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4월 2002-04-10   649

이인제를 밀어달라?

대전 대선감시시민옴부즈만 참가기


“갑시다! 빨리, 빨리, 서둘러.”

또 전화제보다. 민주당 경선 1주일을 앞둔 때부터 부쩍 제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녹음기 챙겼어? 카메라는?” 제보내용이 공지되기도 전에 몸부터 달려나간다.

“이번 건은 뭐야?”

지난 3월 15일 오후 5시 30분. 예정된 일정이 모두 취소됐다. 인력이란 인력은 죄다 긴급조로 편성돼 유성으로 달렸다.

“점심 건하고 같아요. 호텔에서 선거인단 모아놓고 밥 먹을 거래요.”

함께 출발한 옴부즈만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경선과 관련된 호텔 모임, 식사 제공. 모두 위법이다. 하지만 비공식 모임인 만큼 단순한 식사대접을 넘어서서 특정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큰 부정이 일어날 개연성이 컸다. 정확한 감시를 위해 녹취가 필요했다. 문제는 호텔 룸까지 어떻게 접근하느냐. 점심때도 들어설 수가 없어 증거확보에 실패한 터였다.

6시 10분경. 행사가 열리는 호텔에 도착했다. 1차 감시조가 행사장 3층 룸에 접근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참석자들이 서로서로 얼굴들을 알고 있는 터여서 낯선 얼굴이 끼어 드는 식으로는 행사장에 들어서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10여분쯤 후에 2차 감시조가 들어섰으나 역시 되돌아왔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 3차 시도. 다음은 어느 3차 감시조 참가자의 전언.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까지 들어섰지만 행사장에 들어서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닫힌 문틈으로 60∼70여 명의 선거인단이 모여 뷔페식을 하고 있다는 정도가 알 수 있는 내용의 전부였죠. 안에서 무슨 얘기를 하는 지는 고사하고 현장 사진을 찍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때 마침 행사장 옆방이 비어 있더군요. 호텔 직원에게 행사 참석자인양 가장하며 양해를 구한 뒤 옆방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리고는 칸막이 틈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며 기다렸죠. 잠복을 시작한지 40여분쯤. 유성구 송모 국회의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내 녹취기를 돌렸죠. 송 의원은 여러 차례 ‘이인제 후보를 밀어달라’고 수도 없이 반복했습니다. 증거를 확보한 후 행사장을 밀치고 들어가 송 의원에게 해명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송 의원은 ‘나 뿐만이 아니라 모두 다 이렇게 한다’고 항변했습니다. 그럴듯한 해명이 나올 줄 알았는데 실망했습니다.”

언론을 통해 공개적 감시조 편성을 알렸음에도 경선 당일인 3월 17일까지 대전 옴부즈만에 의해 적발된 부정선거 사례는 적지 않았다. 음식을 제공하며 은밀한 지지를 호소한 위 사례는 그나마 사소한 축에 든다. 지난 3월 16일 낮 민주당 공모선거인단이라고 밝힌 한 시민이 옴부즈만을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포장지도 벗기지 않은 선물이 들려 있었다. 한 선거운동원이 찾아와 특정후보를 지지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쥐어준 것이란다. 이 제보시민이 남기고 간 한 마디는 대전의 시민옴부즈만들에게 깊은 자괴감과 함께 보다 열심히 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를 안겨줬다.

“대선 후보를 직접 선출할 수 있다는 국민경선제에 매력을 느껴 선거인단을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내 개인정보를 각 후보에게 유출시켜 부정선거운동 자료로 활용되고 있는 선거관행을 접하며 선거인단 신청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심규상 대선감시시민옴부즈만 회원.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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