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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06월
  • 2020.06.01
  • 956

어느 임시 계약직 노인장 이야기 

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저자

 

월간참여사회 2020년 6월호 (통권 276호)

광주 모처, 조정진 씨의 일터 

 

『임계장 이야기』를 펴낸 비정규직 노동자 조정진 씨(63)를 만난 지난 5월 13일은 한 경비노동자 죽음에 사회적 공분이 정점에 달했을 때였다. 경비원 최희석 씨는 지난 4월 21일, 주차 관리를 위해 자신의 차를 밀었다는 이유로 아파트 주민 A씨에게 폭행을 당했고 이후에도 CCTV 없는 경비원 초소 화장실에서 코뼈가 부러질 때까지 얻어맞았다. 최 씨는 “제 결백 발끼세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 사회가 곳곳의 ‘임시 계약직 노인장’(임계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우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였다. 

 

조 씨는 최 씨의 죽음에 자책했다. 조 씨는 공기업 정규직으로 38년 일한 후 2016년 퇴사했다. 막내아들의 전문대학원 진학 의지에 그는 다시 신발 끈을 졸라매야 했고 이후 버스터미널 보안 요원, 아파트 및 주상복합건물 경비원, 빌딩 주차관리원 등 ‘시급 일터’에서 노동을 이어가고 있다. 3년 동안 네 번이나 해고 ‘당한’ 그는 “현재 고령자들이 하고 있는 경비, 청소, 주차관리 직종은 노인만이 할 수 있는 더럽고 힘든 영역이다. 이는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대신해 줄 수도 없고 외국인으로 대체하기도 어려운 직종”이라며 “모두 노후 대비를 잘해서 ‘이런 일’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 세상을 깨끗이 하는 일을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세상의 배출기능이 멈추게 될 것이니까”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멸시받고, 믿을 수 없는 노동 환경에서 들짐승과 별반 다르지 않게 일하고 있다. 관심 갖는 이도 없고 개선 전망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임계장 이야기』를 쓴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일한 곳 중에 가장 깨끗하다”는 그의 일터인 주상복합건물 지하실은 각종 소독약과 걸레, 폐지 더미가 널브러져 있었다. 일터와 사무 및 휴게 공간은 구분되지 않았다. 기계음으로 바로 옆 대화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 어떤 인터뷰 때와 달리 인터뷰이 옆에 바짝 붙어 그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월간참여사회 2020년 6월호 (통권 276호)

조정진 씨가 자필로 기록한 노동일지. 수첩마다 메모가 빼곡하다  

 

- 최희석 씨 죽음에 “이제 제 책은 쓸모가 없어졌다”고 말했더라. 어떤 의미인가? 

내가 겪었던 갑질, 보고 들었던 이야기 모두를 책에 다 쓸까도 했다. 그 경우 내가 근무했던 아파트 주민 전체를 ‘나쁜 사람들’로 매도하는 결과가 될까 우려했다. ‘아파트 갑질’은 극소수다. 다만 그들은 한 번 갑질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한다. 극소수 주민 문제를 적나라하게 기록하면 절대다수 주민이 매도되거나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최희석 씨 소식을 듣고 후회를 많이 했다. 비난을 받더라도 더 적나라한 실상을 담았어야 했다는….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 책을 쓴 것인데 정말 쓸모가 없어졌다.

 

- 최 씨 죽음에 “사회적 타살”이라는 표현을 썼다. 

갑질이 부당하다는 것은 사람들이 다 안다. 문제는 위법이고 불법이라는 인식이 없다는 점이다. 사회적 인식이 안이하니까 그 폭력배(최 씨를 폭행한 주민 A씨)도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 만행을 저질렀다. 가해자만 처벌하고 끝나면 되풀이된다. 최 씨 유서에 ‘결백을 밝혀달라’는 내용이 있는데….(눈물) 최희석 씨는 정말 선하고 착한 분이었다고 한다. 아무 보호도 받지 못하고, 사회적 안전망도 없었고…. 그는 죽음을 생각하며 20여 일 고통 속에서 살았다. 최 씨 생각에 밤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려고 한다. 언론 인터뷰도 마찬가지 이유다.

 

- 최 씨 죽음에 주민을 포함한 많은 분들이 연대의 뜻을 밝혔다. 

최 씨가 근무한 아파트 주민도 피해자다. ‘경비 할아버지가 우리 아파트 어떤 아저씨에게 얻어맞아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는 그곳 아이들 마음은 어떻겠나. 아이들이 느끼는 충격을 우리는 짐작하기 어렵다. 폭력배 한 사람 악행으로 아파트 전체가 피해를 봤다. 나도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할 때 극단적 생각을 해본 적 있다. 삶의 의지가 무너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다 사람이라서다. 누군가 내 멱살을 잡고 때리면, 삶의 의지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인간이라는 자존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월간참여사회 2020년 6월호 (통권 276호)

