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음반매장에 갔다가 동요 테이프 몇 개를 샀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어릴 때 들었던 그 노래들을 지금 다시 들으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요즘 어린이들도 우리가 불렀던 노래들을 알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바람이 머물다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나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를 흥얼거릴 때면 스스르 잠이 들곤 하지 않았던가. 조금 더 커서는 ‘꾸러기’나 ‘어른들은 몰라요’를 부르며 동심의 세계를 뽐냈다. 그렇지만 기대에 가득 차 틀어본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은 이미 우리의 노래가 아니었다. 관광버스나 나이트클럽에나 어울릴 듯한 빠른 리듬이나 요란한 기계음이 가미된 편곡에 서둘러 버튼을 눌러버렸다. 아이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인기가수 흉내를 내는 것처럼 동요도 어른 노래를 흉내내고 있었다. 그러나 작곡가 백창우 씨를 만나자 이런 안타까운 현실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를 환하게 하는 것
“음악을 만들어 오는 동안 모든 것을 접고 누구도 만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지나온 삶을 돌아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세상에 다시 나온다면 어떻게 살까? 아이들 음악을 만들었을 때가 생각나더라. 그때 내 삶이 제일 환했다. 내가 가장 기쁠 수 있고 환해질 수 있는 일은 아이들 노래를 만드는 일이었다.”
백창우 씨는 시인이자 작곡가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음유시인이고 어린이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다. 『사람하나 만나고 싶다 1, 2』나 『겨울편지』 『길의 끝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등 그의 시집들이 한동안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20대에겐 윤설하의 ‘벙어리 바이올린’의 작곡자, 30대 이상에겐 임희숙의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를 말하면 무릎을 탁 친다. 노래마을의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줌 될 수 있다면’ ‘나이 서른에 우린’도 그의 작품이다. 안치환이나 김광석의 앨범에서도 그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그런 그가 요즘은 어린이 노래 만드느라 바쁘다. 노래도 만들고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기도 한다. 우리 근현대시 60여 편에 곡을 붙여 ‘우리 좋은 시노래’ 앨범도 제작하고 있다. 무엇이 그를 노래와 시로 이끌어 갔을까.
“아버지는 북한에서 교장이었고 어머니는 신학공부를 했던 신여성이었다. 그러다 사건이 생겨 북한에서 넘어왔다. 의정부에 터를 잡았다. 정착을 하지 못해 이사를 많이 다녔다. 초등학교만 5군데를 다녔으니 알 만하지 않겠는가. 한곳에 오래 있지 못했고 익숙한 곳이란 내게 없었다. 고립되고 혼자였다. 더구나 자식 많은 집의 늦둥이로 태어났다. 나는 신도시에서도 살아봤고 기찻길과 산과 강도 많이 봤다. 이런 경험이 음악하고 시 쓰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시도, 음악도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닌가.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비밀이 많았다. 아버지는 신앙인이라서 남들 볼 때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셨는데 내 앞에서는 몰래 담배를 피우시곤 했다. 어린 나이에도 그걸 사람들에게 말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비밀이 아버지와 내 사이를 더 끈끈하게 했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셨다. 예고된 죽음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견딜 수 없는 마음을 시와 노래로 분출했다. 자연에 대한 경험이나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나를 깊게 만들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북한 어린이들은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 궁금해졌다.
“북한의 동요? 알고 싶은데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직접 간 게 아니라 다 전해들은 것이니까. 여기저기 알아보면서 조금 덜 자본주의적이라는 느낌은 들었다. 자연환경 때문에 삶에도, 노래에도 공간이나 시간이 있다. 그게 예술적 정서나 감정을 생기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게 힘들다. 우리나라는 자연도, 음악도 모두 프로그램적이다. 캠프에 가서만 자연을 접하고 음악교육을 통해서만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북한은 예술교육을 중시하고 있고 서구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에도 차이가 있다. 현재 우리는 우리 음악 위에 서구음악이 들어와 융합되는 게 아니라 서구 음악이 들어오면 우리 음악은 사라진다. 빠른 기계음악 같은 동요를 ‘목마노래’라고 부른다. 아저씨들이 동네에 말 타는 기계를 가지고 와서 트는 노래 말이다. 그런 노래에는 공간이 없다. 노래가 빠르게 이어져 듣는 사람이 들어갈 곳이 없다. 노래에도, 삶에도 여백이 중요하다. 그래야 생각하고 창의력이 생긴다. 요즘 아이들과 함께 해보면 그걸 느낀다. 시키는 것은 잘하는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든다. 자연과 음악이 같이 가야 하는데 그게 따로 놀기 때문이다.”
작은 운동이 중요하다
백씨는 이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어른들이고 그중에서도 부모와 대중매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이들에게 좋은 동요를 들으며 자라게 하려면 어른들도 좋은 음악을 듣고 느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부모들은 애들이 학원 끊으면 큰일날 듯 하면서 음악이나 자연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먹고 입고 공부하는 것과 같이 보이는 일에만 열성을 쏟는다. 감수성과 정서가 중요하다. 아이가 자라며 좋은 품성을 갖게 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그건 당장 나오지 않는다. 쌓여야 한다. 여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크게, 갑자기가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작은 일에서부터 출발한다. 대중매체도 문제다. 아이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사춘기의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미디어는 그것을 막고 있다. god가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보여주는 방송이 송창식이나 조동진, 김민기와 정태춘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열린 음악회에서만 그들을 볼 수 있다. 요즘 주류음악을 보면 아티스트는 없고 기술자만 있다. 주류음악에는 창조성이 없다. 앨범을 발표해도 노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인터뷰 기사들을 보면 안타깝다. 김민기가 내놓았던 아이들 음반에는 얼마나 명곡이 많은 줄 아는가. 그러한 정보를 미디어가 차단하고 있다.”
동요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 모든 음악에 여백이 없고 생각할 공간을 주지 않는 것을 아쉬워하는 백씨는 그래서 더 어린이 음악에 애착을 갖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운영하는 노래작업실 개밥그릇(http://100dog.co.kr)이나 어린이전문 음반사 삽살개, 어린이 노래모임 굴렁쇠에서는 잊혀진 우리 노래와 아이들의 삶과 꿈이 담긴 창작동요들을 들을 수 있다. 좋은 노래에 굶주린 것은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백씨는 자작시 ‘여보게, 그렇게 말하지 말게’에서 세상을 탓하지만 말고 작은 노력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여보게, 그렇게 말하지 말게/사는 게 다 그런 거라고/그렇게 세상 다 산 얼굴로/아무렇게나 말하지 말게/별들 가깝게 내려앉는 깊은 밤/지붕에 올라가 하늘을 보게나/그대 이 땅에 나서 애써 이뤄내야 할 것이/얼마나 많은지 한번 생각해 보게나/아주 작아 보이는 일들의 소중함을/잊어서는 안 되네/살아있다는 건, 늘 새롭게/눈뜨는 것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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