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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5월
  • 2019.05.01
  • 746

삶의 경이를 일깨우는
5월의 음악 〈슈베르트와 나무〉

 

푸른 숲의 위안이 그리워지는 5월, 아름다운 다큐멘터리 <슈베르트와 나무>(연출 양진용·김동현)를 함께 보고 싶다. EBS 다큐프라임 <한반도 대서사시-나무 3부작>의 마지막 편으로,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 씨와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김예지 씨가 만나서 나무를 새롭게 발견하고, 삶과 음악의 경이에 눈뜨는 이야기다. 

 


EBS 다큐프라임 <슈베르트와 나무>

이 동영상을 보고 싶다면? 

유튜브에서 슈베르트와 나무를 검색하세요

youtu.be/C3rrwfvvZvs  

 

나무의 생명력, 슈베르트 음악으로 재해석하다 

고규홍 씨는 17년 동안 나무를 연구하고 글을 써왔다. 하지만 그는 김예지 씨를 만나기 전까지는 나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앞을 볼 수 없는 김예지 씨에게 나무는 장애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고규홍 씨와의 나무 여행에서 모르는 나무와 모르는 꽃을 배워가며 그의 삶은 한층 아름다워졌다. 나무의 촉감, 향기, 생명력은 그의 마음에 들어와서 슈베르트 음악으로 꽃피었다.  

 

예지 씨는 새소리와 바람 소리로 나무의 위치를 알아낸다. 나무가 있는 곳은 온도가 다르다. 불어오는 바람 중간 어딘가에 바람이 약한 지점이 있는데, 바로 거기 나무가 있다. 향기와 촉감은 나무의 언어다. 나무는 흙냄새와 어우러진 향기로 다가온다. 목련은 한약 냄새로, 백송은 어릴 적 추억의 냄새로 다가온다. 포도나무, 단풍나무, 아까시나무의 줄기와 가지와 열매는 모두 개성 있는 촉감으로 말을 걸어온다. 김예지 씨의 손길에 능소화, 자귀나무는 부드러운 느낌으로 대답한다. 느티나무의 우툴두툴한 줄기를 만져보고, 가지의 끝자락이 드리운 나무의 영역을 알아본다. 미국 원산의 니사 나무는 참 친절한 나무 같다. 나무의 품 안으로 들어가니 더위가 싹 가시고 아늑하다. 두 팔로 안아 보니 딱 한 아름인데. 느티나무처럼 울퉁불퉁하지만 따뜻한 느낌이다.

 

슈베르트 연주회를 앞두고 있는 그에게 나무의 생명은 음악으로 되살아났다. 그가 연주한 슈베르트의 A장조 소나타는 놀랍도록 맑고 신선하다(유튜브 링크 39:18). 초기 자본주의가 낳은 혼탁하고 피곤한 경쟁사회에서 내면으로 망명한 슈베르트, 그가 일상에서 발견한 소박한 위안…. 언제나 곁에 있는 한 그루 나무처럼 친근한 이 아름다움을 우리는 왜 잊고 사는 것일까. 김예지 씨는 말한다.

 

“나무에게 뿌리가 있다면 제겐 피아노가 있어요. 단단한 나무처럼 살고 싶어요. 피아노 건반이 나무라는 사실이 신기해요. 평생 나무를 만지며 살아온 셈이니까요.” 

 

오래된 나무는 좋은 연주를 닮았다

고규홍 씨는 직접 촬영한 나무 사진을 슬라이드로 만들어서 김예지 씨의 연주회 배경 화면으로 선보였다. 사시사철 옷을 갈아입는 나무의 영상과 잘 어우러진 슈베르트 즉흥곡 F단조는 우울하지만 매혹적이었다(유튜브 링크 39:39). 고규홍 씨는 말한다. 

 

“우리는 눈으로 확실히 볼 수 있으니까 더 자세히 보려 하지 않죠. 오래 보지도 않아요. 한번 보면 끝인 거죠. 하지만 예지 씨는 만져보고 들어보고 향기도 맡아봅니다. 이런 성의 있는 과정을 통해 나무를 알아 가는 거죠. 저는 나무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예지 씨한테 배운) 이 감각을 가지고….”  

 

고규홍 씨는 힘들거나 지칠 때 800년 나이의 괴산 오가리 느티나무를 찾아오곤 한다. 이 나무 아래에 앉아 있으면 외할머니 치마폭에 안긴 듯한 편안함을 느끼고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치유된다. 김예지 씨도 이 나무를 찾았다.

 

“여기엔 냄새, 향기, 소리만으로는 설명하기 버거운 세월의 무게가 있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나무에서 위로를 받았을까요? 오래된 것, 커다란 것은 또 다른 영역 같아요. 오래된 나무는 좋은 연주를 닮았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니까요.”

 

참여사회 2019년 5월호

인생의 사계절과 나무의 사계절은 결국 같은 게 아닐까? 

 

나무의 사계절과 인생의 사계절을 따라 

그는 인간의 삶과 나무의 삶을 연관 지어서 슈베르트를 해석하고, 연습하고, 연주한다. 슈베르트의 즉흥곡 Bb장조 Op.142-3은 주제와 5개의 변주곡이다. 김예지 씨는 이 변주곡이 나무의 삶과 통한다고 설명한다(유튜브 링크 30:45). 계절 따라 변하는 나무의 느낌과 함께 잎사귀, 열매, 꽃의 변화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첫 변주는 봄의 새싹이 돋아나듯 작게 움직인다. 제2변주는 활기찬 기운이 대지를 녹색으로 물들이는 한여름이다. 제3변주는 무겁고 슬픈 느낌으로, 비바람이 몰아치듯 격정적이다. 제4변주는 조성이 바뀐다. 푸른 잎을 단풍으로 물들이는 나무처럼 싹 얼굴을 바꾸는 것이다. 제5변주는 눈이 펄펄 날리는 겨울로,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끝을 향해 달려간다. 마지막 부분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서 거울 앞에 서는 느낌으로 마무리한다. 

 

인생의 사계절과 나무의 사계절은 결국 같은 게 아닐까? 겨우내 앙상한 가지로 찬바람에 맞서던 니사 나무는 이 5월에 풍성한 잎사귀로 선선한 그늘을 드리우기 시작한다. 이 나무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여름의 더위를 막아 줄 것이다. 니사 나무는 지금 몇 번째 변주곡을 연주하고 있는 걸까? 우리는 인생의 몇 번째 변주곡을 만들어 가고 있는 걸까?

 


글.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저서 『클래식, 마음을 어루만지다』, 『클래식 400년의 산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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