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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06월
  • 2020.06.01
  • 606

기획좌담

청소년 시민, 말하다   

 

만 18세 선거권이 도입된 첫 선거가 치러진 지 두 달여, 10대 유권자 115만 명의 표는 한국 정치와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를 남겼을까? 지난 5월 19일, 새로운 의제와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 중인 10대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총선 후일담을 나눴다. 

※ 이번 좌담은 코로나19 감염 예방 수칙 준수를 위해 마스크를 벗는 대신 서로 안전한 거리를 두고 진행됐습니다.

 

사회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패널 김서경 청소년기후행동 조직코디네이터

 서한울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강원연대 대표

 최유경 청소년페미니스트네크워크 위티 공동대표

정리 이한나 미디어홍보팀 간사 

 

희원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 좌담의 사회를 맡은 청년참여연대 조희원이라고 해요. 청년이 즐겁고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청년의 시선에서 한국 사회를 바라보고 얘기 나누고 직접행동 캠페인을 실행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서경 안녕하세요, 저는 청소년기후행동에서 활동하는 김서경이고, 기후위기 당사자인 청소년으로서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않는 정부나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대응을 촉구하는 여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울 서한울입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강원연대에서 활동했었고, 소속 단체는 따로 없는데 강원도 원주에 살면서 지역에서 학생인권 관련 운동과 그밖에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다큐멘터리 촬영이나 글 쓰는 활동도 같이 하고 있어요. 

 

유경 청소년페미니스트네트워크 위티 공동대표 최유경입니다. 위티는 작년 6월 창립한 단체이고요, 강남역살인사건 이후 여성청소년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2016년 소모임에서 출발했고, 스쿨미투 운동을 거치면서 정식 창립했어요. 여성 청소년에 대한 복합적인 차별을 이야기하고 목소리를 모아내는 네트워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위티가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에도 들어가 있고 제가 만 18세 당사자여서 참정권 운동도 겸하고 있어요. 

 

월간참여사회 2020년 6월호 (통권 276호)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희원 듣고 보니 세 분의 활동이 모두 이어져 있었네요.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요즘 코로나19 상황에 일상은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학교 수업도 거의 못 하고 있죠?

 

서경 저는 내일 가요. 고3은 내일부터 개학이에요.  

 

한울 저는 올해 졸업해서. 대학교에 가서 강의 들을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첫 수업을 사이버 강의로 듣게 됐어요. 원래 2월까지만 놀려고 했는데 의도치 않게 계속 놀게 돼서.(웃음) 

 

유경 전 위티에서 상근을 하고 있는데요, 큰 피해는 아니지만 (예정했던) 사업이 많이 축소하거나 변경돼서요. 매달 하던 회원 소모임도 다 취소됐고요. 실제로 위험한 것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자제하는 분위기다 보니까, 젊은 애들이 안 좋은 시국에도 돌아다닌다는 말 들을까 봐 (조심하고 있어요.) 

 

서경 저희도 비슷해요. 올해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예정된 기후온실가스 감축 관련 회의가 정말 많았는데 다 취소돼서 (의제가) 점점 수면 아래로 묻히고, 지금 기후위기 얘기를 꺼내면 코로나 상황에 무슨 기후위기냐, 너희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거다, 그런 시선도 있다 보니 활동에 제약이 많이 걸린 거 같아요. 

 

 

50대 아저씨가 50분 동안 나오는 선거교육 영상

#첫투표 #18세선거권 #모의선거교육 #위성정당 

 

희원 그렇군요. 우리는 서로 만나서 이야기하는 자체가 활동인데, 다들 조금씩 코로나19 영향을 받고 계시는 듯하네요. 그럼 본격적으로 얘기를 시작해볼까요. 세 분 모두 이번 총선이 첫 투표였죠? 첫 투표에 참여한 소감을 먼저 이야기 해주신다면요. 

 

서경 작년 11월이었나요? (공직선거법 개정안) 통과되고 나서 정확히 일주일 뒤에 저희 학교 앞에 어떤 정당의 플래카드가 걸렸어요. 근데 내용이 저희 학교에 야자실을 만들어주겠다는 거예요. 

