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4월 2002-04-10   970

차기전투기 X파일

혈세 수조원으로 쓰레기를 수입한다?


F-X란 Fighter X의 줄임말로 한국 공군이 추진하는 차기전투기 또는 차세대전투기 사업의 프로젝트명이다. 4조 원 이상이 투입되는 초대형 무기도입 사업인 차기전투기 사업 입찰에 참여하고 있는 기종은 미국 보잉사의 F-15K, 프랑스의 닷소사의 라팔(Rafale), 유럽연합컨소시움의 유로파이터 타이푼(Typhoon), 러시아의 수호이(Su-37) 등이다.

최근 이 F-X 사업은 기종선정과정의 외압시비와 평가기준 형평성 시비로 국민적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국 정부가 밀고 있는 보잉사의 F-15K 전투기가 성능과 가격 모든 면에서 다른 기종보다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구입하도록 하기 위한 내외의 압력이 거세다는 것이다. 게다가 다른 경쟁기종과의 변별력을 없애기 위한 모종의 평가기준 조작마저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시중에 떠돌던 이러한 의혹이 수면위로 부각된 것은 지난 3월 초 F-X 사업 평가팀장을 지낸 조주형 대령이 외압사실에 대해 모 언론과 인터뷰하면서부터였다. 그는 방송인터뷰에서 시험평가팀장으로 활동하는 동안 국방부 획득실장 등 주요 간부들로부터 “F-15K를 구입하지 않으면 미군이 철수할 수도 있다”, “F-15K의 결함부분은 국회보고에서 제외하라”, “핵심기술이전을 너무 많이 요구하지 말고 협상을 끝내라(F-15K는 핵심기술이전에 소극적이었다-필자)”는 등의 압력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라팔, 유로파이터, F-15K, Su-35

F-X 수주경쟁에 참가한 4개 기종은 2000년∼2001년 시험평가와 기술이전 협상의 단계를 거쳐 2002년 2월의 최종제안서 접수까지의 일정을 밟아 왔다. 시험평가는 2000년 하반기 시행되었는데 결과는 라팔, 유로파이터, F-15K, Su-35 순인 것으로 알려졌다. 라팔은 10여 개 시험평가 항목 중 모든 부문에서 우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평가팀장이었던 조 대령은 “차세대 전투기로 개발된 ‘디지털형 전투기’와 70년대에 개발된 ‘아날로그형 전투기’의 경쟁”으로 요약했다.

성능 외 에 문제가 된 것은 장기적인 후속군수지원과 기술이전 문제. F-15K는 미 공군이 2030년까지만 운용할 계획이어서 2030년 이후 후속군수지원문제가 따르며, 이미 미군이 추가도입 및 업그레이드를 포기한 상태여서 향후 성장잠재력이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한세대 뒤진 전투기의 치명적인 결함이다. 게다가 미국은 핵심기술 제공에서도 소극적인 것이 확인되었다.

시험평가 결과보고서는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국방부는 린다 김 스캔들 직후 열린 F-X사업의 설명회를 통해 획득정책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외쳐왔고 그 이후의 평가과정에서도 이를 강조해왔었다. 이대로라면 F-15K는 탈락할 가능성이 높았다. 조대령이 폭로한 외압시비는 이 보고서가 작성된 전후의 시기에 집중되고 있다.

