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10월 2009-10-01   1537

아주 특별한 만남_맹봉학 회원



‘더불어 잘사는 세상’향해 비상하는 鳳鶴봉학


맹봉학 회원


이경휴 수필가,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물고기는 제 몸 속의 자디잔 가시를 다소곳이 숨기고
오늘도 물속을 우아하게 유영한다
제 살 속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저를 찌르는
날카로운 가시를 짐짓 무시하고
물고기는 오늘도 물속에서 평안하다.

                                                                         ‘가시’ 남진우 1960-



가을 물은 소 발굽에 고인 물도 먹는다고 했던가. 천지간에 투명하지 않는 게 없는 나날이다. 먼 산이 홀연히 앞산으로 다가오는가 하면 하늘은 끝없이 멀리 가버렸고, 도심의 가로수들은 가을 채비로 은밀히 밀담을 나누고 있다. 은행나무는 이미 가을 볕살을 열매 속에  탱탱하게 담아 두었고, 손바닥만한 플라타너스 이파리는 힘없이 스르르 떨어진다. 아직 대춧빛 가을 녘에 당도하긴 이른 시간인데 먼저 손 흔들며 가려한다.

‘날자, 민주주의야’ 창립 15주년 기념 후원의 밤이 있었던 다음날, 큰 새 한 마리가 참여연대 사무실로 훨훨 날아왔다. 상서로운 상상의 새라는 봉鳳황에, 천연기념물인 두루미 학鶴을 이름에 함께 달고 있는 배우. ‘빛나는 조연’으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 아빠로,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대한문 앞 시민영결식의 진행을 맡아 더욱 유명세를 탔던 맹봉학(46세) 회원.

적당히 드러난 이마, 선량한 눈빛, 듬직한 체격에 잿빛 셔츠와 검은 바지, 배낭을 메고 들어선 그는 인상 좋은 이웃집 아저씨 타입이다. 스스로 ‘쌀집 아저씨’ ‘슈퍼아저씨’라며 소탈하게 웃었다. 단박에 편안한 인터뷰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연극한답시고 쫓아다닌 80년대, 늘 부채의식 남아”

회원 가입이 지난 8월이다. 새내기 회원이라 참여연대에 대한 첫마음이 궁금했다. 하지만 처음 낸 마음이 정각正覺을 이룬다고 했듯이 그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했다.

“회원 가입이 너무 늦었죠? 하지만 저는 늦지 않았다는 생각도 해요. 생각은 늘 있었죠. 박원순 변호사님 정말 존경합니다, 또 개인적으론 김칠준 변호사님(전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실행위원장)과의 인연도 있었죠. 회원 가입을 결심하고 나서는데 시간이 걸렸을 뿐이죠.”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말하는 말투가 화면과 잘 구별이 되지 않았다. 연이어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결심하고 행동하기까지 시간이 그렇게 걸린 이유가.

“87, 88년의 사회상들이 늘 부채의식으로 남아있었죠. 그 때는 사회의식보다는 내 발등에 떨어진 불끄기가 먼저였어요. 최루가스 피해가며 연극포스터 붙이고 바닥에서 새우잠 자며 연극에 빠져있었죠. 시위대 피해가며 연극한답시고 쫓아다녔으니…. 그러다 백기완 선생님을 뵙게 되었죠. 그분의 강연을 듣고 또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등산도 다니면서 시대를 고민하게 되었죠. 늘 빚진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작년 광우병 촛불집회가 도화선이 되었죠. 그 현장에서 참여연대 안진걸 씨를 만났고, 시민단체 사람들과 본격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며 회원 가입을 한 거죠.”

활동이 공개되면서 그에겐 예상치 않았던 일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지난 해 12월, 촛불집회 참석과 관련해 경찰서의 출석 요구가 있었다. 집회 참석 5개월이 지난 후임에도 불구하고 도로교통법 위반이라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의 법규를 들이대면서. 연예인 최초의 소환이었고 그는 당당히 출석했다. 45분간 조사에서 도로에 앉아있었다는 게 문제였다고 하니 경찰관계자들도 멋쩍어했다고 한다. 그 후 두드러진 변화는 배역이 1-2회용 단역이고 일 년에 한두 편 찍던 CF도 끊어졌다고. CF는 목돈이었다며 아쉬워했지만 그로 인한 불이익에는 눈 하나 깜짝 않는 기색이었다. 오히려 이 기회가 연기에 매진하라는 뜻으로 생각한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유명인’으로서 얼굴이 공개되면서 그의 행보는 더욱 분주해졌다. 용산참사 현장, 시민영결식장 진행, 일제고사로 해임된 선생님 격려, 재개발로 인해 헐리게 된 백기완 선생 통일문제연구소 대책 논의, 미디어악법 참여 집회, 지역 촛불운동에 참석…. 생업이었던 연극까지 뒷전으로 밀어놓고 시민운동에 뛰어들고 있다.

