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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 11월
  • 2009.11.01
  • 802



진실은 반드시 드러난다


‘용산 철거민 사망 사건’의 법적 쟁점과 1심 판결의 의미


박래군 용산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에서는 지난 9월부터 치열한 법정공방이 진행되었다.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죄’ 등의 혐의로 구속된 6명의 철거민과 3명의 불구속자들에 대한 공판이 진행되었다. 10월 29일로 다가온 1심 재판기일 만기일을 앞두고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부장판사 한양석)는 1주일에 이틀씩 집중심리로 재판을 서둘러서 진행했다.

집중심리 기간 동안 검찰과 변호인 간에 뜨거운 공방이 오간 부분은 주로 특수공무집행방해 부분을 인정할 수 있느냐를 두고 전개됐다. 이 혐의가 인정되느냐 여부는 이 사건의 핵심에 해당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피고인 측을 방어하는 변호인들은 이 부분에 집중해서 검찰의 기소내용을 공략해갔다. 공판과정에서는 변호인들이 검찰의 주장을 번번이 깨뜨려나갔다.


“화염병이 참사의 원인이었는가”

우선 화재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부분이 뜨거운 쟁점이었다. 검찰은 화재 원인이 화염병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한 다음, 누구라고 특정할 수 없는 망루 농성 철거민 1명이 망루에 진압 차 들어오는 특공대원들에게 화염병에 불을 붙여 던졌고, 그것이 망루 3층 계단 부근에 떨어지면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서 특공대원 1명이 죽고, 13명이 상해를 입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변호인단은 화염병이 화재의 원인이란 증거가 없고, 자살하는 것이 아닌 바에야 죽을 줄 알면서 화염병을 투척할 이유가 없으며, 화염병 이외에도 발화의 원인이 되는 요소는 돌아가던 발전기나 그라인더 작업으로 인한 불꽃 등 무수히 많이 있었는데 다른 요소들은 합리적인 검증 없이 배제되었다고 반박했다. 

법정에 나온 증인들의 증언들을 종합하면, 화염병을 투척하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서를 작성한 특공대원이 실제로 화염병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대부분의 검찰 측 증인으로 나온 특공대원들은 시너를 뿌리고 화염병에 의해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은 “냄새를 맡고 추측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들은 이미 망루에 진입할 때부터 지독한 냄새를 맡아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고 했다. 또 화재감식전문가들은 불이 망루 안에서부터 났는지, 밖에서부터 났는지도 특정할 수 없고, 세녹스 같은 유류가 흘러 유증기가 망루 안에 꽉 찬 상태이기 때문에 화염병이 아니더라도 사람들 옷이 부딪히는 정전기에 의해서도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등 수많은 화재원인이 있다고 증언했다. 이런 법정에서의 진술만 보면 검찰의 주장은 구체적인 증거나 진술이 없는 것으로 드러난 이상 피고인들에게는 매우 유리한 상황이었다.


“경찰특공대를 투입한 것은 정당했는가”

두 번째 쟁점은 경찰 특공대의 투입이 정당한 것이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검찰 측은 한강대로변의 건물 남일당 옥상에 망루를 쌓고 사람과 차량이 통행하는 인도와 차도에까지 화염병을 투척하여 시민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상황이었으므로 화염병이 소진되기를 기다려서 작전을 하는 것은 더 큰 공공의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해 고도로 훈련된 경찰 특공대를 투입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또 화학소방차, 구급차를 대기하였고, 안전매트리스를 설치하고, 개인화기를 소지하는 등의 주의의무를 기울여 작전을 수행했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변호인단은 철거민들이 농성이 들어간 1월 19일 상황을 경찰이 도심 테러 상황이 발생한 것처럼 매우 과장해서 보고하고, 한 번의 대화도 이루어지기 전에 망루를 짓기 시작한 지 3시간 만에 특공대를 출동하고 특공대를 투입하는 작전계획을 수립하는 등 경찰 공공의 원칙, 비례의 원칙을 현저히 위배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대형 화재의 위험성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비가 없었고, 안전조치도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서 공무집행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섰다.

공판에서 나온 특공대원들과 농성 철거민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우선 1월 19일 상황은 특히 오후에는 매우 평온한 상황이었지 도심테러와 같은 급박한 상황이 아니었고, 철거용역들이 경찰들과 합동작전을 수행하는 것을 경찰이 제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었으며, 20일 상황에서도 특공대원들은 망루 안에 매우 많은 량의 유류물품이 있었다는 것을 모른 채 투입되었다고 증언했다. 한 경찰관은 대화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채 진압작전을 서두른 것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진술을 이어가지 못하기도 했다. 또 소방대원은 다량의 유류물질이 축적된 망루에 경찰을 투입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경찰 지휘관들은 망루 안이 매우 위험하다는 상황을 알고도 부하들에게 상황 전달을 하지 않은 채 작전에 투입했고, 심지어는 당시 현장상황을 잘 몰랐다고도 증언하고, 심지어는 부하 직원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기까지 했다. 이런 법정 증언들을 종합할 때 경찰의 특공대 투입을 통한 진압작전은 무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또한 피고인들에게 상황이 매우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공판과정에서 번번이 검찰의 주장이 깨지게 되자 언론들도 이 사건 판결을 주목하게 되었다.


