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4월 2002-04-10   1586

광주 무등파크 호텔에서 생긴 일

기업체 출입기자 식사.술.잠자리 접대관행


지난 3월 15일 밤 11시 50분. 광주 무등파크호텔은 3월 16일 토요일 오후 2시로 예정된 민주당 광주경선을 치르기 위해 이인제 후보측이 묵은 숙소이다. 이인제 후보측은 7층에 자리를 잡았고, 복도엔 인기탤런트 S모 씨가 손에 깁스를 한 채 슬리퍼를 끌고 왔다갔다했다.

경선 관련 심야취재를 하기 위해 무등파크호텔로 들어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1층에 위치한 재즈바. 우연히 들어간 그곳에서 밤 9시부터 기자들의 술자리가 예약돼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테이블은 모두 세팅된 채 손님을 기다렸다. 그 예약은 S전자측이 했다고 재즈바의 직원은 말했다. 그는 정작 9시부터 오기로 한 손님들이 오지 않는다며 볼멘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러던 사이 호텔 로비로 취객이 하나 둘 들어왔다. 광주 최고급 무등파크호텔. 로비 오른편에 쌓여 있던 노트북더미에서 기자들은 각자 자기 것을 챙겨 어깨에 메고 프론트 앞에 섰다.

오늘밤 화끈하게 모셔라?

그날은 S전자 광주공장에서 생활가전담당 사장으로 취임한 H사장의 미래전략발표회가 있던 날이다. 행사를 마치고 S전자측은 기자들과 함께 광주시내 한 한정식집에서 식사를 한 뒤 단란주점에 들러 술을 마시고, 밤 11시가 넘어서 호텔로 들어오던 참이었다.

이때 S전자 C과장은 호텔 프론트에서 방 배정표를 들고 로비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에게 객실 키와 취침인사를 건넸다. 그는 프론트에 서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을 기다리며,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붉은색 볼펜으로 체크표시 했다.

이때 흰색 투피스에 갈색 긴 머리칼 20대 여성이 기자로 보이는 한 남자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S전자 C과장은 흰색 투피스의 20대 여성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밤 화끈하게 모셔라. 어? 오늘 좋은 밤 되십시오.”

20대 여성은 긴 말 대신 짧은 목례로 대신했다.

“알았지. 오늘 밤 화끈히 모시라고. 어?”

세 차례 반복되는 요구에 그녀는 육성으로 대답을 했다.

“네.”

뭔가 이상한 느낌을 주는 대목이었다. S전자 C과장은 왜 그 여성에게 그 기자를 ‘화끈하게’ 모시라고 하는 걸까? 의문이 증폭돼 따라붙기로 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두 사람은 S전자 C과장과 가벼운 인사를 나눴고, 그는 8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둘은 어색하게 먼 산을 바라본다. 8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후 두 걸음도 채 걷지 않고 기자는 그 남자에게 물었다.

“어디 소속 누구입니까?”

“당신은 누구죠?”

“저는 오늘 이곳에 취재를 온 기자입니다. 하도 이상해서 몇 가지 여쭈려고 하는데요.”

“나는 인터넷신문 기자예요. 아니 비즈니스맨이에요. 그런데 왜 그래요?”

“S전자직원이 왜 이 여성에게 선생님을 화끈하게 모시라고 하는 겁니까?”

“그건 프라이버시요. 당신은 누군데 자꾸 이러는 겁니까? 모든 알고 싶다면 5분 뒤 방으로 와요. 나도 샤워를 좀 해야겠어요.”

그 남자는 20대 여성에게 방키를 건네며 먼저 가 있으라 눈짓했다. 그녀는 자분자분 걸어 우측으로 돌아갔고, 그 남자는 엘리베이터 앞 쇼파에 앉았다.

그후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는 프라이버시나 참견하지 말라고 주장했고, 기자는 어느 소속사 누구이며, S전자측이 왜 20대 여성더러화끈하게 모시라고 얘기했느냐고 캐물었다. 그러나 그는 “참여연대와 나는 사상적으로 달라. 내가 탈선하는 현장을 보겠다는 거냐”며 “사생활 침해”라고 주장했다.

그 여성은 방열쇠를 들고 180×호 앞에 서 있었다. 분위기를 알아차린 여성에게 그는 가라고 손짓했다. 여성은 그와 생면부지의 사람이라며 본인은 호텔측으로부터 소개받아 여기 왔을 뿐이라고 말한 뒤 사라졌다.

달나라에서 오셨습니까?

좀더 구체적인 상황을 알고자 기자는 로비로 내려가 S전자 홍보실 K상무를 만났다.

“오늘 행사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게 S전자는 일체의 편의제공을 다 하는 겁니까?”

“아니, 달나라에서 오셨습니까? 다른 기업은 그렇지 않는데 마치 S전자만 그렇다고 쓰실 건가요? 이런 거 취재하려면 정치권, 다른 기업 다 취재해서 쓰세요. 마치 S전자만 그런 것처럼 하지말고.”

“이 호텔 1인실 방값이 12만1000원이던데, 이 비용도 다 S전자가 내는 건가봅니다.”

“1박2일짜리 행사예요. 아니 달나라에서 오셨냐구요. 그럼, 참여연대는 S전자가 주관한 행사에 와서 음식 안 먹고 갑니까? 음식값이 더 나옵니다.”

“음식값은 얼마나 되는데요?”

“…….”

이날 행사에 참석한 기자는 총 23명. 이 호텔의 1인실 가격은 12만1000원. 호텔비만해도 278만3000원이다. K상무의 말대로 호텔비보다 더 비싼 음식값과 단란주점 술값을 더하면 S전자측에서 기자들에게 쓴 비용은 그냥 봐넘기기 어려운 수준에 이른다.

이 호텔의 객실팀장 백수하 씨는 “이날 계산은 S전자직원이 카드로 했다”고만 말할 뿐 더 이상의 정보는 고객비밀상 얘기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서울로 돌아온 뒤 남자는 경제전문TV S전자 출입기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우선 얘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고, 두번째로 그날 개인적으로 이질적인 행동을 한 것인데, 그게 문제가 되느냐?”며 본인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말라고 큰소리쳤다. 호텔비는 본인이 계산하지 않았으므로 S전자측이 했을 테고, 그 비용도 S전자측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취재는 회사에서 주는 취재비를 가지고 취재하는 경우도 있고, 편의제공을 받으면서 하는 취재도 있다”며 “편의제공 문제는 기자의 가치관에 따라 판단할 문제”라고 일축했다.

S전자 C과장은 무엇보다 “사장님을 모시고 있는 입장에서 이런 취재에 응하는 게 불편한 감정이 든다”며 “그날 술이 취해서 그런지 ‘화끈하게 모시라’고 말한 기억이 없다”며 “술을 마시면 원래 기억이 전부 나는 것은 아니”라고 얼버무렸다.

취재는 기자가 기사를 쓰기 위해 각종 자료를 모으러 다니는 일이다. 그런데 취재를 이유로 식사와 술자리, 잠자리를 대접받고, 또 그런 일을 관행으로 알고 지낸지는 꽤 오래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 관행이 옳은 일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관행을 문제삼는 것 자체를 두고 ‘달나라에서 오신 분이냐’고 묻는 현실이라면 이 참에 이런 문제는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켜 한번 토론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쉽게 이런 ‘접대관행’이 해결되리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현장이 목격된다면 침묵해서야 되겠는가.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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