지역촛불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제 촛불이 지역으로 확산되어가고 있습니다. 강동지역은 매주 수요일 30-40명이 모여서 둔촌, 명일, 천호역 부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은 아니지만 뜻이 통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참석하고 있습니다.”

중도·실용·친서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언론에서는 대대적으로 포장을 하고 나섰다. 여론조사의 지지율까지 가세하지만 진정성이 없는 정권이라는 건 지역촛불이 날로 건재함이 증명하는 것 아닐까. 위장전입과 탈세는 공직자의 기본 의무라는 말까지 공공연히 나도는 세태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어리석은 자들의 우직함으로 나아간다. 18년 동안 한 곳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소외계층의 자녀들을 위해 공부방 선생님, 이제 지역촛불까지 나섰으니 세상을 움직이는 힘의 한축이 된 셈이다. 하지만 그는 한사코 씨앗일 뿐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생의 절반 가까이를 씨앗에 머물고 있는 그는 그야말로 우직한 사람이 아닐까.



18년동안 정신병원서 사이코드라마 자원봉사

18년 동안 하고 있는 자원봉사활동으로 이야기가 옮겨갔다.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어려운 가정환경이었기에 수원에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생업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연극에 대한 씨앗은 고등학교 때 성당에서 크리스마스 연극제를 하면서 발아했고, 직장과 극단을 따라다니며 꿈을 키웠다. 그 과정에서 사이코드라마를 하게 되었고, 그것에 매료되어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화요일은 시립은평병원, 수요일에는 아산병원에서 심리극- 사이코드라마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주로 환우들을 위한 역할극이지만 은평병원에서는 매달 첫째 목요일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공연하고 있다.

사이코드라마는 대중화된 용어로 주로 역할극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비슷한 환자들을 모아놓고 즉흥적으로 연기하도록 하는 정신치료 요법의 하나로 이를 통해 환자들 마음속에 있는 문제를 표현하게 함으로써 환자를 분석하고 치료하는 방법이다.

오랜 시간을 봉사하면서 느낀 어려움이나 보람에 대해 질문을 드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즉답이 나왔다.

“이건 봉사가 아니라 내가 치유되는 과정이에요. 은평병원은 정신병원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내 삶이 힘들다보니 악에 바쳐서 인상도 강하게 보였어요. 그런데 그곳에서 그들과 공연을 하고 부터는 내 스스로 치료가 되고 정화 되어 얼굴도 변하더군요. 얼굴이 그렇게 변하니 배역도 제한되어 캐스팅이 잘 안되죠.”

호기로운 웃음소리가 영락없는 이웃집 아저씨다. 배우로서 자칭 비주류요 비정규직이라 오히려 자유롭다며 큰 웃음 끝에 공허함이 울려나왔다. 한 때는 배우협회 노조를 만들기 위해 앞장을 섰다가 구린내에 진저리를 치고 잠수하기도 했다. 고무신 막걸리만 돌리지 않을 뿐 60년대 선거판의 재현이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더구나 현 주무 장관은 부르주아 출신의 배우라 자본의 맛에 길들여진 예술가들이 그 앞에 줄을 서있다고 한다. 본디 예술이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권력에 기생하려는 속성과 그에 저항하는 성향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때문에 자칫 한쪽으로 치우칠 경우 나약한 예술 영역에 정치권력이나 재벌들의 꼭두각시가 되어 움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거친 정치 행위처럼 보일 수 있다. 지금은 지원금을 한 푼이라도 더 타내기 위해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아진 세태라며 또다시 씁쓸히 웃었다.  



