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0년 05월 2020-05-01   1101

[특집] 인류 공통과제로 떠오른 공공의료

특집_우리는 왜 의료영리화를 반대했나

인류 공통과제로 떠오른
공공의료

 

글. 조승연 인천의료원 원장 

 

 

지난 1월 19일, 공항검역소로부터 ‘우한폐렴’이 의심되는 환자가 인천의료원으로 왔다. 국내 1호 확진자로 기록된 이 외국인 환자가 완치하여 감사의 손편지를 남기고 본국으로 돌아가던 당시만 해도 이 신종질환이 세계적 대유행이 되리라는 예측은 소수의견에 불과했다.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세계보건기구WHO가 ‘COVID-19’라고 명명한 신종 감염병의 팬데믹이 선언됐고, 이제는 사상 초유로 감염병에 의한 세계대공황이 예견될 정도로 전 세계에 비관적 전망이 가득하다. 

 

같은 질병이 나라마다 양상이 다른 이유가 궁금하다. 유전자, 기후, BCG 백신 접종유무, 음식, 관습과 문화의 차이를 주요 요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사스 등 치명적 감염병의 주된 피해자였던 아시아 국가들은 비교적 잘 대응하고 있다. 중동 밖의 유일한 메르스 확산국인 우리나라도 이번에는 코로나19 대응의 모범사례가 되고 있다. 최고의 의료수준을 갖춘 미국이 최다 환자와 사망자를 기록하면서 체면조차 버리고 진단키트, 인공호흡기는 물론 마스크까지 구하려 애쓰고 있다. 공공의료의 최고단계라는 국가의료서비스NHS가 무색하게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의 피해가 엄청나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병상을 보유한 독일이 비교적 선방한다는 이유로 병상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병상을 가진 일본이 허물어지고 있다.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은 메르스의 뼈아픈 반성의 결과 

대한민국이 코로나19 대응의 본보기가 되어 갈채를 받고 있다. 하지만 낮은 공공의료 비중과 적은 보건의료예산으로 볼 때 의료체계의 수준이 높아서 얻은 성과는 아닌 것 같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2015년 메르스 사태의 경험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우선, 정부가 기민하게 대응했다. 환자의 발생과 동선을 은폐하여 초래했던 방역실패에 대한 문책의 뼈아픈 경험은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투명하고 민주적인 정보 공유방식을 선택하게 했다. 어설픈 감염병 대응조직을 정비하고 대응지침을 마련했다. 끝없이 쌓이는 검체檢體를 처리하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밀접접촉자 관리를 위해 밤을 새운 공무원들의 동력 또한 메르스 사태 당시 혹독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흔들림 없이 원칙을 지키는 리더십을 발휘한 점은 높게 살 일이다. 

 

다음으로는 첫 환자부터 대구·경북 지역의 환자 대량발생 때까지 주어진 한 달가량의 여유였다. 진단키트 확충, 병상과 의료장비 확보와 더불어 중국 상황을 관찰 분석하며 대응방안을 모색할 시간을 벌었다. 지속적이고 강력한 봉쇄전략과 더불어 급격한 환자 증가를 완만한 유형으로 바꾸어 우리 의료체계가 감당할 여지를 가질 수 있었다. 

 

셋째, 엄청난 부담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공공병원을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지정하고 입원 환자를 전격 소산시킨 결정은 탁월했다. 감염병전문병원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대구·경북의 부족한 병상을 해소했고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었다. 

 

넷째, 민간병원들의 대응도 훌륭했다. 메르스 사태 때 관리 소홀의 책임을 지고 삼성의료원이 입었던 재정적 손실과 불명예를 지켜본 경험과 정부의 손실보상 약속에 힘입어 미미한 환자발생 징후에도 즉각 진료를 중단하고 의료진을 격리하는 등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어느 나라보다도 의료진 감염이 적었던 것 또한 민간병원의 적극적 협력 덕분이고 의료시스템 붕괴를 막은 공신이었다. 또한 상급병원들이 위중환자 치료를 맡아 거점공공병원은 진료 부담을 줄이고 안정적 환자 관리가 가능했다. 

 

다섯째, 아이러니컬하게도 OECD 평균의 2.6배에 달할 정도로 과잉 공급된 병상이 넘치는 감염환자를 수용하는 데 기여했다. 일반 환자가 급감하자 일선 병의원에서는 남는 의료 인력을 감염병 현장에 투입할 여유가 생기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국난 때마다 발휘하는 시민정신이 있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자원한 전국의 의료진 덕에 턱없이 부족한 현장 인력을 보완하고 환자를 돌볼 수 있었다. 사재기를 볼 수 없고 공권력에 의한 강제 없이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놀라운 시민의식은 세계인의 갈채를 받기 충분했다.  

