를 찾는다. 그들의 눈을 바라본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뜨거운 남미 사람들의 마음이 눈빛으로 전해졌다. “아줌마, 아저씨. 크리스마스 이브가 이렇게 특별하고 소중한 날인 줄 몰랐어요. 저희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했어요. 죄송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글. 김은덕, 백종민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좋은 친구이자 부부다.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며, 서울에서 소비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한 달에 한 도시》 유럽편, 남미편, 아시아편《없어도 괜찮아》,《사랑한다면 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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