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0년 06월 2000-06-01   808

퀴즈쇼

시청률 신화와 자본의 부도덕 고발

‘퀴즈’가 ‘쇼(Show)’라면 재미가 덜해질까? 패션‘쇼’, 토크‘쇼’, 버라이어티‘쇼’의 ‘쇼(Show)’에 담긴 ‘허구’와 ‘연출된 상황’, 즉 시청자 스스로가 ‘조작’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바로 ‘쇼’다. 하지만 퀴즈는 연출된 상황이라는 허구를 넘어 ‘실제’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긴박감 있는 상황을 전개할 수 있다. 출연자가 문제를 맞추거나 틀려서 탈락하거나 간에 시청자는 이를 통해 다른 프로에서 맛볼 수 없는 재미를 얻을 수 있다.

시청률은 현재나 과거나 ‘방송의 성공여부’를 측정하는 점수판이다. 오죽하면 ‘시청률지상주의’라는 말까지 생겨났을까…. 그것은 단지 숫자일 뿐이지만 단순히 숫자만은 아니다.

높은 시청률을 올리는 프로에는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선정적·저질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내용이라는 것. TV는 자신의 관심분야를 찾아 골라볼 수 있는 ‘재미’가 없어진 ‘잡탕과 짬뽕’을 연상케 하는 프로가 판을 친다. 그래야만 시청률이 높아진다. 따라서 시청률을 거꾸로 순위 매기면 질 좋은 프로그램·좋은 방송의 순서가 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청률은 곧 자본의 논리다. 제작진은 시청률에 울고, 또 웃는다. 방송사가 무리해 가며 시청률에 연연해 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광고’와 ‘광고주’라는 ‘돈 문제’가 그중 큰 이유이다.

방송의 이러한 속성을 잘 나타낸 영화가 바로 <퀴즈쇼(quiz show)>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메가폰을 잡고 구성한 이 영화는 1950년대 미국 NBC의 인기 프로그램인 <퀴즈쇼21>의 부정을 고발하는 사회고발 영화이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음~, 마치 역사책이나 교본을 펴본 수험생의 자세랄까…, 그런 경외스런 마음이 들었다. ‘언론개혁’은 이래서 필요한 거야! 일반 시민들에게 언론이 얼마나 부패하고 왜곡될 수 있는가를 이 영화만큼 쉽게 전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리톨사의 후원을 받는 <퀴즈쇼21>. 퀴즈쇼의 시청률과 제리톨사의 제품판매는 밀접한 상관관계를 긋는다. 스폰서의 눈에 거슬리지 않기 위해 NBC 사장과 제작진은 출연진을 교체해 가며 시청률 상승에 부심한다. 기존의 우승자인 유대인 스템벨을 물리치기 위해 명문가 출신이자 콜롬비아 대학의 매력있는 젊은 교수인 반도렌을 내세운 것도 이러한 차원의 전략이다. 영화 도입부에 퀴즈쇼 출제문제를 은행에서 꺼내 운송함으로써 한마디로 ‘이 퀴즈쇼는 엄정한 관리로 정당하게 출연자들이 실력을 겨루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시청자들에게 쇼의 공정성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재판장면에서 <퀴즈쇼21>의 제작자 엔라이트는 ‘모든 건 쇼일 뿐이다’라는 말로 영화를 보는 이에게 헛웃음을 치게 한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퀴즈쇼가 너무 성공적이었다는 것이다. 스폰서는 이로 인해 더 많은 제품을 판매했으며, 방송사도 많은 이익을 얻었다. 시청자들은 즐겁게 이 프로를 시청했으며, 출연자 또한 부와 명예를 얻었다. 결국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 나는 시청자가 원하는 걸 준 것뿐이다. 퀴즈쇼는 공익사업이 아니라 오락물일 뿐이다.”

매우 그럴싸한 말이지만 제작자의 도덕성에 다시 한 번 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정의의 사도 구드윈. 그는 방송국과 TV를 재판에 회부하고 이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 했으나 결국 NBC와 제리톨사는 퀴즈 스캔들에 말려들지 않고 한 개인의 희생을 끝으로 재판은 종결된다. 결국 미디어의 막강한 권력에 무릎 꿇고 만 것이다.

TV라는 방송매체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 한껏 재미를 느끼게 하는 오락성과 함께 여론 조작을 가능케 하는 힘과 그 힘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상업성이 늘 연쇄반응 한다. 따라서 TV라는 매체가 도덕성을 지니지 못한다면 인간 소외의 비극을 낳게 될 것이다. TV 및 언론의 이면을 감시하고, 위와 같은 폐해를 막기 위해선 시민이 바로서야 한다. 시청률의 신화를 믿게 하는 건 그들이 아니라 시청자 바로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석미화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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