“촛불집회로 CF도 끊어졌지만 연기 매진할 기회 여겨”

대화가 예상치 않게 강성 발언으로 흘러가서 수위 조절이 필요했다.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를 넌지시 여쭸다. 연기자답게 표정은 단숨에 부드럽고 편안하게 변했다.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이 되어야지요. 빈부 격차가 신분제도로 고착되면서 소통은 일방적일 수밖에 없게 되었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니 무관심해지고. 그래서 역할바꾸기가 필요한 거죠. 치유의 효과가 상당합니다. 나 하나쯤에서 나부터로 생각을 바꿔야 하고, 희생이라는 말을 강요하기보다는 스스로 양보하는 분위기로 무르익어야겠죠. 예를 들면 가장으로서 희생만 강조하다보니 우리시대의 아버지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죠. 그보다는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보면 자신이 양보할 몫도 보이게 되겠죠.”

 지나온 세월이 신산했음에도 불구하고 긍정의 힘이 삶의 동력이 되어버린 듯하다. 비록 스스로를 씨앗이라고 칭하지만 이 씨앗은 이미 숲으로 향한 긴 여행을 시작한 셈이다. 척박한 토양이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는 시민단체라는 숲으로.

계속 대화는 ‘연성모드’로 나갔다. 연기 생활 중 자신이 최고로 뽑는 작품과 최근 준비하고 있는 작품에 대한 소회를 부탁했다.

“<카덴쟈>라는 연극입니다. 카덴쟈는 음악용어로 협주곡에서 악장의 끝부분에 삽입되는 화려한 독주를 말합니다. 내용은 세조의 왕위 찬탈 과정을 그린 잔혹하고 충격적인 역사극이죠. 제가 왕의 역할을 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떨려요. 그리고 지금 준비  중인 연극은 다음 달 극단 앙상블에서 <지상 최고의 묘약>이라는 2인극입니다. 사회적인 문제인 자살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따뜻한 이야기라고 할까요? 대학로에 있는 연우무대에서 공연될 예정입니다. 정권이 이참에 연극에 매진하라고 저를 배려하는 것 같아요.”

따라 웃었지만 헛헛한 기분이 들었다. 본인인들 오죽하랴. 인터뷰는 예정된 시간에 이르렀고 대화는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참여연대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을 부탁했다.

“비판보다는 느낌을 말하자면 참여연대에 대해서 밖에서 들을 때와 다르게 안으로 들어와서 간사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해할 부분이 많이 생기더군요. 촛불집회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만으로 참여연대를 평가하기 어렵고, 또 강성의 의미만으로 계속 밀고 나가기도 한계가 있겠지요. 하지만 여태껏 참여연대가 지향했던 방향이 잘못 되었다곤 생각지 않아요. 방법을 모색 중 아닌가요? 저도 힘을 보태야지요.”

책상 위에 있는 ‘창립 15주년 참여연대 청년 대동의 날’ 홍보물에 있는 사진을 보며 활짝 웃었다. “이 사진이 어디 있던 건가요? 사진 속의 모습처럼 눈이 없고 입이 귀에 걸렸다.

참여연대 회원대동제의 주요 프로그램인 ‘삼순이 아버지 맹봉학 선생의 표현력 교실’에 대한 보충 설명을 부탁드렸다. 젊은 그대, 온몸으로 나를 표현하라’ 간단히 말하면 역할바꾸기죠. 내가 네가 되어보고 네가 내가 되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이죠. 가족 간의 불화도, 사람들과의 불편한 관계도 서로의 다른 입장 차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요?” 서로 역할을 바꿔보면서 이해하고 깨닫는 일종의 치료방식 인데, 연극을 하기 전 가볍게 몸을 푸는 워밍업이죠.”

덩달아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마지막으로 극본에 없는 자유발언 시간을 드리자,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이 있지만 저는 좋은 일은 오른 손, 왼손이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나도 하고 너도 하면 좋잖아요. ‘너 해 봐, 좋으면 나도 할게.’ 이런 식으로 바라만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손해를 덜 보겠다는 심사겠지만 하는 권하는 사람은 신이 안 나죠.”

연극이 전부였던 시절, 결혼하면 전부를 잃을 것 같아 긍긍하다 오늘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연극은 ‘제 몸 속의 자디잔 가시’이다. 몸은 물속에서 우아하게 유영하고 꿈은 창공을 훨훨 나는 봉학鳳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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