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2년 01월 2002-01-01   711

DJ 임기말 경제정책 감상법

최근 필자에겐 묘한 버릇이 하나 생겼다. 무슨 일이 터지면, 5년 전에 어떤 일이 있었나 확인해보는 버릇이다. 그러면 놀랍게도 5년의 시차를 두고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임기 말(레임덕) 현상이다. 정치의 임기 말 현상에 대해서는 필자가 신문에 나는 것 이상으로 아는 것이 없으니 생략하고, 다만 경제정책의 흐름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5년 전, 그러니까 1996년 말 이맘때 경제정책 최대의 이슈는 노동관계법 개정이었다. 노동계의 3禁(복수노조 금지, 제3자 개입 금지, 노조의 정치활동 금지 등) 폐지 주장과 재계의 3制(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변형근로제) 도입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 채, 노사개혁위원회를 통한 노동관계법 개정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 결과는? 민주노총이 탈퇴한 상태에서 노동계와 재계의 주장을 절충한 공익위원안이 만들어지더니, 이보다 후퇴한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되더니, 그보다 더욱 후퇴한, 즉 노동계 주장은 온데간데없고 재계 주장만 담은 법안이 12월 26일 새벽에 날치기 통과되었다. 여당 의원들은 정말 부지런하다. 재계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5년 후 지금의 상황은 어떤가.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주5일 근무제 도입(근로시간 단축) 문제의 논의 과정을 보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5년 전에 짜놓은 각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물론 여소야대 정국에서 여당 의원들이 크리스마스 다음 날 새벽에 집결하는 수고를 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계가 섭섭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통과시키지 않는 것이 재계의 이익이니까.

또 다른 예 한 가지. 5년 전 YS정부는 국책연구기관을 총동원하여 ‘21세기 국가과제’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10년 후 한국의 비전을 제시한다는 것이 목표였다. 5년 후인 지금 DJ정부 역시 국책연구기관을 망라한 ‘2011 국가비전팀’을 운영하고 있다. 경제정책 쪽을 보면, 이른바 ‘기업활동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각종 규제의 완화를 강력하게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

50년 만의 정권교체를 통해 여야가 뒤바뀌었고, 그 중간에 ‘6·25 이래 최대 국난’이라는 IMF사태를 겪었지만, 두 정권 모두 일하는 모양새가 어찌 이리도 똑같을까. 두 정권의 차이점을 뛰어넘는 이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재계의 요구’에 있다. 임기 말에 이르면, ‘정권은 유한하고, 재벌은 무한하다’라는 속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이것이 경제정책에서 5년의 시차를 둔 쌍둥이를 보게 하는 유일한 원인이다.

더군다나 경제상황 역시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으니, 재계의 요구를 받아 경기부양과 규제완화의 필요성을 주창하는 정책관료의 머리 속에 새로운 고민이 있을 리 없다. 하긴 정책관료의 사고방식은 5년 전이 아니라 30년 전과 비교해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여권의 어느 인사가 대통령 경선 출마를 선언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왜 재벌개혁이 지지부진하느냐고 물으니, 어느 장관이 ‘나도 장관 그만두면 재벌 계열사 사장 한 자리 해야하는데 재벌개혁하자는 얘기 어떻게 합니까’라고 말합디다.”

재벌개혁이 안 되면, 장관 그만두고 재벌 계열사 사장으로 옮겨가는 사람 계속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5년 후 다음 정권의 임기 말에도 지금과 똑같은 일이 반복됨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 꼴 보기 싫으면, 재벌개혁 하는 수밖에 없다. 정치인이나 정책관료 믿지 말고, 시민의 힘으로.

김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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