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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06월
  • 2020.06.01
  • 541

기점·소악도 
순례자의 길 

 

월간참여사회 2020년 6월호 (통권 276호)

전남 신안군 기점·소악도 순례자의 길. 멀리 작은 예배당(베드로의 집)이 보인다 ©정지인

 

대면접촉의 소중함을 실감하는 때다. 학교에 가고 직장에 출근하는 것, 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대화를 하는 것이 피해야 할 위험 행동이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사회적 존재인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피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에 놓이게 될지 몰랐다. 신종 전염병이 불러온 변화를 겪으며 일상의 가치들을 다시 깨닫고 있다. 온라인으로 안전하고 효율적인 비대면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앞으로의 추세라지만 그렇다고 대면접촉의 가치와 의미가 사라질 수는 없을 텐데. 그 경계에서 조금 혼란스럽기도 하다.

 

이런 시기에 다녀온 노둣길 여행은 마음에 힘이 되었다. 최근 방문한 전남 신안의 기점·소악도 이야기다. 노둣길은 갯벌에 돌을 놓아 만든 길이다. 섬과 섬을 잇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 노둣길을 걸으며 ‘길이 통한다는 것’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길은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이다. 살기 위해서 길은 이어져야 한다. 이런 작은 섬에 길이 끊긴다면 고립무원으로 생존의 위협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길이 막힐 때가 있다. 지금 세계가 신종 전염병으로 어쩔 수 없이 서로를 향한 통로를 닫아야 하는 것처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길을 막았지만 대가도 만만치 않다. 사회 전체가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감당하고 있다. 

 

노둣길을 걸으며 희망을 발견하다

힘을 내야 할 때 걷는 섬마을 노둣길은 잔잔한 위로로 다가왔다. 매일같이 하루에 두 번 밀물과 썰물을 겪으며 길이 열리고 또 막히는 노둣길에 기대어 살아가는 섬마을 사람들을 보면서 용기가 났다. 담담히 견디다 보면 앞길이 열리겠구나 싶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순례자의 길’이란 이름이 제법 어울린다 싶었다. 길에서 위로와 희망을 발견하는 반짝반짝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 기점·소악도 순례자의 섬을 소개한다. 

 

기점·소악도는 목포나 무안에서 배를 타고 30분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신안군 다도해에 자리 잡은 작은 섬이다. 여러 개의 섬으로 썰물 때면 드러나는 노둣길이 하나의 섬처럼 이어주는 곳이다. 최근 대기점도와 기점도, 소악도, 진섬이 노둣길로 이어지는 12km의 길에 순례길이 만들어졌다. 

 

길을 이어 걷는 중간에는 예수의 제자인 십이사도의 이름을 딴 열두 개의 예배당도 만날 수 있다. 이 일대가 개신교 최초의 여성 순교자이자 ‘섬 선교의 어머니’로 불리는 문준경 전도사의 영향이 깊은 곳이기는 하지만 열두 개의 예배당은 종교적인 건물로 국한되기보다는 섬을 걷는 순례자들에게 명상과 기도처, 쉼터가 되는 열린 공간에 가깝다. 이 길을 만든 마을주민의 바람이기도 하다. 

 

공공건축 예술이 더해진 십이사도 예배당

여러 명의 국내·외 건축예술가들이 합류해 만들어낸 개성 넘치고 아름다운 공공건축 미술 작품은 순례길의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아무도 찾지 않는 조용한 섬, 외지인들을 끌어들일 만한 변변한 것이 없는 기점·소악도 주민들이 섬의 자랑인 노둣길을 걷는 순례길을 구상하고 여기에 예술가들이 결합해 십이사도의 예배당이라는 건축예술을 더한 이 프로젝트는 2018년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 섬마을 가꾸기 사업으로 일궈낸 성과이다.

 

노둣길과 함께 순례길의 핵심 거점이 되는 예배당 건축 작품은 작고 소박한 규모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두 평이 채 안 되는 작은 건물은 야트막한 산과 바다, 갯벌과 노둣길에 거슬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주위의 풍경과 어우러지는 건축물이 주는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이다. 건축 디자인도 건물마다 개성이 넘친다. 건축물마다 열두 사도의 이름이 붙어있지만 건축가가 건물에 붙인 건강의 집, 생각하는 집, 그리움의 집, 인연의 집과 같은 별칭이 더 다가온다. 작가의 건축 의도를 헤아리며 감상의 재미를 더할 수 있고, 순례길을 걸으며 사색해 보기도 좋았다.

 

여행
1 작은 예배당에서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면서 나는 어떤 창을 내고, 어디를 보고 있나 돌아보게 된다
2 안드레아의 집
3 필립의 집 

 

순레자가 되어 걸어온 길을 돌아보다

순례길에 권하는 것은 작은 예배당에 들어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아름답게 건축된 아늑하고 고요한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느낌이 편안했다. 예배당 안에는 어느 건물이나 밖으로 난 작은 창이 있다. 작은 창을 통해 바라보는 게 신선했다. 바다를 향해 난 창에는 바다가 보이고, 노둣길을 향해 난 창으론 노둣길이 눈에 들어왔다. 사별한 아내를 묻은 무덤이 보이는 동네 할아버지의 그리움이 묻어나는 창도 있다. 작은 예배당에서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면서 나는 어떤 창을 내고, 어디를 보고 있나 돌아보게도 되었다. 정말 순례자가 된 기분이었다. 소박하고 작은 공간에서 고요한 내면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행, 이런 게 순례 여행이지 싶었다. 

 

팍팍한 일상을 살아가며 저 멀리 이국의 산티아고를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하루 이틀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기점·소악도의 순례자의 섬을 권한다. 혼자 가도 위험하지 않고 길도 험하지 않다. 섬에는 마을사무국에서 운영하는 유일한 식당과 게스트하우스가 있으며, 섬 누리집에는 교통편과 노둣길 물때 등 여행에 필요한 정보가 잘 정리돼 있어 다녀오기 어렵지 않다. 

 


글·사진. 정지인 여행카페 운영자

희망과 용기를 주는 여행, 성장하는 여행, 모두에게 평등한 여행을 꿈꾸는 여행카페 운영자입니다. 여행으로 바꿔 가는 세상, 우리 모두의 행복한 일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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