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0년 05월 2020-05-01   878

[여는글] 단순 소박한 삶

여는글

단순 소박한 삶

 

“사람은 낯선 규칙 앞에서 비로소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이 문장을 헤아려보면 사람들은 반복되는 익숙한 규칙 속에서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예를 들어보자. 치아에 병이 생겨 심한 고통을 받게 되면 그때서야 내 몸에 치아가 있음을 새삼 알고 치아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된다. 미세먼지와 황사가 하늘에 가득하면 청정한 대기와 숨 쉬는 일의 고마움을 생각한다. 

 

지금도 진행 중인 코로나19의 돌발적 상황도 어쩌면 매우 낯선 규칙이라고 할 수 있다. 개개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이 황당한 사태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여러 가지를 자각한다. 전염병이 인터넷과 같은 연결망을 가지고 시공간을 종횡하며 매우 빠른 속도로 전파되는 위험을 느낀다. 개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또 국가의 민주성과 정책이 개개인의 질병 치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다른 나라의 의료정책과 비교하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이번 코로나19의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의료 영리화(민영화)를 전반적으로 실시하고 있었다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다. 

 

이렇게 우리는 낯선 규칙이라는 현실에서 비로소 위험과 위협을 동시에 절감하게 된다. 또 생각하게 된다. 거창한 경제 시스템도 집단 전염병 앞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을. 기후위기가 급격하게 현실화되어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식량이 위험에 처한다면 AI와 나노 기술도 무력하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인간은 쌀과 채소를 먹고 살 수 있는 것이지 결코 최첨단의 반도체를 목구멍에 넣을 수는 없다는 사실도 상상할 수 있다.   

 

현대문명은 각종 집단 재난이 항상 잠복해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러한 재난이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고 쉽게 단정한다. 물론 천재지변이라 일컬어지는 재난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의, 선순환 생태계를 파괴하는 무분별하고 과잉된 인간의 탐욕이 부른 재앙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인재人災가 천재天災를 부르는 문명의 업보業報를 읽어내야 하지 않겠는가? 업보는 심리적 문제만이 아닌 정밀한 과학이기도 하다.

 

내가 깃들어 살고 있는 공동체에서는 매일 아침 <기후위기와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발원문>을 대중이 독송하고 있다. 내용은 이렇다. 지구별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들의 안녕을 기원한다.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이 좋은 세상에 태어나기를, 의료진과 공직자들이 안전하기를, 불필요한 두려움과 혐오를 벗어나 병자와 약자들의 고통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 그리고 기후변화와 전염병으로 온 세상이 신음하는 것을 보면서 모든 생명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새긴다. 또 지구환경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망가져 회복력을 잃으면 어느 누구도 건강한 삶을 이어갈 수 없음을 새긴다.

 

이런 통찰과 함께 다음과 같이 삶의 방식을 바꾸겠다고 다짐한다. 단순 소박한 살림살이에서 뭇 생명의 안녕과 평화가 시작됨을 잊지 않겠다고, 추위와 더위는 담담하게 맞이하고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겠다고 다짐한다. 자주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비닐과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육식을 자제하고 동물의 권익을 보호하고, 농업·농촌의 가치를 지켜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사는 길을 열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맺는다

 

“이윤과 성장보다 뭇 생명의 평화와 행복을 우선하는 세상을 위해 한 몸 한 생명이 되어 함께 나아가고자 하오니 저희들의 좋은 뜻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소서!”

 

이제 코로나19가 마중물이 되어 ‘문명 전환’의 화두가 더욱 절실한 시대, ‘단순 소박한 삶’이 주는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글. 법인 스님 월간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전 참여연대 공동대표 

16세인 중학교 3학년 때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이라는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과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을 지냈으며,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에서 공부하고 있다.

 

>>[목차] 참여사회 2020년 5월호 (통권 2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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