"나도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할 때 극단적 생각을 해본 적 있다. 삶의 의지가 무너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다 사람이라서다. 누군가 내 멱살을 잡고 때리면, 삶의 의지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인간이라는 자존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조 씨는 『임계장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할 때 당했던 갑질을 고발했다. 이른바 ‘김갑두’(갑질의 두목이라는 뜻으로 경비원들이 붙인 이름)는 조 씨가 음식물 쓰레기통을 수돗가에서 씻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어이, 경비! 이 새끼, 너 전에 공기업에 근무했었다며? 거기서 국민 세금을 마구 쓰던 습관을 아직도 못 고쳤군! 주민들 피 같은 돈 들어가는 공동 수돗물을 펑펑 써? 이 새끼, 당장 잘라야 할 놈이네. 네가 버린 수돗물 값은 네 월급에서 까게 해주마. 너 오늘 아주 제대로 걸렸어.” 김갑두는 조 씨를 세워놓고 한 시간 넘도록 훈계했다. 이 밖에도 그의 책에는 자기 아이에게 “너도 공부 안 하면 저 경비원 아저씨처럼 된다”고 말하는 한 아빠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조씨는 “지금의 모습은 내가 불성실하게 살아온 결과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노동에서 나오는 결과물의 가치’는 서로 같지 않을 수 있지만 ‘노동 자체의 가치’는 모두가 다 같은 것이다. 노인의 노동이나 청년의 노동이나, 노동은 다 신성한 것이다.”

 

- 현행법이 경비노동자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동주택관리법에는 갑질하지 말라는 조항(부당 지시 및 명령 금지 조항)은 있지만 처벌 규정이 없다. 선언이나 훈시 규정에 가깝다. 아파트에는 전 국민 60%가 산다. 힘 있는 사람 대부분이 아파트에 산다. 괜히 아파트 문제를 건드려 관리비가 인상이라도 되면 주민들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당국과 정치인도 쉽게 건드리기 어렵다. 아파트는 가장 힘 있는 곳이다.

 

-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비정규직이 된 후 가장 다르다고 느꼈던 부분은 무엇인가?

내가 느낀 것은 ‘차이’가 아니라 ‘차별’이었다. 비정규직은 휴가가 없다. 경조사든 질병이든 휴가를 가려면 나를 대신할 사람을 내 돈으로 구해놔야 한다. 몸이 아플 때도 차별을 느낄 수 있다. 정규직은 적어도 아프다고 해서 잘리는 일은 없다. 비정규직들은 아프면 일터를 잃는다. 아파도 숨기고 일을 해야 한다. 구직을 원하는 고령자들이 줄을 서 있다고 해도, 그래서 고르기 아주 쉽다고 해도, 아프다는 이유로 자르는 게 일상인 현실이 옳은지 묻고 싶다. 비정규직 일터는 최저임금으로 최고의 노동을 바쳐야 하는 곳이다. 강철 같은 정신이라는 말은 있지만 강철 같은 몸이라는 말은 없다. 정규직으로 38년 동안 일하면서 멀쩡했던 몸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무너졌다.

 

- 비정규직으로 살고 싶지 않았던 아들의 전문대학원 진학을 위해 비정규직이 됐다. 

퇴직 무렵 막내가 대학 3학년이었다. 문과 대학 졸업생 중 정규직 취업 비율은 10%에 지나지 않는다. 막내는 비정규직으로 살고 싶지 않다면서 대학 졸업 후 다시 3년 과정의 전문대학원을 가길 원했다. 자녀를 비정규직 시키지 않겠다는 부모 소망을 이기심이라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부모된 이들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니까. 은퇴 후 일을 계속하는 것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시급 노동자 동료 자녀들 가운데 공무원을 준비하는 이들이 많다. 합격을 기다리며 기약 없는 세월을 뒷바라지하려면 고령의 부모들은 정말 피눈물이 날 수밖에 없다.

 

- 책을 읽으며 노인과 청년의 노동 문제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씨리얼(CBS의 유튜브 콘텐츠)과 인터뷰한 적 있는데 청년들이 많은 댓글을 달았다. 내 문제를 자기 문제로 공감하더라. 과거 버스 터미널에서 근무할 때 인력 가운데 80%가 비정규직 청년들이었다. 같은 처지의 내게 친근하게 말을 붙이고 속내를 털어놓는 친구들도 적지 않았다. 내가 만난 청년들도 ‘고, 다, 자’ 인력들이었다. 고르기도, 다루기도, 자르기도 쉬운 인력이란 뜻이다. 헐값에 젊음이 팔리고 있다. 청년들과 노인이 ‘고다자’라는 어이없는 동의어로 묶여 있는 게 현실이다.

 

메인

 

- 노동자로서 ‘60세’ 나이는 어떤 의미인가? 