 

희원 그건 대체 누굴 위한 공약이죠?(웃음)

 

서경 그러니까요. 거기서 1차 혼란이 왔는데 되게 발 빠르시다, 근데 발만 빠르시다….(웃음) 저희 학교는 야자를 교실이 아니라 야자실에서 신청을 따로 받아서 하는데 신청자가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딱히 원하는 사람도 없고, 넓혀야 할 필요도 모르겠고, 공간 확보도 안 되는데 갑자기 야자실을 만들어준다고 하니까 왜 저런 공약을 내걸었나 싶었죠. 약간 핀트가 어긋난 생각들을 많이 하시는구나, 학생들이면 당연히 이런 걸 해주면 좋아하겠지, 라고 하는.

 

월간참여사회 2020년 6월호 (통권 276호)

김서경 청소년기후행동 조직코디네이터

 

한울 (후보자들이) 공부를 좀 하셔야 할 거 같아요.(웃음) 저는 제가 참여했던 프로젝트 제목이 ‘투표하자, 십팔!’이에요. 만 18세들이 첫 투표를 하는데 선거정보나 지역구 후보자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을 갖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까, 청소년 관점에서 직접 총선 후보를 인터뷰하고 청소년 정책은 뭘 가지고 나왔는지 검증해보는 활동이었는데요, 하면서 느낀 건 많은 후보자들이 청소년 정책을 이야기하기는커녕 꼰대 같은 발언만 계속 하신다는 거예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기 옛날 얘기를 꺼내신다거나.(웃음) 인터뷰 마지막에 공통 질문으로 ‘이번에 새로 유입된 (청소년) 유권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질문했는데 “열심히 할 테니 뽑아주세요”가 아니라 “젊을 때 열심히 살아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희원 (청소년을) 유권자로 대하는 게 아니라 계속 어린 학생으로 보는 태도였네요? 그동안 한 번도 청소년을 유권자로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 필요한 게 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엔 선거연령도 내려갔지만 준연동형비례대표제로 바뀐 부분도 있는데, 혹시 여기에 대한 의견도 있으신가요. 

 

유경 결과적으로 ‘준’이 붙어서 소수정당이 진입하기보단 기존 거대정당들이 더 많은 표를 가져가게 됐는데요. ‘준연동형비례대표제’라는 너무 길고 어려운 이름, 너무 많은 정당, 위성정당은 또 뭔지 투표 전부터 너무 헷갈리는 거예요. 더불어시민당과 더불어민주당은 같은 당인지 아닌지도 너무 헷갈리고요. 그래서 저는 비례대표제를 떠나서 정치가 좀 더 쉬워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선거가) 엄숙하고 무겁고 어른들만 논할 수 있는 정상성 안에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청소년이나 장애인, 노약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이해하기 쉬운 정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준연동형비례대표제, 위성정당 이런 말도 좀 더 쉬운 언어로 표현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희원 저도 헷갈리고 어려워서 친구, 가족끼리 모여서 공부했던 거 같아요. 그래도 저는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니까 정치 관련 정보를 많이 접하지만 보통의 청소년들은 접할 기회가 부족하잖아요. 이번에 투표해보면서 이런 교육이 더 필요하지 않나, 느끼신 부분이 있다면요? 

 

서경 저희는 온라인 개학을 했으니까 담임 쌤들이 단톡방으로 선거 일주일 전에 영상 링크를 보내주셨어요. 만 18세 이상은 영상 보고 공부하고 투표하라고요. 엄청 여러 개를 띄워주셨거든요. 교육부에서 만든 것도 있고, 선관위에서 만든 것도 있고. 보기는 다 봤는데…. 끝까지 못 봤어요.(웃음) 유튜브에 들어가서 2배속으로 봐도 일단 재미가 없고 (강사가) 계속 “청소년 여러분 투표하세요, 올바른 표를 행사하세요” 라고 말하는데 정작 올바른 표가 뭔지에 대해서는 안 나와요. 내 표가 소중하다고 하는데, 왜 소중한지도 안 나오고요. 