일방적으로 검찰 손을 들어준 재판부

그렇지만 2009년 10월 28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위와 같이 검찰의 주장이 대부분 부정되거나 의심되는 공판이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측의 주장은 묵살한 채 검찰의 기소내용을 그대로 모두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고 말았다. 즉 “농성자들이 망루 내부로 진입한 경찰특공대원들에게 불이 붙은 화염병을 투척하여 망루 내부 3층 계단 부근에 불을 내 망루 안에 있던 세녹스의 유증기에 불이 옮겨 불어 망루 전체에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 밖의 어떤 화재 가능성에 대해서도 배제해버린 결과였다. 또 공무집행의 적법성에 대해서도 위험한 시위용품과 장기간 농성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한강대로 변에 피해를 주는 등 “경찰로서는 경찰력을 투입하여 농성을 진압할 필요”를 인정하고, 경찰특공대 조기 투입 결정을 한 경찰지휘부도 위법하다 할 수 없고, “진압하는 과정에서 체포에 필요한 이상의 물리력을 행사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아 확실하게 검찰의 주장만을 손들어 준 채 법정에서 다투었던 수많은 증언과 진술들은 모두 무효화시켜 버렸다. 이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원칙에도 맞지 않는 일방적인 판결이었다. 재판부가 이런 판결을 내린 이유는 생존권을 주장하면서 농성을 한 철거민들의 행위가 “국가법질서의 근본을 유린하는 행동으로 법치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판단에 따라 재판부는 철거민 2명에게는 징역 6년, 5명에게는 징역 5년을 선고하면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던 피고인 3명을 법정 구속했고, 2명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런 선고결과를 본 시민사회와 야당은 경악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즉각 “공익의 대표자가 아니라 사익의 대변자로 전락한 검찰의 후안무치와 사법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린 법원의 비겁함을 여과 없이 드러낸 사례임도 분명하다”는 논평을 냈다.


진실은 밝혀질 것

“검찰의 후안무치”와 “법원의 비겁함”이 결합된 1심 재판부의 판결은 큰 충격을 주고 있다. 1심 재판부처럼 판결을 한다면, 공판중심주의는 설 땅이 없다. 수많은 증인들이 검찰의 기소내용을 부인했는데도 불구하고 검찰에서 작성한 진술서를 신뢰하여 재판부가 판단한다면 서류중심의 재판이 될 수밖에 없다. 공판의 전 과정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재판부의 판단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인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재판부가 검찰에 끌려가는 무력한 존재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도 문제다. 검찰은 재판 초기에 국민참여재판을 무산시키기 위해서 무리하게 증인을 신청하는 비열한 수법을 사용했고, 결국 재판부는 이런 검찰에 굴복하여 포기했다. 또 검찰이 수사기록 3천 여 쪽을 제출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법원이 이를 제출할 것을 명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계속 거부하는 검찰을 제어하지 못했고, 스스로 말한 것과 같은 어떤 불이익도 주지 않았다. 결국 정치검찰에 끌려가는 무력한 사법부의 모습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결국 재판부는 정치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보다 명확한 분석은 판결문을 보아야 가능하겠지만, 이 사건 자체가 갖는 정치적 중압감이 있음을 재판부가 의식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 또 재판부의 인식 자체가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형식적 ‘법치주의’와 맥을 같이 하고 있는 인식 상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국가법질서에 도전하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는 말은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너무도 많이들은 말이다. 이명박 시대의 법치주의를 그대로 수용한다면, 사회적 약자들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명박이 지키라는 법 그 자체가 이미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배제하고 있고, 특히나 재개발 관련법에서 세입자들은 무권리 상태에 놓여 있으므로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라도 항의하지 말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이와 같은 참담한 1심 재판부의 선고결과로 인해 용산참사 해결은 더욱 어려운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당한 공무집행이었다는 정부의 주장에 사법부가 무게를 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다. 용산범대위와 피고인들은 즉각적인 항소를 준비할 것이고, 이후 법정에서 다시 검찰의 주장이 터무니없음을 입증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와 함께 국회에서는 특별검사제를 도입하기 위한 입법 활동도 전개할 것이다. 아마도 이번 정권에서는 용산참사의 진실이 법정을 통해서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이전 독재시대에 조작되었던 사건들의 실체가 지금에서야 드러나듯이 언젠가 용산참사의 진실이 밝혀질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제고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그때는 의외로 빨리 올 수도 있다.


용산참시 시,물대포를 쏘는 용역직원. 주위에서 경찰들이 보호하고 있다.
1월 20일 새벽 경찰이 망루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컨테이너에 불이 붙어 건물이 무너지고 결국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사망. 24명 부상. 사진은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철거민.
정병두 당시 제1차장이 망루 모형을 가리키며, 화재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2월 9일 검찰이 ‘농성자들이 바닥에 뿌린 시너와 화염병 불씨가 화재의 원인’이라는 수사결과를 발표(구속된 농성자 20명, 철거업체직원 7명 기소)하자, 유가족과 시민들은 ‘검찰은 죽었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10월 2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용산철거민 참사 선고공판에서 기소된 철거민 농성자 9명중 7명에게 징역 5~6년의 중형이 선고되자 이충연 용산4구역철거민대책위원장의 어머니며, 고 이상림씨의 부인인 전재숙씨가 오열하며 재판정을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이 원망스럽다” 이충연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의 형인 이성연(앞줄 오른쪽 둘째)씨가 10월 2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원망스럽다”며, 1심 재판부의 ‘9명 전원 유죄 판결’에 대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앞줄 맨 왼쪽이 이 사건 변호를 맡은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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