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8월 2002-08-10   1339

노조 파괴 공작에 다시 거리로-발전 노조 파업 그 후

월드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잊게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아들문제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한 것도 국민들이 우리 선수들에 열광하고 있을 때다. 독일전이 있던 날 발전노조 이호동 위원장이 강제연행 됐지만 제대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거리에 붉은 물결이 넘실대고 “대∼한민국”을 외칠 때, 한쪽에선 ‘대한민국’이 이럴 수가 있냐고 탄식했다. 발전노조 조합원들은 그래서 독일전이 있던 날을 그 어떤 경기보다도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고 증언했다.

지난 2월 22일부터 38일간 진행됐던 발전노조 조합원들의 민영화 반대를 위한 파업. 그후 파업을 철회하고 조합원들이 회사로 돌아가며 일단락된 것처럼 보이나 그게 아니었다. 파업기간 동안 행해졌던 수많은 인권탄압은 소리 없이 묻혔고 파업주동을 이유로 해고된 노동자들은 복직하지 못하고 있다. 조합원의 상당수는 복직했지만 월급을 가압류당하고 있다. 파업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올해는 텐트에서 죽으라는 모양이야”

“아이들은 학원부터 끊는다. 우리 집도 큰애만 학원에 다니고 있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1000만 원 넘게 쓴 집도 많다. 아이들도 예민해졌다. 아내들은 다시 일을 한다. 남편만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애들이 어린 집은 일을 나가지도 못한다. 동네사람들이 우리 상황을 알고 외상도 잘 해주고 물건값도 깎아준다. 해도 너무 한다. 애들은 커가는데 돈은 없고 죽을 맛이다. 파업했다고 월급 가압류하는 게 말이 되는가. 정말 너무하다. 나는 그나마 남편이 해고당하지는 않았다. 해고까지 당한 집들은 마음이 어떻겠는가.”(발전노조 인천지부에서 만난 한 조합원의 부인)

발전노조 인천지부는 7월 9일부터 인천지부 사택에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조합원들은 해고자 복직, 가압류 등 부당노동행위 철회, 전환배치 절대불가 등을 요구하고 있다. 복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169명의 조합원들이 월급을 가압류당해 왔고 13명은 아예 해고됐기 때문이다. 169명 중 3월 25일 이전에 복귀한 33명만 가압류가 풀렸을 뿐 나머지 사람들은 오늘도 가압류라는 공포에 시달린다.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4일째 되던 날 서강용 지부장이 경찰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왔다. 굳어 있던 조합원들의 얼굴에 모처럼 웃음꽃이 핀다. 퇴근길의 조합원들과 소식을 듣고 달려온 다른 지부 노조조합원들이 악수를 건넸다. 한 조합원이 천막 친 것을 보더니 “올해는 텐트에서 죽으라는 모양”이라고 말하자 모두들 쓴웃음을 짓는다.

가압류에 관한 상황은 인천지부만의 일이 아니다. 인권실천시민연대 등이 중심이 된 ‘발전노조인권실태 공동조사단’은 지난 7월 11일 발전노조 인권실태에 관한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발전노조 측은 2002년 2월 25일부터 5월 2일까지 총 회사 측 누계 손해금액이 425억7200만 원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를 근거로 회사 측은 노동조합과 노조간부 및 조합원을 대상으로 가압류를 신청했다. 1차(3월 9일)는 노조간부 109명을 대상으로 62억2500만 원, 2차(3월 15일) 파업참가 조합원 4917명을 대상으로 148억2000만 원, 3차(3월 22일∼3월 25일)는 사업소별 조합원 3928명을 대상으로 148억2000만 원을 신청한 것. 결과를 보면 1차는 확정됐으나 2차는 모두 기각됐다. 이처럼 2차에서 발전본사가 파업참가 조합원 전원을 상대로 서울지법에 신청하였다가 기각되자 전국의 사업소에서 분리하여 개별신청을 한 것이다. 이에 19개 사업소는 결정, 6개 사업소는 일부 결정, 8개 사업소는 기각됐고 1개 사업소는 취하됐다. 6월 24일 현재 가압류 결정된 조합원은 3149명 중 3월 25일 이전 복귀자 427명만 해제된 상태다.

