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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년 02월
  • 2002.02.01
  • 198

민주당 정당개혁실험 성공할 것인가


2002년은 정치개혁의 원년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인가.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당 쇄신 프로그램들은 정당개혁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이고 있다. 민주당이 정당민주화를 통해 그 동안의 사당(私黨)적 구조를 극복하고 명실상부한 공당(公黨)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냐의 여부는 올 한해동안의 실험을 통해 결정나게 될 것이다.

이미 알려졌듯이 민주당이 확정한 쇄신안에는 국민경선제 실시, 총재직 폐지와 집단지도체제 도입, 당권과 대권의 분리, 상향식 공천과 같은 굵직굵직한 개혁방안들이 포함되어 있다. 제대로 이행되기만 한다면 우리 정당정치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내용들이다.

우선 국민경선제의 도입은 민주당 쇄신작업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핵심적인 사안이다. 국민경선제는 지금까지 유지되어온 사당적 구조를 뿌리부터 바꾼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정당과 시민사회의 괴리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극복하고 시민의 정치참여를 제도화한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국민경선제 도입은 가히 ‘쇄신중의 쇄신’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국민경선제가 잘못 운영될 경우 경선은 자칫 진흙탕싸움으로 변질되어 버릴 위험성을 안고 있다. 선거인단 모집과 선정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동원시비, 금권시비 등이 불거질 경우 국민경선제의 의미가 크게 훼손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경선제, 참여민주주의로 접근해야

지난 1995년 일본 신진당이 시행했던 국민개방선거는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당시 1000엔만 내면 일반 유권자도 당수선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새 제도는 정치개혁 차원에서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16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우편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투표의 규모를 따라가지 못한 관리 부실로 이 실험은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남의 이름을 빌려 투표하는 부정행위, 자파 국회의원들에게 1만∼1만5000명을 투표에 동원하도록 할당하는 행위, 자파 의원이 경영하는 회사의 직원들을 투표에 동원하는 행위, 금품을 주고 투표에 동원하는 행위 등으로 선거전은 얼룩지고 말았던 것이다.

정치권 일부와 몇몇 언론에서는 이미 정치적 의도를 갖고 국민경선제 흠집내기에 나서고 있다. 아직 드러나지도 않은 문제점을 들어 국민경선제의 부작용을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사상 처음 도입되는 제도인 만큼 과도기적으로 다소의 혼선은 따르겠지만, 부정적인 측면에만 주목해 바람직한 시도를 애초부터 막아서는 안 될 것이다. 시민사회 또한 국민경선제를 특정 정당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참여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시민사회는 일부 세력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민경선제가 시행될 수 있도록 지원함과 동시에 이 제도가 정치권 전체로 확대될 수 있도록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다른 쇄신 프로그램들도 운영하기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반대로 독이 될 수도 있는 성질의 것이다. 제왕과 같은 권한을 가진 총재를 방지하려면 총재직을 폐지하고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집단지도체제가 이루어지면 당권이 분산돼 세력간 경쟁을 통한 당내 민주주의가 활성화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우리 정당사를 보면 집단지도체제가 계파 간 나눠먹기로 점철되었던 적이 많다. 집단지도체제가 갖는 권력분산 효과를 극대화하면서도 전근대적인 계파정치의 출현을 막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당분간 개혁과 퇴행이 교차하는 혼돈 겪을 듯

상향식 공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각 당의 총재는 공천권 독점으로 요약되는 하향식 공천제도를 무기로 공당을 자기 개인의 당처럼 주물러왔다. 따라서 상향식 공천제도 역시 정당민주화를 위한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여건에서 다른 보완장치 없이 상향식 공천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할 경우 ‘지역 텃세’에 밀려 신진인사들의 정치권 진입이 봉쇄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어 걱정스럽다. 정당의 지역 대의원 구성이 국민대표성과 상당한 거리를 갖고 있는 현실에서, 전체 지역주민의 의사보다는 지역의 정치적 기득권세력이 공천판도를 좌지우지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수 없듯이, 결국 이러한 부작용들은 정당쇄신을 위해 도입한 제도들을 실행해가면서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들이다. 특히 제도가 바뀌었다고 해서 곧바로 정당개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에는 우리 정당의 내부 현실이 너무도 척박하기 때문에 민주당의 쇄신은 앞으로 시행과정에서 평가해야 할 일종의 실험이라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민주당의 제도쇄신이 곧바로 정치개혁으로 연결되리라는 기대 또한 너무 성급하다. 민주당의 이번 쇄신은 낡은 정치의 버팀목이 되어왔던 세력에 대한 인적 쇄신 없이 이루어진 제한적 쇄신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재주는 곰이 넘고, 그 과실은 엉뚱한 세력이 따갈 위험이 적지않다. 민주당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인제 고문은 “3김이 주도했던 시대의 역사를 굉장히 성공한 역사라고 평가한다”면서 이번 대선에서 3김의 지원을 원한다는 의사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심지어 자신이 후보로 선출되면 JP가 이끄는 자민련과의 합당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인제 고문이 후보로 선출될 경우 이번 대선에서 3김 세력이 막후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그런가 하면 그 동안의 사당적 구조에서 주축세력이었던 동교동계도 경선 국면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력을 복원하여 차기 당권 분점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쇄신의 과실은 결국 권력을 잡는 자가 따먹게 되어 있는 것이 지금 민주당의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쇄신이라는 그릇 속에 과연 어떤 내용이 담길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정당들의 개혁을 가로막아왔던 본질적 내용이 변하지 않는 한, 새로운 형식과 제도조차도 오히려 낡은 질서의 정당화를 위한 도구로 전락할 수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지난 1987년 직선제 개헌을 통한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립이 곧바로 민주정부의 수립으로 이어지지 못했듯이, 제도 개혁만으로 즉시 정당 개혁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성급하다. 민주당의 제도개혁이 정당개혁의 전기가 될 것임은 분명하지만, 아직 우리 정치는 개혁과 퇴행의 흐름이 교차하는 혼돈을 당분간 더 겪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02년을 정치개혁 원년으로

당 쇄신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야당의 자세 또한 정치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당내 비주류의 당 쇄신 요구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비주류측은 국민참여경선제를 통한 대통령후보 선출, 대선 전 당권과 대권의 분리, 총재직 폐지와 집단지도체제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 총재측은 이 같은 제도들이 대선을 앞두고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거부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더 나아가 국민경선제의 전제가 되는 선거법과 정당법의 개정을 거부하는 등 민주당이 추진하는 국민경선제에 대해 흠집내기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자세는 민주주의를 혼란과 비효율로 연결시키던 과거 개발독재시대의 권위주의적 발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결국 “여당은 저렇게 변하는데 야당은 무엇하고 있느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정당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있겠는가. 여야 가운데 어느 한쪽이라도 정치개혁을 완강히 거부한다면 정치개혁의 과제는 온전히 달성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야당은 자기개혁은 고사하고 여당의 개혁실험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옹졸한 자세에서 벗어나, 정치개혁의 흐름에 당당히 합류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2002년을 정치개혁의 원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유창선 시사평론가·사회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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