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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10월
  • 2009.10.01
  • 941



이상한 나라의 재범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아이돌 그룹 ‘2PM’의 멤버 ‘재범’이 4년 전 연습생 시절에 마이스페이스에 쓴 한국 관련 글이 어떤 할 일 없는 네티즌에 의해 퍼날라지고, 그 글을 <동아일보>라는 신문지가 선정적으로 보도하고, 네이버나 다음 등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전면적으로 소개됨으로써 소위 재범의 ‘한국 비하글’이 논란이 됐다. 곧이어 재범은 사과문을 발표하고 ‘2PM’을 탈퇴해 미국으로 돌아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한국인들의 애국주의 혹은 민족주의 광풍으로 해석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을 이 일이 ‘사건’이 된 것에 대한 점검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루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중에 소수만이 ‘사건’이 된다. 언론이 가진 주요한 기능 중 하나는 수많은 일들 중에서 ‘사건’이 될 만한 일들을 기사화하는 것이다. 언론은 마치 어떤 일이 그 자체로 중요해서 기사로 만든 것처럼 쓰지만, 어떤 일이 ‘사건’이 되느냐 그냥 묻히느냐는 대개 언론에 달려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자신이 세상을 보는 시각에 따라 사소한 일을 중요한 ‘사건’으로 만들어내기도 하고, 중요한 ‘사건’이 될 일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언론이 권력이 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보면, 재범이 4년 전에 마이스페이스라는 미국판 미니홈피에 일기처럼 쓴 글이 한국에서 가장 힘이 센 3대 부자신문 중 하나에 실렸다는 사실, 즉 그것이 ‘사건’이 되었다는 사건에 주목할 필요가 생긴다. 어쩌면 한국을 ‘비하’하는 일은 재범이 쓴 글에서가 아니라, 이런 해프닝을 사뭇 엄숙하게 기사화한 <동아일보>에서 발생한 것이 아닐까? 이 나라가 종교처럼 떠받드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표방하는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을 ‘유력한’ 신문에서 보도하지는 않는다. 이런 일이 사건화됨으로써 국민적인 논쟁거리가 되었다는 점 자체가 한국의 문화수준이 얼마나 천박한지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문제의 <동아일보> 기사 제목은 “‘2PM’ 재범, “한국 역겨워””로 시작한다. 이 기사를 쓴 남원상 기자는 재범이 영어로 쓴 문장 “Korea is gay”를 “한국 역겨워”라고 ‘번역’했다. 영어에서 ‘gay’라는 단어가 문맥상 안 좋은 의미에서 형용사로 쓰일 때는 ‘역겹다’는 뜻이 아니라 ‘이상하다’는 의미다. 원래 남자 동성애자를 뜻하는 ‘gay’라는 단어나 혹은 동성애자 일반을 가리키는 말 중 하나인 ‘queer’와 같은 단어 모두 ‘일반적이지 않아서 이상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 ‘gay’라는 단어를 다른 영어 단어로 바꾸면 ‘uncool’이다. 즉, ‘쿨하지 않다’거나 ‘유행에 뒤처진’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재범의 문장을 문맥상 정확히 번역하면 “한국은 이상해”이지 “한국은 역겹다”가 절대 아니다. 기자가 영어를 못하거나, 혹은 일부러 뜻을 왜곡하여 부풀렸거나 둘 중 하나다. 이것이야말로 황색 저널리즘들이 자주 써먹는 기법인데, 재밌는 것은 이런 웃기는 기사가 너무나 진지하고 심각한 토론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진실이야말로, 다시 한번, “한국은 이상하다”는 것이다. 

한편, 대중들의 비난에 직면하여 ‘2PM’이 소속되어 있는 JYP 엔터테인먼트에서는 발빠르게 재범을 탈퇴시킴으로써 이 사건을 잠재우려 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측면은 JYP 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이자, 이수만, 양현석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대중음악을 대형기획사 체제로 재편시킨 장본인인 박진영이라는 인물이다. 이수만이나 양현석과 달리 박진영은 기회 있을 때마다 방송에 나와 자신의 ‘리버럴’한 세계관을 설파하여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얻었었다. 90년대, 가수 시절 그의 섹스어필은 그가 다니던 대학교의 마광수 교수의 글과 함께 한국의 문화보수주의자들에게 엄청난 비판을 받았었다. 하지만, 반대로 박진영은 가수로서는 드물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당당히 한다는 사실로 인해 많은 팬들을 가지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그런 그의 리버럴한 철학은 재범 사건에 이르러서는 작동하지 않았다. ‘가수’ 박진영은 한국사회의 억압된 성을 당당히 표현하는 자유주의자이지만, ‘사장’ 박진영은 논란이 된 소속가수를 탈퇴시킴으로써 상황을 모면하려는 자본가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의 사소한 발언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을 때, 사장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를 ‘자르는’ 것이다. 엔진은 다시 돌아야 하고, 이윤은 계속 축적되어야 하는 게 자본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이 철칙 속에서 문화적 보수주의에 당당히 맞서는 진정한 자유주의자의 용기 따위는 없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박진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윤추구를 유일한 목표로 하는 대형기획사가 장악하고 있는 한국 대중음악계의 문제다. 논란이 커지고, 비판이 이어져서 결국 주식가치가 하락하는 것이야말로 기획사에게는 가수 하나 잃는 것보다 더 심각한 ‘사건’인 것이다.

수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부르고 있는 노래는 날로 직설적이고 선정적이 되어간다. 아이돌 그룹이 타겟으로 삼는 소비자층인 10대가 가진 심리적 불안과 열정에 호응하기 위해서다. 더 ‘막 나갈수록’ 더 ‘핫 이슈’가 되고, 그럴수록 음원 다운로드는 늘어난다. 펑키한 옷을 입고, 진한 스모키 화장을 하고, 눈을 잔뜩 찌푸리며 직설적인 가사를 쏟아내는 아이돌 그룹들의 어떤 ‘급진성’은, 하지만 슬프게도, 그들의 화장만큼이나 겉모양에 지나지 않는다. 몇몇 대형기획사에 의해 발굴되고, 길러지고, 관리되는 이 아이돌 그룹들은 ‘상품’으로의 가치가 떨어졌을 때면 가차없이 잘리는 힘없는 노동자일 뿐이다. 정신나간 어른들이 만들어낸 이상한 애국주의 논란 하나로도 가수 생명이 끊기는, 그저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일 뿐이다. ‘2PM’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그래서 이 폭발적이고 화려한 ‘우상들’의 텅 빈 실재다. 경제를 떠받드는 산업역군으로 묘사되다가도 파업 한번만 했다하면 ‘매국노’가 되어 몰매를 맞고 범죄자가 되는 우리 시대 노동자들의 모습은 이 지점에서 ‘아이돌’의 힘없는 실체와 겹쳐진다. 이렇게, 둘의 본질은 같다. 이윤의 축적만이 복음이 된 이 시대에 이들은 한번 쓰고 버려지는 ‘크리넥스’라는 점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게 정상은 아니다. 참으로, “한국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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