 

유경 저는 총선 전에 인터뷰를 하나 했는데요, 선관위가 만든 선거교육 영상을 보고 피드백을 하는 거였어요. 근데 어떤 50대 아저씨가 나와서 50분 동안 계속 얘기하는 거예요. ‘친구들’ 막 이런 단어 쓰고. 나름 청소년 눈높이 맞추려고 넣은 만화에는 “무지한 청소년 유권자들에게 깨우침을 줘야겠어” 이런 문장이 나오고요. 선관위 인식이 그 정도인데 어떻게 청소년들이 제대로 투표에 참여하길 바라는 건지 의문이었고, 50분짜리 영상에 50대 아저씨가 나와서 혼자 계속 말하는 건, 정말 청소년이 아니라 누구라도 안 볼 거 같거든요. 그래서 청소년 유권자가 생기니까 급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꼭 청소년이 아니라 첫 투표하는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정당공약 살피는 법이나 (투표로)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얘기하지 않고 왜 투표하는 방법만 가르쳐주는지 의문이 들었죠. 

 

한울 저는 교육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는데, 이번 선거는 유독 투표 방법이나 투표를 해야 한다는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문제는 학교에서 현실정치에 대해 얘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안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선거교육을 하더라도 모의나 가상으로 할 게 아니라, 진짜 이번 선거에 나온 후보자나 정책을 가지고 토론하고 투표해볼 기회가 있어야 하는데, 너무 ‘교실의 정치화’를 우려하면서 현실정치가 학교 안으로 들어오는 거에 걱정을 하시니까. 그래서 교육을 해도 의미 없는 교육이 돼버린 거 같고요. 근본적으로는 청소년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에 대한 안 좋은 인식? 공부나 입시, 대학이 제일 우선시 되고 ‘그럴 시간에 문제집이나 한 권 더 풀지’ 이런 생각 자체가 그런 교육이 도입될 수 없도록 만드는 것 같아서, 함께 바뀌어야 할 거 같아요. 

 

월간참여사회 2020년 6월호 (통권 276호)

 

 

기울어진 운동장, 젠더갈등 혹은 여성혐오

#N번방 #여성혐오 #혜화역시위 #스쿨미투

 

희원 이번엔 페미니즘이나 젠더 관련한 얘기를 해보려고 해요. 최근 사회적 이슈였던 N번방 얘기부터 해볼까요? 저는 놀랐던 게 가해자 중에 청소년이나 20대 초반이 많다는 점이 예상 밖이었어요. 진짜 여러분들 또래 중에 있는 거잖아요. 어때요? 

 

한울 저는 남고 다녔거든요. 생각해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게, 어릴 때부터 단톡방이나 페메방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불법촬영인데 몰카 같은 걸 찍고 보내고 하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고 일상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현실 반영으로 이런 일이 터진 것 같고요. 저부터도 주변 10대 남자애들? 특히 남자들만 모여 있는 공간에서는 여자 선생님을 대상으로 하는 성희롱이나 단체카톡방, 대화방에서의 그런 것들이 많이 봤어요. 그래서 이번 사건은 아주 일부만 보여줬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서경 저는 N번방 사건을 보고 제가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왔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학교도 저희는 공학이지만 남녀분반이라서 진짜 이런 걸 모르고 살았거든요, 이게 실제로 가능한 건가 했는데 댓글이나 트위터 멘션들이 ‘솔직히 저거 다 있는 일 아니야?’라고 하니까 충격이었죠.

 

한울 그래도 저는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유명한 사람들이 잡혀가고 어떤 (성차별이나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자체가 기사화되고 논란이 되니까 분명히 조심하게 되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생기고 있다랄까요. 그전까지는 그게 문제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면 요즘은 ”그런 말 하면 안 된다” 이런 분위기라도 생기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유경 저는 그런 분위기가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기보다 오히려 퇴보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스쿨미투 이후 학교에서 학생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교사들이 “요즘에 그런 말 하면 안 돼. 그러다 미투 당해”, “요즘엔 학생들 무서워서 장난도 못 치겠어” 이런 말이거든요. 학교 안의 위계라든가 여성혐오 같은,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동안의 폭력을 묵인하는 방식으로 계속 이어나간다고 생각해서 우려스러운 부분이고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왜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지?’라는 질문하고 상호간의 토론이나 이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희원 두 분 말씀이 다 공감이 돼요. 어쨌든 성이 다르기 때문에 삶에서의 경험이 달라서 감수성 차이가 생기는 거 같아요. 요즘 젠더감수성이 중요하다, 이런 얘기 많이 하는데 혹시 감수성이 달라서 의견이 갈리거나 다퉈본 경험 있으신가요?