 

반면, 의료복지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던 유럽의 피해가 의외로 심각했다. 안정된 공공보건의료체계 아래 1968년 홍콩독감 대유행 이후 반세기 동안 큰 감염병 재난이 없던 유럽에 평온이 깨졌다. 2008년의 세계금융위기 이후 10여 년간 계속된 공공의료분야의 예산삭감이 그 이유였음이 드러났다. 의료진의 사기저하와 해외이탈이 가속화되고 중환자실조차 필수시설과 장비는 낡고 부족해졌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할지라도 지속적인 투자 없이는 사상누각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공공의료기반이 취약한 미국과 일본의 피해는 아직 확산 일로에 있어 향후 귀추를 보아야 하겠지만 부족한 공공성을 보완하거나 뛰어넘는 민간영리의료의 장점을 보여주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월간참여사회 2020년 5월호 (통권 275호)

 

의료산업화와 영리의료에 가려진 보건의료의 공공성확보와 과감한 투자는 인류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병원이 수익보다 국민건강을 위해 일하게 하자

코로나 이후, 세상은 많이 바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인류세人類世❶는 지구에 생명이 탄생한 이후 여섯 번째의 대멸종기가 진행 중이고, 이 종말은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앤 드루얀의 경고가 섬뜩하다.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이 우리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의료산업화와 영리의료에 가려진 보건의료의 공공성확보와 과감한 투자는 인류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1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 창궐 이후 한 세기 만에 인류의 공통과제로서 보건의료문제가 담론으로 떠오르고 있다. 2018년 10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공공보건의료발전 종합계획은 생명과 직결되지만 수익성이 낮은 필수의료 공급 부족으로 ‘거주지역’에 따라 사망률 격차가 발생하고 의료 공공성 저하가 생기는 분야를 공공의료강화를 통해 해결한다고 하였다. 

 

필수의료서비스를 ①응급·외상·심뇌혈관 등 중증의료 ②산모·신생아·어린이 의료 ③재활 ④지역사회 건강관리(만성질환, 정신, 장애인) ⑤감염 및 환자안전 등으로 정의하였다. 감염병은 보건과 의료를 아우르는 필수의료서비스의 핵심이다. 각 나라의 여건, 즉 ‘거주여건’에 따라 감염병의 양상이 다른 이유는 공공의료수준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만하면 안 된다.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지금 공공의료의 여건으로는 천운이 따른 성과에 가깝다. 민관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재난사태에서 필수적인 리더십은 공공의 우월한 자원과 능력에서 나온다. 갖추고 늘리고 키워야 한다. 보고서에만 존재하고 말로만 하는 공공의료 강화가 아니라 실제적인 행동에 나설 때가 왔다. 보건당국의 위상을 올리고 수익보다 국민건강을 위해 병원들을 일하게 하자. 미적대던 감염병전문병원 설립도 박차를 가하고 70여 군데 지역책임의료기관 지정도 서두르자. 공공의대를 설립하고 턱없이 부족한 공공분야 의료인력을 확충할 근본적인 방안을 모색하자. 의료전달체계를 정비하고 필수의료는 국가가 책임지도록 한번 해보자. 

 

코로나19가 종식된다고 해도 제2, 제3의 코로나는 또다시 우리를 노릴 것이다. 탄탄한 공공보건의료는 교활한 미생물의 공격을 막아 낼 가장 센 예방약이다. 가까운 시기에 코로나19의 성공적 극복으로 높아진 대한민국의 위상이 완벽한 공공보건의료시스템으로까지 승화하여 세계인의 진심어린 존경을 받는 날이 오기를 꿈꾸어본다. 선거도 끝났고 이제는 일할 때다. 

 

❶  미국 생물학자 유진 스토머와 노벨 화학상 수상자 폴 크뤼천이 제시한 새로운 비공식 지질시대. 인간 활동에 의해 지구의 자연 환경에 유의미한 변화가 초래된 시기를 의미한다

 

 

 

특집 우리는 왜 의료영리화를 반대했나 

1. 의료영리화 저지 역사와 공공의료 강화 우석균

2. 인류 공통과제로 떠오른 공공의료 조승연

3. 코로나19와 세계의 공공의료 김양중

4. 공공병원 확충의 첫 걸음, 진주의료원 재개원 이조은

 

>>[목차] 참여사회 2020년 5월호 (통권 2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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