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3년 09월 2003-09-01   1549

활짝 웃는 영정사진

아침마다 신문 펼쳐들기가 두렵다. 연일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는 자살 기사들을 보면 아침부터 긴 한숨이 새어나온다. 살아남은 자들은 자살할 각오로 살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아직 죽음을 결심할 만큼 힘든 상황이 닥치지 않았기에 가능한 말일지 모른다. 한 사람의 죽음은 죽은 자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기도 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을 점검하게 하는 계기도 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시대나 지역에 따라 다르다. 유럽에서는 노인의 죽음보다 갓난아이의 죽음을 더 슬퍼한다고 한다. 살았더라면 아주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깝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노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대로 아프리카에서는 노인의 죽음을 더 슬퍼한다. 노인은 많은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부족의 나머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갓난아이는 세상을 경험해 보지 않아서 자기의 죽음조차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 정몽헌 현대아산회장의 자살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수많은 국민들이 그가 가는 길을 지켜보며 ‘불운의 황태자’라며 애도를 표했다. 그런데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짓고 있던 정 회장의 사진이 장례식 당일 침통한 표정의 사진으로 바뀌는 일이 있었다. 죽은 자의 얼굴이 너무 밝다는 주변의 의견에 따라 사진을 바꿨다는 후문이다. 영정 사진은 죽은 자를 우리 기억에 남기는 마지막 얼굴이다. 그 얼굴들이 판에 박은 듯 똑같은 표정에 꾹 다문 입술이라는 것이 참 씁쓸하다. 활짝 웃는 영정 사진을 쓴다면? 그가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남기면 어떨까. 사진뿐만 아니라 장례식 자체가 즐거운 시간으로 변했으면 좋겠다. 그와 함께 보내는 마지막 시간 아닌가.

우울한 음악 대신 그가 평소에 좋아했던 노래를 함께 불러보자. 몸이 피곤하면 그가 좋아하던 영화를 틀어 놓고 함께 누워서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둘러앉아 그와 함께 했던 추억들을 꺼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거다. 생전에 그가 가장 좋아했던 사람, 음식, 책, 옷차림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겠다.

장례식장의 옷차림도 똑같이 검은 정장만을 고집하지 말자. 자신이 가진 가장 예쁜 옷을 입고 정성 들여 화장하고 가자. 죽은 자도 당신을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 되는 날이니까. 그게 아니라면 죽은 자가 평소에 좋아하던 옷을 입고 가자.

컨셉이 있는 장례식을 만드는 건 어떨까? 꽃을 좋아했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꽃을 한 송이씩 들고 나타나거나 꽃무늬 옷들을 골라 입고 가는 거다. 만화를 좋아했다면 캐릭터가 그려진 얼굴 가면을 쓰고 장례식장에 가자. 어쨌든 그가 웃으면서 하늘로 갈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

방명록은 부의금을 낸 사람 명단을 기록하는 게 아니라,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기는 공간으로 바꾸자.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를 보내는 날 관속에 함께 넣어주자. “철수야 하늘에 가서는 좋아하던 술 실컷 마셔라” “그곳에서는 꼭 첫사랑을 이루세요” “그 날 화냈던 거 정말 미안했어요” “사실은 당신을 사랑했어요” “빌려준 돈 안 갚은 거 알지? 하늘에서 만나면 꼭 갚아라” “사실은 나 성형수술 했었는데, 몰랐지?”

살아있는 자들은 해마다 자신의 유서를 써두는 게 필수다. 유서에는 가족이나 친구, 혹은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뿐 아니라 자신의 장례식에 쓸 영정사진이나 틀어둘 음악까지 꼼꼼하게 적어두자. 자신이 가장 고통스러웠을 때의 사진이 장례식에 걸린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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