 

유경 전 공학을 다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등은 늘 있었던 거 같아요. 저는 학교 안에서 늘 기가 센 여자애 이미지로 호명됐는데 그게 오랫동안 콤플렉스였거든요. 근데 어느 순간 느꼈던 건 반에 저랑 비슷한 성격의 남성 친구한테는 기가 세다고 안 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의문이 시작됐던 거 같아요. 저는 지금까지도 남성한테 기가 세다고 말하는 걸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거든요. 기가 세다는 말이 부정적으로 쓰이는 거잖아요. 말을 많이 하고 자기주장이 세고 목소리가 크고, 이런 것들은 남성의 것이고 여성은 하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남성친구들과 많이 다투고 어느 순간 말을 잘 안 하게 된 거 같아요.

 

한울 고등학교 2학년 때 윤리 시간에 성평등 이런 걸 배우는데 제가 페미니즘 얘기를 꺼내니까 순간 우리 반에 제 편이 한 명도 없고 다 적이 되는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처음엔 친구들이 물어보면 답변도 해주고 대화를 나누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계속 얘기해봐야 안 바뀐다는 느낌? 그런 게 되게 강해서 그 이후로 학교에서 페미니즘 얘기를 안 하게 된 거 같아요. 특히 요즘 느끼는 건, 군대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니까 (친구들이) ‘군대를 가기 싫다’에서 어떻게 이어지냐면 ‘근데 왜 여자는 왜 안 가냐’로 이어져요. 뭔가 거기에 대한 분노가 큰가 봐요. 저는 원래 말할 때 눈치를 안 보는 성격인데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눈치를 보게 됐어요. (한국 사회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제 자체가 다른 거 같아요. 

 

월간참여사회 2020년 6월호 (통권 276호)

서한울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강원연대 대표

 

유경 ‘기울어진 운동장’을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50:50’이 평등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내가 군대 가면 너도 군대 가야지, 그래야 평등한 거야. 근데 여자가 군대는 안 가면서 권리를 주장해? 그건 역차별이지. 남성은 2년 동안 군대 가느라 몸도 상하고 폭력문화에 노출되는데 너희는 2년 동안 편하게 학교 다니잖아’ 이런 거죠.

 

희원 페미니즘과 관련해 또 논란이 됐던 게 혜화역시위가 있었잖아요. ‘불편한 용기’라는 익명의 래디컬페미니스트들, 생물학적 여성들로 조직된 팀이 혜화역에서 했던 불법촬영 근절 시위였는데요. 

 

유경 저는 개인적으로 페미니즘 시위에 처음 참여한 게 혜화역시위거든요. 거기 가면 약간 분노가 동력이 되는 시위라는 게 느껴져요. 그래서 내가 어떤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이 명확하게 들면서도, 동시에 페미니즘이 정말 여성만 챙기는 건가? 하는 의문도 들었어요. 이 시위가 논란이 됐던 건 시위 안내문에 성별, 생물학적 여성만 출입 가능하고, 그 옆에 트랜스젠더를 여장 남자의 모습으로 희화화해서 표현한 게 문제였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그런 부분에서는 사실 동의하기 어려웠어요. 왜냐면 페미니즘은 여성뿐 아니라 많은 소수자들과 연결되어 있고, 이를테면 저는 청소년이 평등해지지 않으면 여성도 평등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배제하는 속성이 비슷하기 때문에. 실제로 여성과 청소년에게 미성숙하다, 혹은 가정에서 남성가장에게 종속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하니까요. 