파업노동자에 대한 이러한 대응방식은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청와대 비서관 회의에서 “불법폭력 노동운동을 용납해서는 안 되지만 구속만이 최선은 아니다. 불구속기소나 민사소송 등 여러 가지 방안에 대해 검토해 주기 바란다”고 지시한 것에도 드러난다. 이 지시는 신체적 구속 등으로 국제적 망신을 당하는 것보다 가압류나 손배소송으로 가족들의 생계수단을 신속하게 막겠다는 새로운 탄압방식이라고 인권단체들은 해석하고 있다.

시대착오적인 서약서 강요

인천화력 조합사무실에서 만난 조합원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어두웠고 줄담배만 피워대고 있었다. 기자들이 취재해 가도 신문에 나오지도 않는다며 취재를 거부하기도 했다. 난데없이 “처참하게 써달라”고 당부하는 이도 있었다. 다들 지쳐 있었다.

신현규 부지부장은 현장에서 이뤄지는 개별감사와 서약서 강요에 가장 분개하고 있었다.

신 부지부장은 “회사는 복귀한 조합원들에게 개별감사와 서약서를 강요하고 있다. 파업이 불법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말이다. 향후 그로 인한 민·형사책임도 감수하라고 했다. 개별감사는 업무감사와 분명히 달랐다. 개별감사에서 파업 찬반투표에서 찬성을 했는지 여부를 물었고 파업기간 동안 어디서 투숙했는지도 물었다. 파업을 통해 손해를 입었다고? 실제 손해는 없다. 생산시설 점거도 없었다. 임금협상과는 차원이 다르다. 파업기간 동안 전기가 끊어진 적이 있는가? 오히려 월급만 적게 나갔다. 업무 방해죄를 적용하고 있는데 파업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조합 활동이다. 해고 후 회사에 순응하면 복직시켜 준다고 한다. 해고자는 조합사무실에 나오지 않으면 우선 복직시킨다고 했다. 조합원들에게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준다는 차원이다. 현재 회사는 겉으론 조용해 보이지만 복귀한 직원들과 해고된 직원들 사이엔 갈등이 존재한다. 회사가 조장하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노사화해의 차원이 아니다.”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서약서 강요 등에 대해 조합원들의 입장은 단호했다. 홍용진 부지부장은 “하동의 경우 회사가 조합원들이 노조총회조차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례들이 보고됐다. 하동의 경우 376명 중 86명이 참석해서 총회가 무산됐다. 사택 가서 총회 참석하지 말라고 방송 틀고 참석하는 사람 체크했다. 일부러 출장을 보내기도 했다”며 회사의 이와 같은 졸렬한 행위에 조합원이 흔들리지 말자고 각오를 다졌다.

실제 이러한 행위들의 결과로 회사분위기는 삭막해졌다고 한다.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조합원과 해고자들이 식사를 따로 하거나, 함께 해오던 카풀을 끊기도 했다. 조합원과 가까운 행동들도 회사의 감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노사협의회는 해고자들은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회사 측이 피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신현규 부지부장은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발전노조 파업에서 얻은 교훈은 물리적인 폭력이나 구속보다 더 무서운 것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양심에 따른 행동을 감시하고 가족들의 생계수단을 위협하는 행동들은 노동운동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아이가 내가 출근하는 걸 보면 단결! 하고 인사한다. 나는 투쟁! 하고 답한다. 아이들이 이렇게 인사할 때나 흩어지면 죽는다고 노래부를 때 마음이 아프다. 어떤 조합원은 집회 가는 버스에 아내가 따라 올라타서 싸움을 벌인 적도 있다고 들었다. 나도 덜컥 해고자가 되는 바람에 대출신청에도 떨어졌다. 힘들다. 먹고살기 참 힘들지만 가압류는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가압류는 월급의 반을 떼이는 것이고 나중에 돌려 받을 수 있지 않은가. 적금 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정말 더 힘든 것은 조합원들과의 관계다. 회사가 조합원들에게 조합에 대한 불신과 의구심을 조장한다. 그게 힘들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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