시험평가와 기술이전 협상을 마친 후 국방부는 2002년 1월 최종적인 F-X평가 평가기준과 기종결정방식을 공개했다. 발표에 따르면 공군의 전투기 기종결정 방식은 2단계다. 1단계는 전투기의 △수명주기비용(35.33%), △임무수행능력(34.55%), △군 운용적합성(18.13%), △기술이전/계약조건(11.99%)에 대한 배점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만일 1단계에서 최고 기종과 그 다음기종간 우열의 차이가 3%에 미달하는 경우 기종을 결정하지 아니하고 2단계 평가로 넘어간다. 2단계는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한미연합작전과 군사적 협력문제), 국제관계에 미치는 영향(한반도 평화유지) △해외시장개척에 미치는 영향(수출/수입의 균형) 문제로 평가하게 된다. 문제는 2단계 평가에서 3가지 항목에 대해서는 ‘정책적’으로만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한미관계를 고려한 판단을 하겠다는 점에서 F-15K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이 평가기준은 곧 형평성 논란에 휩싸였다. 2001년의 기술이전협상 과정에서 군이 배포한 제안요구서는 무기성능과 기술이전 등 절충교역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런데 모든 평가를 마친 후 최종발표된 평가기준은 ‘가격’에 최대의 가중치를 두고 기술이전에 대해서는 최하위의 가중치를 두는 것으로 뒤바뀐 것이다. 협상과정에서 상당한 기술이전을 약속했던 유럽 기종 측의 반발이 ‘평가 후 평가기준을 고치는 일도 다 있느냐’며 반발하는 것은 당연했다. 일각에서는 F-15K가 가진 유일한 경쟁력이 가격이기 때문에 이렇게 배점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증폭되는 외압의혹

한편 논란의 와중에도 각 업체는 최종제안서를 접수했는데 또 다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예상을 뒤엎고 라팔 측이 F-15K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제안한 것이 밝혀진 것. F-15K 도입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이들에게는 매우 당혹스러운 결과일 터였다. F-15K는 성능, 기술이전, 가격 모든 면에서 다른 기종에 뒤쳐지게 된 것이다.

이즈음 국방부가 평가를 담당하는 각 평가단위에 하달한 공문 한 장은 또 다른 논란을 만들어 냈는데 이른바 세부요소별 배점방식을 60~100점으로 일원화하라는 공문이 그것이다. 라팔이나 F-15K가 공통으로 제안한 무기의 성능에 대한 배점방식으로는 0~100을 하든, 60~100을 주든 큰 상관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기술이전부문의 경우 ‘준다 아니면 안 준다’로 구분되는데 안 주는 기능에도 60점을 주어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문제제기는 설득력 있는 것이었다. 국방부는 이 공문이 이미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공청회와 설문조사를 거쳐 확정된 방침을 하달한 것이므로 논란거리가 될 수 없다고 해명하였지만 지난 연말에 실시된 이 공청회와 설문조사는 국방부의 말과는 달리 사실상 군 내부인사 위주로 진행되었고, 그나마 군 내부의 반론조차 제대로 수렴되지는 않았다는 지적이다. 문제의 그 공문 역시 군 내부에서 언론에 흘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압시비와 형평성 논란 속에 국방부는 4월까지 도입기종을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외압의혹과 평가기준의 형평성 시비가 해소되지 않은 채 기종선정을 강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F-X 추진일정의 연기와 국정조사권 발동을 촉구하고 있지만, 국방부나 청와대는 일정강행을 고수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분위기대로라면 F-15K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예고되는 제2의 율곡비리

최근 김종필씨는 한미연합방위를 위해서는 F-15K를 선택해야 한다고 마치 상식에 속하는 것인 양 발언하였다. 이는 앞으로 군이 내세울 유일한 명분이기도 하여 특별히 주목된다. 그러나 미군조차 추가도입을 거부한 기종을 4조 이상의 세금을 들여 도입해야 유지되는 한미군사동맹이라면 이것은 주권국간의 동맹이라 할 수 없다. 미군도 도태시킬 예정인 F-15K의 탈락은 보잉사의 문제일지언정 미국외교의 우선순위를 바꿀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이와 관련 “F-15K를 안 사면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해코지를 해올 지 모른다”는 것을 지나치게 경계하는 것도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일 수 있다. 지나친 저자세와 비굴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다른 무엇’을 감추고 있음을 의심할만하다. 율곡비리사건을 염두에 둔다면 무언가 제2의 율곡비리 청문회가 예비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청와대나 군 수뇌부가 간과하고 있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려 하는 것은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국민세금 4조 이상을 들여 10여 년 후면 애물단지로 전락할 전투기를 사서 동맹을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에 수긍할 국민은 많지 않다. 일반 국민들은 고사하고 군내부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이대로라면 제2·제3의 조주형 대령이 출현할 가능성도 높다.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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