 

서경 맞아요. 주체적이어선 안 되고 독립적이어선 안 되고 스스로 뭔가 결정해서는 안 되는. 저는 학교에서 한 친구가 사회 시간에 저 사례를 발표한 적이 있어요. 자신이 관심 있는 사회 문제를 발표하는 거였는데 발표가 끝나고 갑자기 선생님이, 이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봐, 하시는 거예요. 당연히 아무도 손을 안 들잖아요. (선생님이) 정확히 뭘 물어보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시위가 합법적으로 정당하냐고 묻는 거라면 집회신고를 했으면 당연히 정당한 것일 테고, 근데 내용이 정당한지를 묻는다면 하나의 통일된 의견을 담고 있는 시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걸 판단할 수 없는데, 왜 물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한울 저도 처음 페미니즘을 접하게 된 계기가 혜화역시위인데요, 거기 센 문구들이나 피켓이 많았잖아요. 그걸 인사이트나 위키트리 같은 데서 보고 처음엔 거부감이나 부담감을 갖고 접했던 거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생각이 좀 다를 수도 있지만 저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대화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무슨 말만 하면 ‘거른다’ 이런 표현을 쓰는데 그렇게 모든 걸 ‘거르는’ 순간 대화는 거기서 끝나버리는 거잖아요. 물론 대화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피곤하고 에너지만 드는 일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계속 얘기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왜냐면 젠더갈등이라고 하는 게 확실히 양극화되고 있다고 느끼거든요. 20대 남성들 인터뷰를 보면 서로를 전혀 이해 못 하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고, 점점 중간지점에 대한 얘기는 안 하고 분노만 남게 되는 느낌? 하지만 결국, 페미니즘도 같이 가야 하는 거잖아요. 

 

유경 저는 ‘젠더갈등’이라는 말이 명확히 잘못된 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허지웅 씨가 최근 SNS에 N번방이 젠더갈등의 산물이라고 말했거든요. 서로 평등하지 않은 관계에서 일어나는 다툼을 ‘갈등’이라고 표현하면 그것은 내부의 권력구조를 퉁쳐버리는 거잖아요. 예를 들어 백인과 흑인,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사이의 권력투쟁을 갈등이라고 표현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젠더갈등’ 대신 ‘여성혐오’라는 말을 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한울 저는 (그 말이) 왜 부적절한지 잘 이해를 못 했어요. 친구끼리 동등한 입장에서 싸우는 것도 갈등이라고 부르잖아요. 갈등을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희원 ‘젠더갈등’에서 갈등이 꼭 권력구조를 전제로 하는 것뿐 아니라 사회문제나 사회현상으로서의 갈등으로 볼 수 있지 않느냐, 이런 말씀이신 거죠? 

 

한울 저 지금 갈등에 꽂혀서 아무 생각이 안 나요. 벗어날게요.(웃음)

 

 

학교에서 배우는 기후위기, 여전히 북극곰에 멈춰있어

#기후위기 #그레타툰베리 #결석시위

 

희원 마지막으로 기후위기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먼저 그레타 툰베리는 세계적인 청소년 활동가인데, 같은 청소년 활동가 입장에서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서경 툰베리가 제일 화제성을 얻었을 때 따라오는 수식어가 ‘고작 16세 소녀’라는 거였어요. 우리나라가 특히 가장 심했고요. 선생님들도 ‘16세’라는 걸 엄청 강조해서 말씀하시니까 그렇게까지 중요한 지점인가 싶었죠. 왜냐면 그로 인해서 그레타 툰베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들은 하나도 전달되지 않거든요. 무작정 나이에만 주목하는 방식으로 소비되니까 그 이상의 것으로 나아가지 못해요. 하지만 청소년기후행동에게 있어서 툰베리는 기후위기 결석시위라는 사례를 만들어줬고, 전 세계적으로 번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해졌으니까 저희한테는 동료겠죠?(웃음)

 

유경 저는 대안학교 다니면서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집회 참여가 너무 어려웠어요. 교사나 어른들이 너네가 학교 가기 싫어서 (집회) 핑계 댄다고 하는 거예요. 근데 미묘한 게, 저는 그동안 페미니즘 운동 한다고 했을 때 주변 어른들한테 한 번도 환영받은 적 없거든요? 근데 기후위기, 하면 청소년 운동 중에서도 어른들이 가장 기특해 하고 좋아하세요. 왜냐면 그건 자기가 가진 권력을 굳이 깨뜨리지 않아도 되거든요. 가장 보편적인 의제이기도 하고요.

