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3월 2009-03-01   733

칼럼_과연 시민운동의 뿌리는 무엇일까?




과연 시민운동의 뿌리는 무엇일까?



박영선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시샘달을 지나 이제 물오름달입니다. 아무리 기후변화가 기승을 부린다 해도
잎샘, 꽃샘추위의 위세는 여전했지요. 하지만 저는 2월의 칼바람이 오히려 달갑기만 했습니다.
독감이 극성을 부리던데, 제가 혹시 눈치 없이 매운 날씨 타령을 하고 있는 건가요?
혹시 자리보전 중이었다고 해도 뫼와 들에 물이 오르는 날이 왔으니,
툭툭 털고 일어나서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의 기운을 누려보세요.


그런데 봄의 기운을 누려라 어쩌구 하면서도 김 선생이 뭐라고 할지 생각하니 그닥 흔쾌하진 않네요.
꼭 몸이 편치 않아서 자연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하긴 사람이 죽어가고, 장례도 치르지 못하는 판인데, 봄타령이라니…김 선생이 나무랄 만합니다.
그런데요, 그래도 자연의 기운을 누리는 일은 특별한 호사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허락된 거라고 우기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진이 빠져 있는데
달리 위로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새삼 들이댈 필요도 없이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하는 수준의 시국상황이
매일매일 벌어지는 판국이니 우리가 자연 외에 달리 의지할 곳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얼마 전 저와 가까운 이가 누군가로부터 받은 이메일을 자랑삼아 보여줬는데,
많이 부러웠습니다. 그 이메일 초청장을 보낸 주인장은
“니나노 먹고 놀기에는 세상이 너무 아프기는 하지만, 울고만 있을 수도 없고,
새싹이 주는 싱싱한 비타민을 섭취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모두들 보고 싶기도 하고 해서
초대장을 띄웁니다”라고 운을 뗀 후, 참나물 도토리묵 무침, 유채나물, 냉이나물,
방풍나물 등 집주인 손에 잡히는 나물과 검정치마, 파블로프, 국카스텐, 프란츠 퍼디넌드의 핫한 음반을
준비하겠다고 하더군요. 클로징 멘트는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봄밤을, 흥취를 즐겨보아요”.
멋지지 않습니까? 정겨운 친구와 소박한 음식, 정취를 돋아주는 음악…….
그런데 이런 것들이 어느 틈에 사치가 되어버리고 말았지요.
꼭 누굴 탓하자는 것은 아닌데, 왜 이리 세상만사가 평화롭지 못한 것인지 푸념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지난 2월 21일 참여연대 총회가 열렸습니다.
나날이 진보하는 기술 덕분에 제주도와 대구에 있는 회원을 만날 수 있었지요.
총회가 생중계되었다니, 놀랍지 않나요? 참여연대가 총회 생중계라는 새로운 시도를 감행한 것은
오로지 한 사람의 회원이라도 더 만나고자 하는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총회가 열리는 장소에 함께 있지 못하더라도 말입니다.
지난 달 편지에서 제가 거론했던 참여연대 창립 대표였던 김중배 선생은
평생 부끄러움을 달고 사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요. 그 분이 스스로 얼굴에 침을 뱉을 수밖에
없다고 고백하며 시민운동에서 부끄러워했던 것 중의 하나가 ‘단골손님’ 얘기입니다.
김중배 선생은 “‘단골손님’만을 만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이 먼저 서글프다.
그러나 새로운 ‘단골손님’의 바다를 열어나가지 못하는 역량이 더욱 서글프다”고 하며
“우리의 시민·사회운동에 있어서 뿌리란 과연 무엇인가”라고 뼈저린 물음을 제기합니다.


저도 요즘 시민·사회운동의 ‘뿌리’, 참여연대의 ‘뿌리’에 대해 고민이 많습니다.
시대의 비극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용산참사를 겪으며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작년 그 많던 촛불 시민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그새 시민이 변한 걸까요? 세상이 바뀐 걸까요?
시민운동은 깃발을 제대로 들었던 걸까요? 제 질문은 어리석게만 느껴집니다.
김중배 선생은 또 다른 뼈저린 물음으로 제 질문에 답을 하는 듯합니다.
“시민 또는 낮잠 타령도 핑계에 불과하다. 그 낮잠을 깨울 만한 경적을 제대로 울렸다고 자부할 수가 있는가.
아니면 잠들어 있는 잠재력을 현재화할 수 있는 ‘펌프 프라이밍’이나마
제대로 시도해보았다고 자임할 수 있는가”
참여연대도 요즘 어느 때보다도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역시 그 해법은 운동의 뿌리 속에서 찾을 수 있겠지요.


총회를 지켜보며 모처럼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낸 참여연대에
격려를 해달라는 부탁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샛길로 빠졌네요. 그것도 한참이나요.
제가 항상 그랬다구요? 하핫 그렇지요. 하지만 더욱 심해진 거 같아요.
원래 가려던 방향을 상실한 채 오리무중에 빠지는 증상 말입니다. 비록 저 혼자만 그러면 괜찮을지 몰라도,
시민운동은 그러하면 안 될 텐데…김 선생의 참견이 절실한 때입니다.


참, 참여사회가 이번 달에 많이 바뀌었어요,
지면 꼭지부터 편집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필자도 여럿 선보이게 되었구요.
누구보다 매서운 독자이신 김 선생의 독후감을 듣고 싶은데, 시간 한번 내주세요.
제가 직접 나물을 뜯어 대접할 순 없지만,
주인이 직접 채취한 향긋한 봄나물이 가득한 곳은 알고 있답니다.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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