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4년 07월 2004-07-01   1219

군비증강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인가?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제기하는 군비증강 논리는 또 다른 이면에서 군비경쟁과 대립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군비증강 논리가 담고있는 문제점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주한미군 감축을 계기로 국방부는 군비의 대폭적 확장을 꾀하고 있다. 주한미군 감축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국방부는 자체 추산 현재 GDP의 2.8%에 달하는 국방비를 3.2% 이상으로 증액해 수년간 집중투자하지 않으면 심각한 안보누수가 발생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국방부의 이런 주장은 어제오늘의 주장이 아니다. 주한미군 감축이 가시화되기 전인 김대중 정부시절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불러대는 국방부의 ‘18번’이다.

장기적으로 미군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적 국방력 건설을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군비를 지출해야 한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군비증강이 과연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 줄 지 아니면 더 큰 갈등과 긴장을 가져올 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자주국방의 이름으로 어떤 무기를 사들이고자 하는 것인지도 그냥 지나칠 일은 아니다.

한반도에서 안보불안을 얘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상황이다. 그래서 정부와 군은 언제나 북에 대해서만큼은 억지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전력상의 우위를 확고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두 가지 쟁점이 생기는데 북이 가진 전력은 도대체 어느 수준이며 북의 오판을 막을 ‘억지력’의 수준은 어디인가 하는 점이다.

국방부는 통상 북과 남의 전력을 비교할 때, 무기 대수나 병력수로 비교하곤 하는데 여기에는 커다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무기의 성능이나 군수지원능력 등은 질적으로 비교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전의 핵심이랄 수 있는 공군력이나 해군 전력 면에서 남한은 북한을 앞지른 지 오래다. 한편, 북한의 위협으로 종종 거론되는 것이 휴전선 인근에 배치된 장사정포의 파괴력이다. 장사정포 사정거리는 수도권을 ‘불바다’로 만들 수도 있다는 거다. 그러나 위협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 장사정포의 일시적 우위는 북이 선제공격을 할 경우에 한해 실현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경우에도 북이 휴전선 인근 지하에 있는 장사정 포대를 지상으로 배치하는 과정에서 대응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작전을 시도하는 북한 자신은 전방은 물론, 후방 전체가 쑥대밭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북이 핵이나 탄도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안심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북한이 핵 같은 이른바 대량살상무기에 집착하게 된 이유가 주한미군과 남한과의 재래식 군비경쟁이 불가능하게된 80년대 이후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이 자체가 대책 없는 군비경쟁의 부작용인 셈이다. 게다가 어느 나라도 핵무기나 탄도미사일을 선제공격용으로 사용하는 나라는 없다.

한편, 남북 군사력의 객관적 비교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이른바 억지개념 그 자체를 재검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억지론’은 냉전시대에 개발된 안보개념인데 상대방에게 침략행동에 따른 위험과 비용이 그러한 행동을 통해 얻는 이득보다 더 크다는 것을 확신시켜 줌으로써 침략행위를 단념시킨다는 이론이다. 억지론은 필연적으로 군비우위를 지향하게 되는데 문제는 억지론이 극단적 대립과 경쟁적 군비증강의 악순환, 즉 안보딜레마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한반도이다. 남한은 현재 북한에 대해 압도적 우위를 유지한다는 ‘절대억지’전략에 따라 군비증강을 꾀하고 있다. 국방부는 한반도는 종심거리가 짧고 특히 수도권이 휴전선에 인접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므로 전면전이 발발하면 수도권의 대규모 피해가 불가피하므로 완벽하게 봉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국방부가 주장하는 한반도의 특수성 자체가 절대억지론의 한계와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 준다. 남한이 첨단 재래식 무기를 통한 압도적 우위에 집착할수록 북한은 비대칭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값싼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나갈 가능성이 높다. 전형적인 안보딜레마 상황이 재연되는 것이다. 국방부가 강조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이야말로 남북간 상호의존관계를 증진시키지 않고서는 절대로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해답은 군비경쟁이 아니라 신뢰구축이다.

북한위협론이 설득력이 적어지자 정부와 국방부는 군비증강의 근거로 ‘미래의 잠재적 위협’을 내세운다. 여기서 ‘미래의 잠재적 위협’이란 주로 주변강국의 위협을 의미한다. 그러나 주변 군사강국들을 상대하기 위해 군비를 증강시켜야 한다는 논리는 매우 위험하다. 마치 북한이 한국에 대해 군비경쟁에 한계를 절감하듯 남한도 주변국에 대해 군비경쟁을 부담스러워 해야 할 처지이다. 따라서 안보딜레마를 유발할 군비경쟁 대신, 평화적 관계형성을 통해 지역적 차원의 군비축소와 통제를 합의하는 협력안보, 공동안보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혹자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미국의 동북아 균형추 역할에 기대어 장기적으로 미국의 군사력의 우산 속에 생존하는 것이 실리를 추구하는 자세라고 주장한다. 일견 그럴 듯해보인다. 그러나 미군의 동아시아 군사전략이 매우 공세적 팽창적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군이 일본과 한국을 지역동맹으로 묶어 이 지역에 형성하려는 군사력 건설방향은 한반도의 평화와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이른바 MD다. MD(미사일 방어체제) 관련 무기체계는 방어적 무기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공세적 무기이다. 적의 공격을 받지 않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 가능토록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동북아지역미사일방어체제를 중국을 겨냥해 구축하고 있다. 미국의 MD구상에 편입되는 것은 따라서 중국을 잠재적 적국으로 규정하는 배타적 동맹체제에 편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미국의 MD구상 참여에 대해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런데 국방부는 한국형미사일 방어방 구축과 정보전력 확보를 위한 명분으로 이지스(AEGIS)함과 스탠다드 미사일(탄도미사일 요격), AWACS(공중조기경보통제기), PAC-3(중거리 미사일요격 미사일) 등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의 무기는 한반도가 MD 체제 참여하는데 필수적인 하위 체계들이다. 이 시스템들이 딱히 대북 억제수단도 아니라는 점에서 의혹은 증폭된다. 남한에 대한 북한의 주요 위협무기는 탄도 미사일이라기 보다는 장사정포 또는 요격이 불가능한 프로그 미사일(소형단거리미사일)이다. 따라서 PAC-3 등의 고성능 요격미사일이 대북한 방어에 필요한 것은 아니다. 반면, 만약 이들 무기도입이 미국의 대중국용 미사일 방어체제와 연결된다면 이는 동북아 군비경쟁을 촉발시키고, 한반도를 미국의 대중국 전진기지화함으로써 도리어 한반도의 안보위협을 가중시키게 될 것이다.

군비경쟁으로는 결코 한반도 평화를 지킬 수 없다.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