일을 해보니 65세 이하를 ‘젊은 노인’이라고 부르고 65세가 넘으면 ‘그냥 노인’이라고 하더라. ‘젊은 노인’이 일자리를 구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청년이 도저히 못 하는, 노인이 아니면 견뎌낼 수 없는 그런 일자리들은 상당히 있다. 문제는 65세 이상이 됐을 때다. 이때부터는 임금은 점점 내려가 절반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또 신체는 약해져 가는데 아프게 되면 모두 ‘노환’이라는 이유로 그만둬야 한다. 아직은 젊은 노인에 속하니 내가 노인이구나 이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 고령 노동자층에서 조직화나 세력화, 단체행동이 이뤄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인 인력이 ‘고다자’ 인력이라서다. 아파트 경비원 할 때 아침에 출근해 관리사무소에 갔더니 관리소장이 이력서를 수북이 책상 위에 쌓아두고 있었다. 노동 공급이 풍부한 만큼 해고가 남발되고 있다. 비정규직 지원센터 등에서 조직화를 시도하지만 앞장서는 사람들은 잘리기 때문에 선뜻 나서기 어렵다. 조직화나 세력화, 단체화를 위험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많고 이뤄질 수 없는 소망이라고 체념하는 경우가 다수다.

 

- 고용노동부가 아파트 경비원을 ‘감시·단속적 노동자’로 승인하면서 발생하는 문제가 크다. ‘감단노동자’는 무엇이고 어떤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하는가?

아파트를 포함해 거의 모든 경비원을 감시·단속적 근로자라고 한다. 감단 근로자란 일이 없을 땐 놀고 있다가 이따금 간헐적으로 일하는 근로자를 말한다. 감단 근로자 규정은 임금을 덜 주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감단 근로자는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주 52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되고, 여러 수당을 주지 않아도 위법이 아니다. 일하는 시간을 휴게 시간이라고 해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도 그 규정 때문에 가능하다. 경비원 업무는 계속 사방을 살피고 경계해야 한다. ‘하다가 쉬었다’는 식으로 간헐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고용노동부가 아파트 현실을 몰라서 이런 법 적용을 할까? 고용노동부가 아파트 눈치를 보지 않는다면 내일이라도 해결 가능하다.

 

고용노동부 훈령인 근로감독관집무규정을 보면, 사업주가 감시·단속적 노동자에 대한 근로시간 등의 적용 제외 승인 신청서를 접수하면 근로감독관은 사업장에 현지 출장을 나가 노동조건 실태 조사를 해야 한다. 조 씨는 분 단위로 적혀 있는 노동 일지를 펼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감시·단속적 근로자라고 규정한다면, 우리에게 완전한 휴게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지금 경비 초소 가운데 완전한 휴게 공간이 있는 곳이 있나? 최희석 씨가 일하던 공간도 초소 외에 휴게 공간은 없었다. 고용노동부가 실태 조사에 나서면 해결된다.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한 만큼 정상 임금을 달라는 것이다. 전태열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보듬고 죽은 게 50년 전인데…. 아파트 권력에 눈치만 보고 있다.

 

-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약자를 대변해온 진보 진영이 절대다수가 됐는데 제도 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인가?

이번 총선에서 여·야 모두 노인 복지 공약은 일자리 개수를 늘리겠다는 것에 그쳤다. 이른바 ‘노인 용돈용 일자리’다. 노인 일자리 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사람은 없었다. 진보정당도 그랬다. 정당이 거대해지면 대변하는 층이 달라지지 않나? 거대하면 ‘진보’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한다. 정부는 노인 일자리 개수만 늘리려고 한다. 내가 일하는 이곳이 그동안의 다섯 군데 일터 가운데 가장 깨끗한 곳이다. 버스 터미널에서 일할 때는 매연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정부는 노인 일자리 실태를 모르고 있다. 오직 일자리만 늘어나면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 집필에 참고한 책들로 『웅크린 말들』, 『소금꽃나무』, 『그의 슬픔과 기쁨』 등을 언급했다. 어떤 점이 도움이 됐나?

책을 읽기 전까지 내 노동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줄 알았다. 생명을 걸고 일하는 노동자들을 이 책들을 통해 처음 만났다. 부끄러워 책을 낼 수 없었다. 내 노동은 노동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출판사 편집자가 노인의 노동은 중장년에 해당하는 그분들 노동과는 또 다르다고 조언했다. 진짜 노동이 무엇인지 알고 난 후에도 내 노동 강도는 같았지만 덜 힘들었다. 저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 앞으로 또 어떤 사람들이 『임계장 이야기』를 읽기 바라나?

은퇴를 앞둔 분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자녀들 취업 연령이 늦어지면서 부모 세대의 부양 기간이 늘고 있다. 그런 분들이 책을 읽다 보면 임계장 일터가 싫거나 자신 없을 수 있다. 그래도 내 책을 통해 노후 설계를 보다 잘해야지, 하는 각오를 다질 수 있지 않을까? 가장 읽어주기 바라는 분들은 정치, 고용, 복지, 노동, 안전 관련 공무원들이다. 노인 노동 실태를 정확히 파악한 자료가 아직 없다고 한다. 실태를 알아야 실효성 있는 정책이나 노인 보호 대책이 나올 수 있다. 내 책은 노인 노동 실태를 파악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정작 해결할 힘을 가진 분들은 내 책을, 내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마음이 아프다. 

 


글. 김도연 <미디어오늘> 기자

사진.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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