 

월간참여사회 2020년 6월호 (통권 276호)

최유경 청소년페미니스트네크워크 위티 공동대표

 

서경 그래서 학교에서도 기후위기 운동을 하는 건 괜찮지만, 결석시위를 나간다고 하면 교칙에 어긋나거나 교권을 침해한다면서 제재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네가 나랑 싸우지 않으면 괜찮은데, 네 행위가 학교와 싸우는 행위가 되면 안 된다’고 하는 거죠. 우리가 싸우고자 하는 대상은 학교가 아닌데 학교를 적으로 돌리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거죠. 

 

한울 저는 기후위기와 관련해서 학교 교육이 너무 현실을 못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번은 지리 시간에 수업을 듣다가 관련 내용이 나와서 제가 ‘기후위기’라고 말하니까 선생님이 ‘기후위기’가 뭐냐고, ‘기후변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학교 선생님이고, 그 분야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일 텐데 정말 계속해서 배우지 않으면 따라가지 못하는구나 싶었죠. 아직도 학교에서 배우는 환경은 북극곰에 멈춰있고, 그래서 교육이 빨리 바뀌고 뒤따라가야 할 거 같아요. 되게 시급한 문제잖아요. 

 

희원 중요한 지점이네요. 어른들은 기후위기 운동이 뭔가 정치적인 거에서 벗어난 거 같고 그러니까 더 기특해하지만 사실 모든 게 다 정치적인 거잖아요. 정치로 해결해야 하고요, 마지막으로 나에게 정치란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하면서 마무리해보면 어떨까요. 

 

월간참여사회 2020년 6월호 (통권 276호)

 

서경 의자뺏기는 결국 최후에 한 사람만 남게 되는 게임이잖아요. 기후위기 운동을 하다보면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게 되는데요, 왜냐면 쟤네가 어떤 정치색을 띤다, 어느 정당의 배후설도 많이 돌고 그러다보면 저쪽 편의 사람들은 돌아서게 되니까 저희한테 마이너스가 되더라고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정치할 수 있다고 배웠지만 ‘청소년은 정치적이어선 안 돼’하면서 저희가 정치적 행보를 하는 거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시거든요. 자기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대변인을 필요로 하는 게 정치라면, 그 또한 기득권의 산물이지 않을까 해서 의자뺏기 게임이 생각났어요. 

 

한울 저는 이걸 쓰면서 교실에서 친구들이랑 대화했던 장면이 떠올랐어요. 학교에 불만이 있거나 선생님 말이 이상하다고 느낄 때 다 같이 모여서 뒷담화처럼 얘기하곤 했어요. 그 과정이 저는 정치였다고 생각해요. 불편한 거나 불만에 대해 얘기해보고 생각해보는 과정. 물론 불만을 투덜투덜 공유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선생님한테 누가 가서 얘기하기로 결정한다든가, 학교에 건의를 해볼 수 있으면 이상적이겠지만, 일상에서 불편함에 대해 얘기해보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해요. 

 

유경 이렇게 쓴 이유는 정치가 지금까지 남성 어른들, 청와대, 국회에만 있는 것처럼 여겨지다보니까 정치에 관심 가지지 않게 되고 무겁고 재미없다고 생각하게 된 거 같아요. 하지만 내 일상을 바꿀 수 있는 사소하고 쉬운 것, 내 하루에 있는 것, 오늘처럼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도 정치의 일종이잖아요. 이번에 18세 선거권 도입 이후 정치하는 청소년에 관심이 높아졌는데 기특하거나 유별난 게 아니라 정치하는 청소년의 존재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 

 

 

>> [목차] 참여사회 2020년 6월호 (통권 2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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